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스런 얘기지만 지나간 1세기 한반도는 외세에 의해 휘둘려 졌다.세기의 절반을 일본제국주의가,그 나머지는 미국과 주변 열강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일본이 침략자로서 반세기 가까이 한반도를 강점한 점령자였다면,미국은 한반도가 일본의 강점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 해방군으로서 자리해 왔다.그리고 그것은 과거 반세기 동안의 일반적 시각이기도 했다.하지만 이같은 미국의 특별한 지위는 일본이 앞서 한반도에서 누렸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한 시각과 생각은 한반도 내부보다는 오히려 당사자인 미국인들에게 자리하고 있다.한반도에서의 미국의 위치는 일제를 대신한 한반도 접수라는 역사학자들의이 시각이 그것이다.다만 다른 것이 있었다면 일제가 하나의 조선을 통치했고,미국과 주변열강들은 한반도를 둘로 나누어 지배했었다는 점일 것이다.그리고 그 분기점이 대전종식인 8·15와 미소가 주도한 분단과 냉전체제였은 물론이다.

 美뉴욕주립대 교수인 로렌스 위트너는 그의 저서 '냉전시대의 미국(Cold War America)'을 통해 해방군이 아닌,통치·점령군으로서의 미국의 얼굴을 조명하고 있다.한반도 진주 당시 미 군사정부는 독립운동가들에게 결코 호의적이 아니었다.서울에 도착한 하지장군 조차도 '한국인은 일본인과 같은 종류의 고양이 종자들'이라고 말했을만큼 해방군의 얼굴은 아니었다고 한다.점령군으로서의 거드름을 피웠다는 지적이다.특히 미군정이 한반도 내부의 일본통치에 기여한 극우세력들과 손을 잡은 사실을 들어,미군정은 일제의 대체 외세였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해방군 미국의 얼굴이 어땠는가는 당시의 여론조사 결과도 웅변해 준다.46년 봄 미군정당국이 군정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바가 있다.그 결과 응답자의 절반가량(49%)이 미군정이 일본의 식민지 통치보다 낳을 것이 없다는 대답이었다고 한다.결과에 대한 분석 역시 '당시 미군정이 남한통치기구로서 학정을 편 결과'였음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한반도 지배영향력은 비단 군정시대로 마감된 것은 아니었다.그후 반세기를 넘게 한반도의 운명을 쥐락펴락해 왔다.그리고 그것을 당연한 것처럼 여겨 왔다.하지만 세기가 바뀌면서 세상은 달라지고 있다.외세의 물리적 힘이나 훈수에 이끌리지 않은,그야말로 민족자결에 입각한 남북간 자주적 만남이 그것이다.새천년의 첫 8·15는 그래서 그 의미가 사뭇 다를 수 밖에.<고홍철·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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