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고도(古都) 개성은 송악산 아래 그림같이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하지만 인심은 옛부터 고약한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오백년 왕업의 고려가 망국의 길을 걸으면서 부터라고 한다.고약한 개성의 인심을 조선말의 방랑시인 김삿갓(金笠)은 다음과 같이 읊었다.

"고을 이름이 개성(開城)인데 어째서 문을 걸어 닫으며,산이름 송악(松嶽)인데 어찌 나무가 없느냐?황혼의 나그네를 쫓는 것이 인간의 인사가 아니거늘,예의동방에서 이 고장만이 진시황의 마음처럼 흉악한 곳이로구나 "

김삿갓이 폐허가 된 고려의 옛 궁터인 황성 옛터를 배회하고 난 뒤 어찌 감회가 없었을까. 황혼녘이 되어 출출한 배를 채워 보려고 김삿갓은 이집 저집 기웃거렸다.도무지 반겨주는 이 없이 가는 곳마다 문전 축객의 신세였다.모두가 문을 걸어 닫고 본채조차 하지를 않았다.개성 사람들은 비단 김삿갓만을 그렇게 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이방인들 모두에게 그렇다고 했다.

개성 인심이 언제부터 왜 이렇게 고약해 졌을까.행색마저 초라한 김삿갓은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몇세기전 몰락한 고려왕국의 탓으로 돌렸다.

원래 개성은 그런 곳이 아니었다.고려의 수도로서 국제무역도시로 번창해 나갈 때만해도 인심이 후한 곳이었다.위화도 회군에 의한 이성계가 집권하면서 인심이 달라졌다.수많은 왕족들이 죽임을 당하면서,오백년 도읍지 개성 사람들 또한 많이 다쳤다.그런데다 왕도마저 한양으로 옮겨 가버리면서 송악의 영화마저 점차 폐허로 변해갔다.민심도 흉흉하게 변해 갔다.

이 때부터 그들은 해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문을 걸어 잠갔다고 했다.조선이 망국의 길을 걸으면서 왕도 한양 사람들이 '서울 깍쟁이' 소리를 들은 것도 어쩌면 개성의 그것과 무관치 않은지 모른다.

이름에 걸맞지 않은 천년고도 개성은 몇세기를 걸러 또 한차례 안팎으로 문을 꼭꼭 닫아 걸와 왔다.남북 분단의 비극을 맞이 하면서다.그런데 이제 그 개성이 이름에 걸맞게 다시 열리려 하고 있다.북한의 김정일국방위원장이 개성을 자유왕래지역으로 개방하겠다고 함이 그것이다.벼랑 끝위기에 몰린 남쪽의 어느 재벌총수를 불러 들여 개성 개발의 전권을 넘겨준다고 했다.그래서 그 재벌 입이 쫘악 벌어 졌다고 했다.

반도의 남쪽 제주가 열리는 것과 때를 같이해 천년 고도 개성이 세계 앞에,송악이 한라로 다가 서고 있다. <고홍철·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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