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적 서류심사 비현실적”…서울행정법원에 소장 제출

지난 2000년 4·3특별법 시행 이후 처음으로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외면’한 법의 한계를 문제 삼은 첫 소송이 제기됐다.

4·3 후유장애인 심사에서 탈락한 17명 중 13명은 최근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위원장 권오규 총리직무대행·이하 4·3중앙위)의 현실성 없는 심사 기준 등을 지적, 제대로 판단해 줄 것을 법에 호소하기로 하고 10일 서울행정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다.

대부분 70대 중·후반의 고령인 이들은 특별법을 믿고 4·3중앙위에 후유장애인 신청을 했지만 ‘불승인’판정을 받았고, ‘재심의’에서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은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법’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구타 등 고문 후유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4·3중앙위에서 이를 ‘퇴행성 질환’으로 판단, ‘후유장애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억울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실제 소송인 대표인 고태명씨(76)는 4·3당시 왼쪽 다리에 관통상을 입었지만 ‘후유장애인’인정을 받지 못했다.

고씨는 1차 신청 당시 제주에 거주하지 않아 동생이 대신 후유장애를 신청하면서 총상을 입게된 정황 등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단순히 엑스레이 사진만 제출, ‘불승인’판정을 받았다. 재심의에서는 관통상을 확인한 제주대병원 의사의 ‘지속적인 물리·약물치료가 필요하다’는 소견서가 첨부됐지만 역시 ‘불승인’결정이 내려졌다.

고씨는 “직접 총상을 확인한 의사의 말조차 믿지 못하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이렇게 제주도에서 소송을 제기하면 4·3의 상처가 어떤지 누군가는 ‘직접’ 봐줄 것 아니냐”고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또 “앞으로 10년까지를 예상한 향후 치료비 추정서 상 1년 치료비는 10만원 수준밖에 안된다”며 “어떤 경제적 지원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4·3 희생자’인 것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씨는 “재심의를 신청한 17명 모두 탈락했다”며 “중앙위의 높은 문턱에 우울증 등 정신적 장애를 호소했던 4명은 소송은 물론 후유장애인 인증을 받는 것 자체를 아예 포기했다”고 전했다.

고씨는 이번 소송에서 총상을 찍은 사진 자료와 함께 최근 확인한 4·3수형인 확인서 등을 직접 제출, 서류를 통한 형식적인 심사의 문제점을 지적할 계획이다.

이번 소송은 제주4·3 왜곡보도와 관련한 제주 4·3희생자유족회의 소송대리인인 윤중현 변호사가 맡아 진행한다.

윤 변호사는 4·3특별법 시행 이후 처음으로 ‘희생자’를 인정하지 않는데 대한 첫 소송이라는 ‘공익성’과 함께 이들 후유장애인의 경제적 문제를 감안, 송달료와 인지 비용만 받고 변론을 해주기로 했다.

한편 이번 소송은 당시 의료 기록 등이 명확히 남아있지 않아 현실적으로 ‘완벽한’증거를 찾아내기는 어려운 상황으로 이들이 주장하는 후유증이 4·3상처에 의한 것인지를 입증하는 것이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고 미 기자 popmee@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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