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백훈·농협중앙회 제주지역본부장>

   
 
   
 
농협에 몸 담은지도 어느덧 35년이 지나가고 있다. 전국적으로 조직된 농협은 나 자신에게 소중한 친구와 많은 지인들, 조금 더 넓은 안목을 가진 전국구로 만들어 준 소중하고 고마운 직장이다.

15년간 경상도, 전라도, 서울 등 전국 팔도강산을 다니며 인연의 가치를 소중하게 간직한 결과 다양한 문화와 많은 친구들을 알게 돼 이만 저만 좋은 게 아니다.

전국각지를 돌던 내 삶은 서울 농협중앙회 본부감사실에 5년간 근무를 끝으로 고향인 지역사회를 위해 다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해야겠다는 의지, 하고 싶다는 열정,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오랜 타지 생활하다 이제 와, 고향 제주에서 근무하며, 제일 곤혹스러운 일은 전에 알고 있던 고향 선후배 동료들을 만났을 때 내가 그들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나 알아 지쿠과. 몰람 꾸나게. 나 누게꽈. 고라봅서" 행사장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갈 때마다 조심스럽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건만 잘 알지를 못하니 그저 눈만 마주치면 알건 모르건 인사를 올린다. 상대방이 손을 내민다. 악수를 한다.

그러다가 악수하는 손이 악력이 강하여 진다. 손을 놓지 않는다. 더욱 난감할 때는 나 알아 지쿠과. (나를 알겠느냐는 제주어)하고 물어보면 순간 나의 표정이 재미있어진다.

"예-에" 답이 시원치 못하니 "몰람꾸나게" (내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구나) 하면서 섭섭한 표정이 나온다. 그러면 내가 미안 해 하면서 "얼굴은 알아지쿠다" (알 것 같습니다)만은 하고 얼버무린다. 그러면 그 정도 하고 악수한 손을 놔주었으면 좋으련만 더 세게 나온다.

나누게 꽈. (내가 누구지요) 나의 얼굴이 당황하다 못해 씁쓸한 억지 미소가 불쌍해진다. 그러면 최종 결정타가 나온다. "고라봅서"(내가 누구인지를 말을 해보라)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눈썰미도 없고 기억력도 시원치 못해 몰라봐서 용서를 빕니다"라고 말한다.

간혹 어떤 사람은 "오랜 세월 못 봐서 잘 모를 겁니다. 어디 사는 누구며 이러 저러한 관계가 됩니다" 라고 말하면서 나의 허물을 덮어 주시는 분도 간혹 계신다. 그 말에 담겨진 따스한 배려에 너무도 고맙게 느낀 적이 있었다

상대를 배려하는 제주인 되자

최근 타지에서 오신 기관장님부부와 식사를 한 적 있다. 제주 풍광의 아름다움에 극찬을 하면서 제주를 사랑하기 때문에 고쳐야 될 점 몇 가지를 말씀해 주셨다. 자동차 문화다. '깜박이를 잘 사용 안 한다' '추월선에서 일반주행속도로 달리면서 긴급 차량이 뒤에 와도 비켜 주지를 않는다' '담배꽁초를 차창 밖으로 던지는 모습도 많이 보인다' '심지어 운전대에 발을 올려 놓고 운전하는 위험한 모습도 가끔 보인다' '주차하는 습관이 삼무(무질서, 무대포, 무대책)인 운전자도 많다'는 등의 평소 느끼는 점들을 조심스럽게 지적해 주신다. 고마운 충고로 받아 들였다

내가 먼저 고쳐야겠다

며칠 전 차를 몰고 볼일 보러 가다가 옆 좌석에 탄 집사람이 차선을 변경하면서 깜박이를 안 킨다고 잔소리 했다. 가는 길은 한적한 길이었다. 제주는 차가 별로 없는 한적한 길이 많다 보니 깜박이를 키지 않는 버릇이 종종 나올 수가 있다.

만일 서울에서 그랬으면 뒤에서 큰 욕을 먹는다. 서울은 집 앞부터 차량들과의 만남이니 운전문화가 정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어서 비교된다고 억지 핑계를 대보지만 내가 그러고 있었구나 하니 내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함께 먼저 습관을 빨리 고쳐야겠다고 생각 한다

제주도운의 상승에 우리 습관도 상승시키자. 잘되는 집안은 자손이 번창해 웃음소리가 넘쳐 나고 손님 방문이 끊이지 않으며 가문이 번창하여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제주특별자치도도 내년에는 한-아세안 정상회담 등 많은 국제회의 개최로 내외국 손님 방문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주자(朱子)의 가르침에 부접빈객거후회(不接賓客去後悔)라는 말이 있다. '손님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으면 떠난 뒤에 뉘우친다'는 뜻이다. 손님이 왔을 때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대접하지 않다가, 가고 난 뒤에 후회하지 말고 우리의 습관부터 남을 배려하고 관광객을 차별하지 않도록 성숙하게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요즘 걷기 마니아들이 중심으로 서명숙씨가 개발한 '제주 올레코스'가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제주관광객 1000만시대를 만들기 위한 시발점이 되고 있다.

올레코스를 체험한 많은 사람들은 수지 맞았다. 덕 받았다. 신세 졌다고 생각하며 은혜를 갚으려고 많은 이웃에게 알리며 또다시 제주를 찾아온다고 한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타인에 대한 배려문화의 시작인 것이다. 서로 간에 칭찬과 격려 그리고 양보와 이해심 많은 배려문화가 도운의 상승기 제주사회를 밝게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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