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작고작가지상선> <16> 한명섭
회화 조각 등 미술 전 분야에서 쉼없는 작업
사업가·갤러리대표 등 이력은 작업 밑거름

   
 
  '그리움'  
 

"미술은 짓거리이며, 그 짓거리를 수도 없이 많이 하면 스스로 예술이 되더라".  화가 한명섭이 남긴 이 말은 그의 작품 세계를 대변한다.

사업가로서 갤러리 대표로서 혹은 종합 예술가로서 장르의 경계를 허물어뜨린 작가답게 한명섭은 파격이란 다작의 실험에서 나온다는 이론을 갖고 있었다. 그는 전 생애를 통해 그 특유의 허허실실 '짓거리 미술론'을 펼쳐보였다.

한명섭은 1939년 제주도 함덕에서 태어났다. 오현중과 부산상고 졸업하고, 당시 부산에서 동경제국미술학교 출신으로 활발히 활동하던 화가 송혜수에게 사사했다.

한명섭은 일생동안 다양한 미술 작업을 선보였다. 갈천의 비구상 작업, 한지의 드로잉과 드리핑, 캔버스의 사실주의 작업 등 다작을 실험하며 그 속에 생략과 파괴, 비움과 넣음, 넘침과 부족함으로 화면을 채웠다.

 

   
 
  생전 그의 작업실.  
 

그에게 미술은 말대로 흥미로운 여러가지의 것들을 시도하는 작업이었다. 어릴 때 흔히 했던 '자파리', 즉 이상한 장난에서 예측할 수 없었던 새로움이 창조된다는 것이 그의 짓거리 이론이다. 한명섭의 짓거리는 반복이 생명이었다. 반복은 다시 통찰을 낳고, 그 통찰은 보다 더 많은 반복을 요구했다. 사람들은 장르를 넘어 다양함을 천착하던 그를 이상하게 보았지만 한명섭에게는 이는 유쾌한 일상이었고 창조의 시작점이었다.

특히 철은 그의 변화무쌍한 예술적 전이에 딱 들어맞는 재료였다. 그는 이미 스텐레스와 강철 절곡(切曲)의 기술을 알고 있었고, 실제로 철을 다루었던 철물 사업가였다. 현재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마당에서 볼 수 있는 '섬하르방'은 삼면의 철판에 돌하르방을 투각, 어느 쪽에서나 같은 모습을 볼 수 있게끔 제작돼 철물 대형조각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 지난 2001년 제주세계섬문화축제 상징조형물로 채택되기도 했다.  그의 조형물들은 서울여의도 금영빌딩과 제주영화박물관, 제주조각공원신천지미술관, 제주제일고, 한라대학 한라아트홀에서도 볼 수 있다.

그 누구보다도 즐거운 마음으로 예술을 즐겼던 한명섭은 제주, 서울, 대구 등지에서 개인전 15회. 국내외 단체전 참가 150여회 등 그만큼 족적도 다양했다. 장르를 넘나드는 일탈은 때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그럴때 마다 그는 "예술이 어디 학벌로만 되느냐"며 다양한 경험과 시도에서 진정한 예술이 나올 수 있다는 자신의 예술론을 굽히지 않았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한명섭은 1999년 간암으로 오른팔을 잃는다. 이후 일획의 먹그림을 순간적으로 완성해 내거나 구겨진 한지 위에 추상과 구상이 공존하는 무의식의 세계를 펼치는 등 쉼없는 창작열을 과시하다 2004년 눈을 감는다. 죽기 한 해 전 완성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에는 죽음을 앞두고 삶의 허무와 의미를 되묻는 글을 함께 실려 눈길을 끌었다. 2005년에는 동인갤러리에서 한명섭 유작전 '멈춤'이 열려 그의 생을 추도했다.

미술평론가 김유정 정리 문정임 기자 mungdang@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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