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여 동안 제주도 최대의 정책적 쟁점은 국제자유도시구상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이 정책적 구상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는 실로 엄청난 것이어서, 개개의 산업정책, 환경정책, 문화정책 등등의 나름대로 중요한 정책적 현안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질 수 없을 정도였다.

다만, 이 구상의 의미가 엄청나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구상의 실현가능성에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이 구상이 결국은 약간 특이한 형태의 관광산업 진흥정책 정도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런지도 모른다는 예상에서, 이 정책구상의 최종적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고 싶기도 하였다.

이 구상의 실현가능성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러한 정책구상의 전개과정에 있었다. 제주 국제자유도시구상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런 유형의 구상은 60년대, 70년대, 80년대에도 있었다. 그 중에서 벡텔사의 연구에 기초한 1983년의 복합형 국제자유지대구상은 가장 유명한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구상들 어느 것도 실제의 정책으로 채택되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다를까. 다음과 같은 점만 지적해 두고 싶다. 1990년대 이른바 세계화 현상이 비약적으로 전개되기 이전에는, 아직 폐쇄적인 한국시장, 특히 중국시장 진출을 꾀하는 국제자본의 활동거점이 요구되는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정부 또는 그 일각에서는 제주도라는 한정된 지역을 자유지역으로 개방 개발함으로써, 예를 들어 홍콩과 경쟁시키면서, 우리 나라의 전체 국익을 증진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나라도 중국도 이미 전체적으로 대외 개방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러한 전략을 전체 국익적 관점에서 추진할 근거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 중앙정부가 제주 국제자유지역구상을 주도적으로 제기할 구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중앙정부는 지금 각 지역의 개발욕구와 압력에 골머리를 앓고 있을 것이다. 제주 국제자유도시구상도 그런 개발압력의 일종으로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제주 국제자유도시구상은 다른 지역의 개발압력과는 아주 다른 점이 있다.

중앙정부에 대한 각 지역의 개발압력은, 그 지역이 의존 기대하고 있는 산업의 개발을 위해 중앙정부의 행 재정적 지원을 늘려달라고 요구하는 형태를 취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른바 산업정책적 압력이다.

제주라고 그러한 산업정책적 기대가 없을 리 없다. 그러나 제주의 경우 그러한 산업정책적 기대는 잘못된 포장 속에 들어 있다. 국제자유도시라는 개념 그 자체는 사람, 상품, 자본의 대외적 이동장벽, 말을 바꾸면 내부적 보호장벽의 제거를 의미하는, 그래서 시장과 경쟁에 의한 해결을 도모하겠다는, 이른바 질서정책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국제자유도시구상에 대한 논의의 혼란은, 사실 이 산업정책적 기대와 질서정책적 개념 사이의 괴리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이러한 괴리가 어떻게 조정될 것인가. '국제자유도시용역 최종보고서'는 결국, 국제물류, 국제금융산업의 육성이라는 산업정책적 기대의 타당성을 부인하고, 법제개정을 통한 대외개방이라는 질서정책적 개념 쪽으로 방향을 잡고 말았다.

이제 중앙정부는, 국제물류, 국제금융지역이라는 산업정책적 방향을 전제하지 않고, 몇 가지 내국민 내국기업 보호적 성격의 대외적 법규정을 제주에 한정해서 적용 제외시키는 법제 개정작업을 추진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 법제개정작업을 걱정스런 마음으로 주시하고 있다. 내용 여하에 따라서는, 현재의 제주지역 주민들에게 미쳐지는 파괴력이 엄청날 것이기 때문이다.<고호성·제주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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