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60년> 4.3 지상유물전 <1>프롤로그

유물은 유적과 함께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이야기하는 역사의 현장이다. 유물에는 숨어 있던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꾸밈 없이 녹아 있다. 4·3의 유물도 그렇다. 단순해 보이는 그릇 하나, 빛 바랜 사진 한 장에도 60년전 역사의 진실이 자리한다. 날줄과 씨줄로 새로운 옷감을 창조하듯이 4·3 평화공원에서 문을 열 사료관은 유물마다 갖고 있는 진실을 서로 엮어 4·3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곳이다.<전문>

△환갑의 세월 맞은 제주4·3

꼭 한바퀴가 흘렀다. 하늘과 땅의 조화를 나타내는 ‘10간12지’ 육십갑자를 기준으로 4·3의 진실을 엮는데 60년의 긴 시간이 걸렸다.

1948년의 무자년 4월3일, 국가 폭력에 의해 발생한 4·3의 진실은 정부가 생산한 공식적인 역사 이외의 다른 논의가 금지, 기억 속에만 존재했다.

정부는 4·3의 진실을 공산주의 폭동으로 왜곡시킨 역사속에만 묻어두려 했다. 군사독재정권이 휘두르는 반공법·국가보안법·연좌제 앞에서 4·3의 진실은 쇠창살 감옥 보다 더 어두운 지하세계에 갇혔다.

새로운 미래를 창조해야 할 학교 역시 왜곡된 역사를 피하지 못했다. 역사를 가르치고, 배우는 장소가 교실로 한정됐던 암울한 시기에 교사들은 정부가 생산한 교과서의 내용만이 우리의 역사라고 가르쳤다. 학생들도 교실에서 배운 내용만을 진실처럼 여겼다.

교사·학생 모두가 입시풍토가 지배하는 4·3역사 수업의 희생자다. 정부가 공산주의 폭동으로 왜곡시킨 역사교과서는 시험·성적 등에 매달리던 입시풍토를 이용해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교사·학생을 억눌렀다.

하지만 진실은 아무리 묻어두려 해도 파묻힐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진실을 억눌렀던 잘못된 역사는 비극을 경험한 생존자, 희생자, 유족들의 기억까지는 지우지 못했다. 오랫동안 묻어뒀던 기억은 유적을 찾아냈고, 땅속에 갇혔던 유물들을 땅위로 올려 놓았다. 4·3의 기억과 역사 바로잡기 노력으로 풀어낸 증언, 땅을 파헤쳐 찾아낸 유물은 오랫동안 단절됐던 우리 역사와의 만남을 이뤄낸 것이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이야기한다.

60년을 흘러 다시 맞이한 무자년의 얼굴은 주름이 깊게 패인 곳마다 4·3의 진실을 머금으며 미소를 짓고 있다.

다시 맞는 무자년의 미소가 평화로운 웃음으로 피어나기 위해서는 아직도 할 일이 많다. 완전한 진상규명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실에서 진행되는 역사수업은 아직도 4·3의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4·3의 진실을 배우지 못했던 교사·학생들은 교실밖에서 고민하고 있다. 발굴된 유물을 통해 4·3의 실체를 바라보면서 혼란스러움을 더하고 있다. 너무나도 다른 자료들과의 만남속에서 배웠거나, 배우고 있는 역사가 바뀌어야 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국가 공권력에 의해 억눌렸던 4·3의 치명적인 상황은 진실을 개척하는 자극제가 됐을지도 모른다. 마을공동체를 소중히 여겼던 제주사람들이었기에 비극의 역사로 파괴된 도민공동체 복원운동은 오늘을 살아가는 세대의 과제로 작용했다.

역사를 바로 알려는 노력들은 1000년간 탐라국 자치공동체를 유지시켰던 화해·상생의 정신이 원천으로 작용했다. 4·3 발생후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뉘어 서로를 믿지 못하거나, 혹은 중간자적 입장에서 방관하는 생각은 우리의 본래 정신이 아니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미군정기 시대의 국가 공권력에 의해 악의적으로 왜곡되고 비틀려진 정신을 바로 잡아야함을 느끼고, 실천하고 있다.

△ 4.3 진실 찾기는 제주의 성장동력

4·3역사의 진실 찾기 노력은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찾아낸 암매장지·유해·총탄 등 유적·유물을 제시하면서 진실을 말하고, 정부와 국회를 설득시켰다.

유물은 60년전 이 땅에서 발생했던 진실에 대한 성찰이다. 묻혔던 땅속의 진실을 땅 위의 세계로 연결시킨 역사통로로 작용했다.

유물이 진실을 규명하는 힘으로 작용하면서 유족 등 도민들도 기증에 나섰다. 유적지에서 찾아낸 유물은 진실을 말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구체적 사건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적지가 과거 역사를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장소라면, 유물은 진실을 입증하며 생명과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증거물이다.

국경이 무너지는 세계화·개방화시대에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뿌리가 튼튼해야 올곧게 자리잡을 수 있다.

4·3처럼 국가권력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왜곡시킨 역사라면 바로잡아야 한다. 특히 제주도민의 긍지를 저해하고, 제주사회의 성장동력을 저해하는 역사라면 더 빨리 바로 잡아야 한다.

역사바로잡기는 누군가를 비하하거나 힘들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4·3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스스로 복원한 화해·상생의 공동체 정신을 통해 더 밝고, 긍정적인 번영의 미래를 개척하는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자년에 맞이할 4·3 사료관은 의미가 깊다. 사료관은 유물을 통해 과거속에 묻혔던 역사의 현장을 오늘의 현재로 끌어들이고, 미래의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교육하며 새로운 번영을 만들어내는 창조된 공간이다.

4·3 사료관에서 진실의 햇불을 밝히며 생명·평화의 소중함을 인식, 번영의 세상을 새로이 만들기 위한 유물들을 ‘지상’(紙上)에서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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