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장건축이 설계한 남제주군 납골당은 밝음을 표현해 이미지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김대생 기자>

문명발달은 인류가 죽음을 의식하면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인류가 삶의 흔적을 주거지로 보여주듯 죽음의 표지로서 무덤을 만들었다.이런 무덤은 거대한 돌을 쌓아올린 고구려의 장군총에서부터 단순히 흙을 덮는 조선시대의 봉분에까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무덤은 고고유적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인류 최초의 문화유적이다.비록 죽음을 나타내는 무덤은 살아남은 다음의 흔적이지만 인류의 살아있는 삶에 못지않은 가치를 지닌다.

이토록 인류가 사자(死者),즉 죽은 자의 공간인 무덤에 애착을 보이는 이유는 죽음후에 새로운 삶이 있다는 내세관이 존재했기 때문이다.또한 그들 종족의 위대성을 보여주는 도구로서 무덤이 사용되는등 그 자체가 문화였던 것이다.

현재의 인류는 과거와는 달리 죽음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무덤은 단순히 주검을 묻는 장소로서의 역할만 있을 뿐이다.

더구나 이제는 무덤도 자리를 잡기 쉽지 않다.이미 전국의 무덤면적이 여의도의 1.2배를 넘어섰다.무덤이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자 정부는 내년부터 새로운 매장법을 시행할 예정이다.이 매장법에는 최장 60년까지만 매장을 허용하도록 함으로써 늘어나기만 하는 묘지면적에 제동을 걸 방침이다.

이런 장묘관계법의 변화는 납골당의 등장을 가져오고 있다.육지부에서는 이미 납골당이 하나의 건축물로 당당히 인정을 받고 있다.두호건축이 설계한 서울시립 제2납골당은 건축물 자체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얻는 작품이다.

제주도내에도 장묘문화의 변화를 보여주는 작품이 있다.광장건축(대표 송일영)이 설계한 ‘남제주군 납골당’이 그것이다.납골당이라면 어두침침하고 음산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아니 우리는 납골당은 으레 그럴 것이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른다.그러나 남제주군 납골당은 밝음을 표현해냄으로써 일반인들의 편견을 깨뜨린다.

이 건축물은 성산읍 공설묘지 가장 남쪽에 위치해 있다.현실의 공간과 사후의 공간을 분리한 듯 하면서도 하나의 이미지로 소화해내고 있다.관리동과 납골실 사이에 노출콘크리트를 타원형으로 세운 가벽이 있다.이 가벽은 회색빛이어서 납골당이라는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그렇다고 해서 현실공간과 완전 분리시키지는 않았다.납골실을 향하는 입구는 돔형식의 천창을 만들었으며,입구에는 유리블록으로 부드러운 빛을 흡수하도록 해 죽은자와 산자 모두에게 밝음을 선사해주려 한다.이런 밝음의 표현은 납골실 내부에도 있다.납골실 내부마다 2개의 천창을 둬 자연의 빛을 최대한 받도록 애썼다.

이곳의 또다른 특징은 화장문화에 여전히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을 위해 관리실 서쪽에 봉분형 납골묘를 만들어 유교식문화를 흡수하려 한 흔적이 보인다.

광장건축의 송일영씨는 “남제주군이 도내 지자체에서 처음으로 납골당을 문화적으로 인식했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다.이곳 납골당에 밝고 공원화된 느낌을 부여하기 위해 실내 납골당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을 야외납골당을 만들어 해결하려 했다”며 ‘죽은자를 위한 산자의 공간’표현에 주력했음을 강조했다.

납골당에 대해 후손들은 죽은자에 대한 21세기의 이색적인 문화공간이라고 표현할 지 모른다.그렇다면 현대인들의 사후세계 문화를 보여준다는 뜻에서 ‘사후 문화의 집’이라고 부르면 어떨까.<김형훈 기자>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