◀ 지난 4월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2000 교향악 축제에서 제주시립교향악단이 연주하고 있다.


한 지역의 시·도립예술단은 지역 문화예술 지형도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문화예술 활동이 열악한 지역일수록 시·도립예술단의 활동과 역할에 시민들은 늘 관심을 갖고 지켜본다. 시·도립예술단은 민간단체와 달리 주민들의 낸 세금으로 활동하고 이들 활동에 대한 ‘금전적’인 보상도 이뤄지기 때문이다.한 번 공연을 올리기 위해서 발에 땀이 나도록 예산 확보에 열을 올리는 민간단체와 비교할 때 시·도립예술단원들은 분명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시·도립예술단의 활동과 위상 뿐만 아니라 시·도립 예술단을 운영하는 자치단체의 역할과 지원 수준도 문화예술을 평가하는 한 잣대가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제주도내 시·도립예술단은 제주무용계를 주도(?)하는 제주도립예술단과 제주시립교향악단·제주시립합창단·서귀포시립합창단·서귀포시립관악단이 있다.

제주도립예술단은 올해로 창단 10주년을 맞았다.제주민속관광예술단,전문민간무용단인 ‘눌 무용단’등이 있긴 하지만 제주무용을 얘기할 때 제주도립예술단 무용단을 빼고는 평가할 수 없다.한 해 무용계 활동을 결산할 때 ‘제주무용계=제주도립예술단’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정도로 도립예술단의 역할은 중차대하다.

그러면 제주도립예술단은 제주를 대표하는 무용단으로서 역할과 위상은 다하고 있는가.이에대한 도민들의 평가는 ‘아니다’고 내려진다.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건과 작금의 도립예술단 활동을 되돌아볼 때 후한 점수를 매길 수 없다는게 일반적인 평가다.

제주도는 지난 97년 제주도립예술단의 조례를 개정해 정원 40명의 제주도립민속예술단을 민속무용단,민속합창단,민속합주단 등 3개단 정원 120명으로 확대 개편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조례를 개정해 신설한 예술감독을 임명한 것을 제외하고는 별반 달라진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게다가 인력구성이나 활동면을 봐도 조례개정 이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제주도립예술단은 무용부와 놀이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무용부 24명과 놀이부 8명,예술감독 1명 등 33명으로 구성돼 전체 정원의 3분의 1도 채우지 못하고 있다.무용단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안무자는 공석 2개월이 지났지만 공개모집 방향만 세워놨을 뿐 공모에 필요한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아직까지 이렇다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이뿐인가.민속합창단과 합주단은 계획만 요란한 채 단구성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단원들의 현황을 보면 놀이부를 제외한 무용단원 24명 가운데 30%가 넘는 8명이 올해 2월에 뽑은 신입단원이다.5년 이상된 단원은 6명에 불과해 도립예술단의 위상과 체면이 말이 아니다.

제주도립예술단은 한 해 두 차례의 정기공연과 해외공연 등 각종 초청공연을 갖고 있다.두 차례의 정기공연은 새 작품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최근 제주도립예술단을 평가하면서 일각에서는 ‘그 작품이 그 작품이다’는 분석을 한다.안무와 음악 등 도립예술단 작품들 사이에서 별다른 점을 찾을 수 없다는 얘기다.

이런 평가에 대해서 일면 수긍이 가는 면도 있다.그러나 도립예술단을 평가할 때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새로운 작품을 기대하면서 작품을 개발하는데는 얼마나 공을 들였는가하는 문제다.이는 제주시립예술단과 서귀포 시립예술단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문제다.

제주도립예술단의 올 한해 예산은 7억2700여만원.이 가운데 인건비가 6억3600여만원으로 전체예산의 87.5%를 차지하고 있다.반면 순수 작품개발비는 4670여만원,기타경비 4440여만원이 고작이다.작품개발비는 정기공연에 소요되는 예산인데 대본과 음악작곡비,무대장치비,팜플렛,의상구입비 등을 망라한 예산이다.심지어 작곡가를 섭외할때 드는 출장비까지 포함될 정도다.최근 5년동안 제주도립예술단의 작품개발비를 보면 96년 5435만원,97년 5300만원,99년 4380만원,99년 4340만원으로 갈수록 줄어드는 기현상을 볼 수 있다.이는 문화관광부와 제주도가 무대예술 활성화 차원에서 오페라 한 작품에 1억2000만원을 지원하는 것과 대조적인 현상이다.

제주시립예술단은 교향악단과 합창단으로 구성됐다.올해로 창단 15주년을 맞은 제주시립예술단은 올해 제주시립합창단이 상임지휘자 체계로 바뀌면서 기반 다지기에 들어갔다.교향악단은 정원 80명에 60명(비상임 1명 포함),합창단은 60명 정원에 45명(비상임 1명)의 단원이 활동하는 등 어느 정도 안정감을 찾고 있다.

그러나 창단 15년을 맞는 제주시립예술단은 연주회에 급급할 뿐 ‘제주예술단’ 특유의 레퍼토리를 개발해 내는데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예를들어 제주의 민속이나 소재 등을 내용으로 한 창작곡 개발과 뮤지컬·오페라 등 기획작품과,음악감상회·세미나 등 제주음악발전을 위한 다각적인 프로그램 개발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이런 이면에는 제주시립예술단의 한 해 상임단원급여로 14억원을 쓰면서도 작품개발비로는 단 1억원도 확보하지 못한데 원인이 있다.제주시립예술단의 올해 예산은 14억 9500만여원.

지난 87년 11월 창단한 서귀포시립합창단은 비상임 지휘자 체제아래 60명 정원(지휘자·단무장·반주자 제외)에 상임 20명,비상임 29명 등 49명이 활동하고 있고,98년 창단한 시립관악단은 60명 정원에 상임 15명,비상임 15명 등 30명의 단원이 활동하고 있다.

서귀포시립관악단이 단원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을 뿐 아니라 단원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보수체계가 현실화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제주도립예술단과 시립예술단이 어느 정도의 임금체계를 갖춘데 반해 서귀포 시립예술단의 보수체계는 기초생활비는 고사하고 단원들의 활동비로도 모자란 실정이다.

서귀포시립관악단의 임금체계를 보면 상임단원 초임이 43만원 정도이고,비상임단원인 경우 수당조로 10만원을 받는게 고작이다.관악단 단원 중 절반이 훨씬 넘는 65%정도가 제주시에서 출퇴근해 교통비로도 부족한 실정이어서 보수체계의 현실화가 무엇보다도 화급하다.아무리 음악이 좋아서 활동을 한다지만 보수체계가 현실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음악발전을 요구한다는 자체가 무리라는게 문화예술계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문화예술계의 한 관계자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시·도립 예술단을 운영하면서 작품 개발 등에 인색한 것은 예술단 창단의 기본 목적을 잃어버린 결과다”면서 “예술단의 수준을 높이고,활력을 찾기 위해서는 임금외에 작품개발비 등 창작비 지원을 아끼지 않을 때 이들에 대한 평가도 제대로 이뤄질 것이다”고 강조했다.

제주지역 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해 시·도립예술단 창단은 환영할 만하다.예술단을 창단하고 이들의 활동을 보장한다고 해서 문화예술이 발전되지는 않는다.예술단의 활동을 감시하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단원들의 보수체계 현실화와 함께 작품개발 등에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한 지역의 문화예술 수준은 지역 예술단체가 얼마나 활기있게 활동하느냐에 달려있다.시·도립예술단 뿐 아니라 민간단체 등 예술단체가 맘놓고 활동할 수 있게끔 자치단체 등에서 적극적인 행·재정적인 지원과 후원을 기대해 본다.<김순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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