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백훈·농협중앙회제주본부장>

   
 
   
 
제주농협본부장이 되기 전에 농협중앙회 본부 감사실에서 5년간 감사국장을 했다. 나는 이 시절 사고방지를 위해서는 선량한 관리자로서 고객의 재산을 청렴하게 잘 관리하겠다는 직원들의 의식 확립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국의 농협을 대상으로 감사를 다닐 때면 1주일 동안의 감사가 마무리되는 날, 전 직원을 모아놓고 감사강평을 통해 늘 세한도 정신을 말하곤 했다.

사고를 적발해서 처벌을 하는 것보다는 사고를 내지 않게 지도를 하는데 중점을 두고자 한 것이고, 그것이 후배들을 사랑하고 몸담은 조직에 보은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발제문에서 주는 교훈을 설명해주고 "짧은 인생을 살면서 세한도 정신이 주는 교훈처럼 의리의 인생을 산다면 행복한 인생이지 않겠나. 그것을 모르고 조그만 물욕 때문에 인생을 망치면 되겠는가" 라고 강조했다.

제주출신 감사반장이 제주도에서 그려진 세한도의 의미를 설명해서 그런지 감사이후에 기회가 돼 만난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 세한도 얘기를 꺼내는 것을 보면 세한도 정신을 꽤나 인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전국팔도에 국보180호 세한도를 알리고 영어교육도시가 들어서는 대정읍 추사적거지도 홍보하게 된 셈이다.

의리꾼과 아부꾼이 구분되는 시기는

추사가 이른바 '윤상도사건'에 연루돼 관직에서 파직되고 모슬포에서 유배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죄인을 함부로 가까이 할 수 없는 입장에서도 제자 이상적은 역관(통역관)으로 중국을 갈 적마다 귀한 책을 구해서 추사선생에게 보내 주곤 했다.

이 같은 변함없는 제자의 마음씀씀이에 고마워 그려준 그림이 바로 세한도이다. 초가집 한 채에 송백(松柏) 두 그루씩만 그려진 썰렁한 그림이지만 발제문을 포함하여 당시 중국의 대 문장가나 명필가들이 칭송한 찬문이 16개나 붙은 자랑스런 국보이다.

세한이란 논어의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라는 구절을 인용한 것으로 "추운 겨울이 되어 낙엽이 모두 떨어진 연후에야, 비로소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항상 푸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는 뜻으로 "사람이 권세를 잡고 있을 때 보다 권세를 잃고 어려움에 처해 인심이 바뀌었을 때 비로소 나에게 진실한 사람을 알 수 있다"라는 뜻이 포함돼 있다.

권세 있는 현직 상사에게는 의리꾼이나 아부꾼이 구분없이 따르지만 권세가 떨어진 다음에는 아부꾼은 없어지고 의리있는 인연만이 남아있게 된다.

퇴직하신 농협선배들의 개별 또는 조합별 모임을 도단위 연합회성격의 농심회(農心會)를 결성토록 해 선·후배간의 의리를 소중하게 하려 한 것, 시장 재임 시 다산 정약용의 목민관으로 농업과 농촌육성을 지원하신 전 오광협시장께 송덕패를 드린 것, 원철희 전중앙회장을 초청 농협의 이념·철학을 되새긴 특강을 실시 한 것은 세한도정신을 실천하는 조그만 사례이다.

세한도정신은 제주인의 정신적 재산

조상없는 후손 없고, 선배없는 후배 없다. 또한 전임자의 과정의 기반없는 후임자는 있을 수 없다. 나는 선임자의 실수조차도 산 경험의 큰 재산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지점장들에게는 전임자를 비난하지 말도록 하고 있다. 전임자의 실책을 반면교사로 삼고 자기처신을 잘하는 것을 중요시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 제주특별자치도는 특별법개정안이 통과돼 추사적거지 근방에 영어교육도시가 생긴다고 한다. 참으로 좋은 일이다. 김태환 도지사를 비롯한 지역출신 국회의원, 도의원,  관계공무원들의 열성의 결과이기에 삼가 축하와 감사를 드리고, 이제 전국의 학생들이 제주도에 와서 그것도 의리의 인생을 실천한 세한도가 그려진 모슬포에서 제주인의 정신적 재산처럼 의리있는 선비로 성장 발전하기를 흐믓한 마음으로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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