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이용해서 정책개발대학원의 최고정책결정자과정 원생들과 함께 해외연수를 다녀오기로 했다. 목적지인 중국으로 떠나기 위해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그야말로 발 디딜 틈 조차 없이 복잡한 출국인파들을 보며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와, 이렇게 해서 엄청난 달러들이 연일 우리나라를 빠져나가고 있구나" 하는 한 원생의 탄성을 들으며, 여행수지 적자에 대한 메스컴의 보도를 생각치 않을 수 없었다. 나라경제에 대한 우려가 잠시 발걸음을 주춤거리게 했으나, 기왕 내친 걸음, 우리는 상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교과서에 쓰인대로 여행이 정신을 높게 하고 안목을 키우며 판단력을 기르는 데 최선책이라면 우리의 여행비용 만큼 성과를 거두면 되리라.

상해에서는 포동지구를 중심으로 한 신흥 비즈니스지역을 집중탐구하기로 하였다. 동방명주에 올라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위용과 자태를 자랑하는 세계적인 빌딩들을 조망하면서 그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개발에는 충분한 계획과 잘 그려진 청사진, 결코 서두르지 않는 실천, 주민들의 이해가 필요하다는 견해들을 나누었다. 황포강을 따라 유유히 흐르는 중국인의 만만디정신과 중화사상의 저력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제주도의 국제자유도시를 저마다 머리속에 그려보았다.

상해의 올림픽 축구경기장은 월드컵을 준비하는 우리들에게 또 다른 감동을 주는 명소였다. 잘 가꾸어진 잔디, 관람석, 방송시설뿐만 아니라 경기장내에 들어서 있는 호텔과 쇼핑센터, 관리현황 등은 제주월드컵경기장의 시설 및 관리에 대한 구상을 새롭게 해주었다. 특히 경기장을 짓는 데 얼마씩 기부한 회사와 개인들의 이름이 무수하게 새겨져 있는 경기장벽면을 바라보면서는 그당시의 재정상황과 모금의 지혜를 읽을 수 있었다. 어쩌면 여행이란 지나간 시절의 남의 얘기를 우리 생활의 현실로 이어주는 재미가 있기에 언제나 새로운 기대와 설렘을 가능케 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상해의 교통대학 캠퍼스를 걸으며 우리는 학문에 대한 열정과 배움의 향기를 맛보았다. 임시정부청사에서는 김구 선생님의 체구를 감당하기에 너무나 작아 보이는 침대앞에서 선생님이 고맙고 그리워서 울었다. 데카르트는 여행에 대해 '어딘가 좀 색다른 시대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고 평하였지만, 그 역으로 다른 시대의 사람들을 너무나 가깝게 느낄 수도 있음을 체험하였다.

제퍼슨이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버지니아주에 알맞은 농작물과 버지니아대학의 건축모델을 열심히 찾았던 것처럼, 우리들은 중국을 여행하면서 가끔은 발맛사지를 받고 향기로운 차를 마시는 데 시간을 쓰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은 제주도와 서귀포에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해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그리고 함께 나누는 추억의 보물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고, 한 학기 동안 서로 노여워했던 것, 의견이 맞지 않아 충돌했던 것, 잘잘못을 따지면서 금갔던 마음들을 화해하고 위로하며 따뜻한 정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는 우리와 함께 상해사람들이 많이 타고 있었다. 우리가 떠날 때 처럼 얼굴이 상기되어 있고, 눈동자가 빛나며, 끊임없이 떠드는 걸 보면 십중팔구 관광차 내도하는 사람들이리라. 관광객(tourist)은 즐거움을 구하는 사람인데 반해 여행자(traveler)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관광은 준비된 구성이고 관광객은 힘들이지 않고 즐거울 수 있기를 기대하지만 여행은 능동적 모험이며 여행자는 불편하더라도 경험과 지혜를 찾아 열심히 헤매고 다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조냥정신이 강한 제주사람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행을 하자. 가서 보고 배우고 느낀 것들을 제주관광에 활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 호객행위, 상거래관행, 식당예절 등이 관광객의 만족도와 아주 깊은 상관이 있음을 체험하였다. 호객행위를 하는 곳은 왠지 싸구려 같고 빌미를 잡아 강요할 것 같아 오히려 접근을 피하게 된다.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관광객의 구입품은 선물이니 검은 비닐봉지가 아니라 근사한 포장지에 싸드려야지 않을까? 잔뜩 즐거움을 기대하고 피곤한 다리를 끌며 멀리서 찾아 온 관광객들에게 미소와 정성으로 보답해야지. 제주도, 여행이라면 한 번으로 족하지만 관광이라면 몇 번이고 가능한 곳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허정옥·탐라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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