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순·제주세무서장>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1박2일 오대산으로 수학여행을 가서 하룻밤을 잤는데 아침에 깨어보니 누군가가 여관 앞마당에 터억 자가용 승용차를 세워 놓은 것이 아닌가. 산에서 벌채를 한 나무를 실어 나르던 낡은 트럭과 하루 두세 번 정도 마을을 지나던 버스 밖에 본 적이 없는 두메산골 아이들에게 번쩍번쩍하는 까만 승용차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들어 이리저리 만져보며 손때를 묻히고 있는데, 그러는 우리들 모습이 보기에 딱했던지 선생께선 "너희들이 어른이 되면 다 이런 차를 한 대씩 갖게 된단다. 믿기지 않겠지만 나중에 내말이 틀림없다는 것이 증명될게다" 이렇게 얘기를 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정확히 20년 후에 당시 말단 공무원에 불과했던 필자도 이른바 '마이카'를 가지게 됐으니 지금 생각해 봐도 그 교사의 예지가 참으로 대단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달 말 '녹색성장'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필요가 생겨 모처럼 인터넷을 섭렵한 적이 있다. 여러 가지 자료를 발췌하며 미처 깨닫지 못했던 많은 것을 알게 됐다. 그 중에서도 충격적인 것은 석유나 천연가스, 석탄 등 화석연료사용으로 인한 환경재앙이다. 지구 온난화로 알래스카에서 이제 거대한 빙하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고 10년 뒤에는 더 이상 여름에 알래스카에서 빙하를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또 중국 서북부 쪽의 호수가 가뭄으로 마르고 모래폭풍이 불어와 사막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20년 안에 만리장성이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이제 그야말로 우리 '지구인'들은 화석연료의 대안을 찾지 않을래야 않을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다다른 것 같다.

마이카 시대 - '한강의 기적'이라는 눈부신 경제성장과 문명의 발달로 내가 누린 이 혜택이 바로 화석연료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오존층이 파괴돼 피부암 환자가 급증하고 지구 온난화 문제로 이상기온 현상이 발생하게 된 환경오염의 주범이 바로 자동차매연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칼하지만 엄연한 현실이며 '지구별'에 동승하고 있는 모두가 함께 반드시 풀어 나가야할 문제인 것 같다.

문명의 산물이며 현대인의 필수품이 돼버린 자동차, 환경오염의 주범 -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이 마이카로 여행이나 출장을 갈 때면 누구나 한 번쯤은 꼭 들르게 되는 곳이 있다. 휴게소의 화장실. 언제부터 화장실 문화가 다른 나라를 선도할 수준으로까지 발전됐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

넓고 깨끗하며 조화이긴 하나 꽃병에 꽃도 꽂혀있고 음악이 흘러나오고 오물냄새는커녕 향수 냄새만 은은히 풍기는 한국의 공중화장실. 자랑스러운 이 화장실에는 그 깨끗함과 정성 외에도 시원한 배설을 하면서 그림이나 짧은 글들을 함께 감상할 수도 있다.

짧은 글들의 경우 대개는 "생활이 그대를 속이더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 - 푸쉬긴-", "他山之石(타산지석) - 남의 허물을 보고 내 잘못을 깨닫는다" 등 생활의 지혜와 교훈이 담긴 글도 있으나 어떤 것은 유행가 가사를 베낀 듯한 출처불명의 글들도 있어 고소를 금치 못할 때도 있다. 이 글들 중에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글이 있다.

어느 화장실에서 처음 봤는지 기억이 없지만 도서관, 목욕탕, 심지어는 시골 조그만 음식점 낙서 벽면 등 전국 방방곡곡 어디에서도 이 글을 마주하게 된다. 아름답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이 글을 읽고 난 사람이면 아마도 최소한 자기가 "머물렀던"자리 만큼은 더럽히지 못하리라.

동물들은 자기의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배설물이나 체액을 주위에 묻힌다고 한다. 후각에 민감한 동물들은 그 냄새를 맡고 "여기는 다른 경쟁자가 방금 머물렀던 곳이구나" "영양이 방금 지나간 자리구나"를 알게 되며 떠날 자리인지 아니면 싸움을 해서 뺏을 것인지 또는 냄새를 쫓아 사냥을 할 것인지를 결정한다고 한다. 인간들은 어떠한가.

자기의 존재를 알아주기를 원하는 것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욕망일 게다. 그러나 사람은 앞모습보다는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한다. 앞모습은 시야를 현란하게 할 뿐 보이지 않으면 이내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이지만 뒷모습은 뇌 속에 이미지화 돼 오래도록 남아있기 때문이다. 냄새를 남기기보다 향긋한 향내의 이미지로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는 뒷모습을 남기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글을 누가 썼는지는 알지 못한다. 아마도 시인중의 어느 누군가가 이 글을 쓰지 않았을까.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라는 시적 표현은 아무나 쉽게 쓸 수 있는 은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시는 박목월도 서정주도 윤동주의 시도 아닌 바로 이 짤막한 글이 아닐까.

그렇다 머물렀던 자리에 역겨운 오물냄새만 남기고 가면 안 된다. 알래스카의 빙하를 잃고 달에서도 보인다는 장엄한 만리장성을  모래에 묻히게 만들면 안 된다. 천상병 시인처럼 뒤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고 당당히 얘기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계절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이 찬란한 5월에 소풍을 가고 수학여행 가는 즐거움을 우리 후손들도 같이 누리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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