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한반도의 남과 북 두 정상이 만나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위한 공동 선언을 발표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 새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을 받고, 김정일 위원장은 북한을 방문한 미 국무 장관을 만나 북미간 관계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아시아·유럽 정상회담에 참석했던 유럽의 여러 나라들도 조만간 북한과 수교할 뜻을 밝혔다. 한반도에 냉전의 기류가 가시고 화해와 번영의 기운이 감도는 듯하다. 반면에 중동지역은 또 다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무력 충돌이라는 고질적인 문제가 불거져 나와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다른 한편 국내 상황을 살펴보면 의약분업 시행에 따라 의사·약사·정부간에 이해관계에 얽힌 오랜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고, 공무원 연금 기금 고갈에 따라 정부가 공무원 연금법 개정을 입법예고하자 전교조 교사들은 이에 반발해 집단적으로 연가를 내고 서울역 앞 광장에서 시위를 하였다.  

 나 역시 지난 한 달여간 바쁘게 보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설치된 제주자활지원센터의 센터장으로서 개소식을 치뤄야 했고, 우리 대학 자체평가 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교육부가 실시하는 교육대학 평가를 받아야 했다. 다른 한편 교육부가 한국교육개발원에 위탁해 실시하는 초·중·고등학교 학교종합 평가의 일환으로 부산과 대구의 초등학교 두 곳을 각각 일주일간 방문평가를 해야 했는가 하면, 갑작스레 인천의 어느 병원에 입원하신 아버님을 찾아 식구들과 함께 문안 인사를 다녀와야 했다.

 그런 와중에 내가 방문평가했던 어느 초등학교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 학교는 설립된지 3년 밖에 안 된 신설학교였다. 개교 당시에는 5개 학년, 15학급에 17명의 교사가 근무했지만 지금은 6개 학년, 32학급에 35명의 교사가 근무한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그저 평범한 학교이다. 교육부, 교육청 등이 강력하게 추진하는 이른바 '새 학교 문화 창조'라는 교육개혁의 요란한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보다는 교사 개개인의 자율성과 교사 상호간 친밀한 인간관계 속에서 아동의 수업에 충실하려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겉모습의 화려함보다는 내실의 튼실함을 추구하는 셈이다.

 이런 교육 중심의 교직문화는 과연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을까. 여기에는 개교 당시부터 자신의 승진보다는 아이들 중심의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일에 주력했던 몇몇 나이드신 '교포'(교장·교감 포기) 교사들의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 한다. 이 분들에겐 교장·교감의 근무평정이 중요하지 않았기에 근무평정에서 받을 수 있는 좋은 점수를 후배 교사들에게 양보했다. 부장교사 임명, 학년 담임 배정은 교원인사위원회를 통해 스스로 해결해 나갔다. 그 대신 아이들을 위해 함께 노력했다. 신설학교로서 멋진 학교문화를 가꿔가고자 했다. 운동회가 끝나면 원로 교사가 솔선 수범하고 모든 교사들이 힘을 모아 운동장 구석구석을 청소한다. 그 결과 개교 이후 전입해 온 교사들 상당수 역시 이들 '교포' 교사가 형성한 분위기에 쉽게 융화되어갔다. 이 학교 교감 선생님은 이런 분위기를 '첫 단추를 잘 끼운 결과'로 판단하고 있었다. 평가에 참여했던 13명의 평가위원 대부분도 교육개혁의 소리가 요란했던 다른 학교에 비해 수업의 질이 오히려 더 나았다고 평가했다.

 머지 않아 교직발전 5개년 계획이 발표될 예정이다. 부디 이 계획에는 '교포' 교사들이 우대받는 방안들이 많이 들어가 있으면 좋겠다. 특히 말도 많았던 수석교사는 부장교사 임용과 같은 임시적 지위가 아니라 교장·교감과 같은 자격 제도로 그 신분이 뒷받침 되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우리 아이들의 미래도 보다 밝아질 것이다.<김민호·제주교대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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