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1일 제17화 4·3문화예술축전 현장

자연유산 뒤 숨겨졌던 원혼들을 달래다
10일 성산포 터진목 찾아가는 위령제 '해원상생굿'

   
 
  해원상생굿  
 
“위령비 하나 세우지 못했는데…. 이렇게라도 억울하게 가신 분들을 기억하고 편히 보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지정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성산일출봉에 아주 특별한 자리가 마련됐다.

제주4·3 62주년 추념 찾아가는 현장위령제 해원상생굿이 지난 10일 성산포 터진못에서 열렸다.

국내는 물론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던 천혜의 아름다움 이면에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과 아직까지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자리다. 또 비극의 현장을 제대로 알리는 것으로 4·3을 끝나거나 멈추지 않은, 계속되는 역사로 기억하기 위한 몸짓이기도 했다.

죽은 자의 영혼을 부르고, 아픔을 춤으로 승화하고, 한 명 한 명 넋을 기리는 과정에 유족들은 눈물과 울음으로 그 동안 참아야했던 슬픔을 터트렸다.

한광금 성산읍 4·3유족회장은 “절대보전지역에다 올레길까지 이어지면서 찾는 사람들은 많지만 누구도 아픈 과거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며 “위령제 등을 기회로 이 곳이 가진 역사적 의미도 살리고 위령비만이라도 세워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위령굿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한지에 음식을 싼 지를 바다에 던지는 것으로 위령제 행사는 끝이 났다. 말로는 다 표현 못 할 묘한 여운은 과거와 현재의 경계 역할을 위해 세워진 까마귀솟대를 따라 계속됐다.

갑작스런 비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끝까지 행사에 참가한 쉐린씨(사대부중 영어교사)는 “친구를 통해 제주 4·3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 때는 이해하기 어려웠다”며 “4·3을 위한 굿이 열린다고 해서 와봤는데 다는 모르지만 정말 슬픈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고혜아 수습기자·한권 수습기자

현장서 만난 예비검속 학살 60주년
11일 4·3과 길-역사의 길 평화의 길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르고 그냥 나오라니까 나갔고,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지…억울해도 ‘빨갱이’소리를 들을까 말도 못하고…”

4·3유족회 양신하 고문의 목소리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다. 4·3의 상처가 아직 아픔으로 남아 있던 1950년, 예비검속(아직 무슨 짓을 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무슨짓을 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그냥 잡아다 가두는 것)이란 미명아래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던 현장이 발아래 밟힌다.

4월 날씨의 변덕이 기승을 부린 11일 4·3연구소가 마련한 ‘4·3과 길-역사의 길 평화의 길’기행에는 40여명의 도민이 함께 했다.

일제 때 건설된 대정읍 알뜨르비행장이며 격납고 등을 지나며 ‘후’ 한숨을 내뱉은 일행들은 섯알오름 탄약고터에 이르러서는 ‘훅’ 숨을 삼켰다.

먼저 백조일손지지에서 예비검속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터라 그 슬픔의 무게가 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그때의 아픔이 얼마나 컸을지 다 알 수는 없지만 유족회 양 고문의 현장 증언과 아직 남아있는 흔적만으로도 역사를 기억해야하는 이유는 충분했다.

4·3연구소 관계자는 “날씨가 나빠서 걱정을 했지만 많은 분들이 기행에 함께 해줬다”며 “예비검속에 의한 학살 60주년을 맞아 현장을 찾는 자리인 만큼 의미가 더했다”고 말했다. /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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