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은자의 제주바다를 건넌 예술가들] 60. 제주를 사랑한 화가 박희만

그릴수록 매력 넘치는 제주의 자연, 언제까지 온전히 남아있을까 
제주를 망아지처럼 누비며 신비한 대자연을 일심(一心)으로 기록

   
 
  박희만 화백, 1984.  
 
# 제주대학교 교환교수 자원

자연을 그리는 화가는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 이곳저곳을 바람처럼 떠돌아다닌다. 가는 곳마다 풍토가 다르고 자연 풍광 또한 같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19세기 중후반 인상주의 화가들은 답답한 화실보다는 야외에서 작품 제작하기를 선호하였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자연의 인상(印象)을 포착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출렁이는 바다와 푸르른 수평선, 파란 하늘에 떠가는 구름들, 나뭇잎에 반짝이는 태양과 빛의 파장, 진주빛 같은 눈(雪)을 즐겨 그렸다.

제주의 풍광은 육지의 어느 지역보다도 아름답다. 제주는 화산섬이기 때문에 지질구조나 지형이 매우 특이하고, 남태평양으로부터 밀려드는 해류로 인해 물빛이 유난히 아름다운 곳이다. 육지에서 온 화가들은 육지와 느낌이 다른 제주를 이국(異國)적이라고 표현한다.

1983년 한 화가가 아름다운 풍광을 따라 제주를 찾았다. 나그네이기를 자처한 박희만이 당시 문교부에서 시행하는 국내대학간 교수교류제도로 1년 동안 제주대학교 미술교육과에 교환 교수로 온 것이었다.

그는 제주에 머무는 1년 동안, 제주의 자연에 몰입되면서 다수의 작품을 남길 수 있었다. 그는 교환교수로 오기 전부터 간간이 제주를 찾아 와 소품들을 그리고, 섬을 떠나곤 했었다.

박희만(朴喜滿,1930~2005)은 1930년 부산 출신으로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였고, 당시 상명여자대학교 미술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그는 1958년 창립한 국전 출신 화가들의 모임인 목우회 창립회원이기도 하다. 1976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수많은 전시회에 참여하였다. 국전 특선 및 입선 다수, 1981년 국전 추천작가, 1986년과 1994년에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상명대학교 예술대학장을 역임하였고,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2005년 별세하였다.

   
 
  김녕1, 캔버스에 유채, 15M. 1983.  
 
# 제주 자연을 그림으로 기록

박희만은 1년 동안 제주의 자연을 그린 30점의 유화작품으로, 1984년 3월 24일부터 30일까지 제주시 동인미술관에서 <제주도의 자연>전을 개최하였다. 이 전시에서 박희만은 "작년 3월부터 이번 2월까지 제주도 전역을 망아지처럼 누비며 그 무한한 자연미 앞에서 일심정념(一心正念)으로 제작 생활을 가졌다."고 말하였다. 그는 바다, 유채밭, 한라산, 산간초가, 설경 등을 소재로 삼아 제주의 정경을 부지런히 화폭에 담았다. 제주도 섬 전체가 용암으로 덮여 있어, 가는 곳마다 이국적인 매력과 자연의 신비감을 느낄 수 있어서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올 때면 하루 종일 방안에서 심한 고독감에 사로잡히기도 하였다. 바람 많은 제주에 태풍이 불어오면 사방 천지를 분간하지 못할 정도이다. 이럴 때 방안에 우두커니 앉은 박희만은 자신의 모습이 마치 유배인과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문득 9년 동안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했던 추사 김정희가 떠올랐다. 그때 '유배인의 심정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박희만은 추사가 고독 속에서도 끝내 자신의 서법을 완성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제주의 자연은 그릴수록 매력이 넘쳤다. 산과 바다가 서로 가까이에 있어, 산은 산대로 기복(起伏)에 따라 형태의 변화가 있었고, 해안은 고저장단(高低長短)의 묘미가 있어 기후에 따라 색채가 달라졌다. 그에게는 이 아름다운 자연을 그리는 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제주의 신비스런 자연이 '언제까지 온전히 남아 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는 당시 제주 사람이 아니었지만, 관광개발에만 초점을 맞춘 제주도 개발정책이 불안하기만 하였다.

이러한 심정을 박희만은 "관광개발, 현대화, 자유항 구상 등 다 좋지만, 제주도의 저 신비의 대자연, 그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 자체가 무엇보다도 소중하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입니다. 제주도 대자연을 찬미(讚美)하고, 그런 절감(切感) 때문에 그리고 그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작품전은 나의 그러한 기록입니다."라고 하였다.

   
 
  상가리, 캔버스에 유채, 8P, 1983.  
 
# 박희만의 작품세계

그림은 그려진 해당 지역의 정보를 머금고 있다. 풍경화 속에 등장하는 지형이나 가옥, 사물들은 그림을 그린 시대의 문화적 경관을 드러낸다. 사실적인 풍경화는 사진과도 같이 당시의 풍토·문화적인 모습들을 담고 있다.

2010년 현재의 시점에서 그가 그린 1980년대 초의 그림들을 보면, 제주의 경관이 놀라울 정도로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그린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용머리 해안은 현재의 건물들은 보이지 않고, 유채밭만이 보일 뿐이다. 일출봉 동쪽 연안에도 사람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애월읍 하가리의 올레는 고형(古形)을 간직한 채 평화로운 모습이고, 바로 윗마을 상가리는 중산간 마을의 정취가 감돌고 있다. 제주시 별도봉 해안은 바다 빛이 곱기만 하다. 종달리 해안은 옛 그대로의 세월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송악산 옆 마을 산이수동은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일 뿐이다. 한경면 용수리 포구는 한가로우면서도 소박한 어촌 마을임을 보여준다. 인근 고산리 자구내 포구는 오늘날처럼 매립된 모습이 아니라, 천연 포구의 자연스러운 맛을 간직하고 있다. 함덕 해안의 풍경들엔 어떤 구조물이나 시설이 없다. 김녕 세기알 포구는 지금처럼 포구 위로 반듯한 길을 내지 않았다. 시흥리 습지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1100고지의 맑고 깨끗한 물은 원시(原始)의 한라산 자락을 투영하고 있다. 교래리는 벽두 산간의 적막함을 담고 있고, 금덕 마을은 겨울 산촌의 포근함을 간직하고 있다.

박희만의 그림은 지금의 제주의 모습과 비교할 수 있는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다. 실제로 그가 그린 곳들은 오늘날 원형이 거의 훼손되었고, 지나치게 현대식으로 포장되어 천연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그가 예견한 것처럼 제주 자연의 원형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과거의 그림 안에서만 그 이미지를 간직하게 되었다. 이런 박희만의 그림을 보고 제주 출신 시인 김광협은 "제주는 내가 자란 고향이다. 제주는 나의 모성(母性)이다. 그러기에 제주는 나의 그리움이다. 언제나 보고 싶어 한다. 언제나 그의 품에 안기고 싶어한다." 라고 하면서 감격의 말을 참지 못했다. "박화백의 작가적 정열이 눈물겹다. 특정한 한 향토(鄕土)에 대한 애정이 그토록도 사무쳤던가. 그는 제주 체재(滯在) 1년 만에 완전히 제주도 사람이 되어서 왔다…한 작가가 단일 소재에 대해 치열(熾烈)하게 전력투구(全力投球)할 수 있었다는 그의 의지에 경의를 표한다."

또 미술평론가 이구열(李龜烈)은 당시 박희만의 집을 방문했던 기억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서울 동자동의 자택 2층 화실에 들어섰을 때, 방안에 가득 놓여진 제주도 작품들을 하나 하나 보아나가는 동안 나 자신 제주도의 아름다움에 깊숙이 빠져드는 즐거움에 젖지 않을 수 없었다." 이어 그는 박희만의 작품에 대해 "사실적인 유채(油彩) 화필이 전개시킨 제주도 자연의 대서사시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것을 위해 그의 발길은 제주도 곳곳에 미치고 있다…이번 연작 이후 그의 작업이 더욱 자유로운 수법으로 정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그는 제주도 이전까지 알고 있던 것 이상의 풍성하고 강렬한 색조와 뚜렷한 고유색, 그리고 완연히 이국적인 낭만적 서정을 발견했고, 그를 작품에 선명히 반영시키고 있다. 따라서 그 반영의 형태는 그의 조형적 심성에 따라 더욱 변화 있는 깊이나 변모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연을 보는 태도와 기법의 문제이기도 하다."라는 평을 하였다. 

박희만의 터치는 매우 섬세한 것이 특징이다. 이런 현상은 그가 육지의 자연을 그릴 때 터득한 기법에 매우 익숙했던 때문일 것이다. 제주와 같이 바람이 불지 않는 육지의 고요한 숲의 표현에 있어 섬세한 붓 터치는 유용한 것이다. 그가 그린 제주의 자연이 고운 것은 제주의 자연 자체가 심미성(審美性)이 뛰어나기도 하지만, 화가 자신이 해석하는 자연 또한 심성적(心性的)으로 부드럽게 느낀 까닭이다. 현실에 존재하는 자연의 아름다움도 화가자신의 마음의 눈을 거치면, 화가의 자연미에 대한 해석적인 특징이 나오기 마련이다.

제주 자연을 해석하는 제주지역 작가들의 그림이 강하고, 질박하고, 단색조인데 반해, 박희만의 그림은 밝고, 경쾌하고 섬세하다. 이런 차이는 바로 자연을 보는 마음의 눈과 표현방식이 서로 다른 까닭이다. 그가 제주사람으로 1년 사는 동안 그의 화풍은 제주의 화가들에게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문화의 교류란 서로 만나면서 알게 모르게 스며드는 것인데, 나그네 박희만의 제주의 삶은 제주의 화가들에게도,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도 매우 소중한 자국을 남겼다.
제주대학교박물관특별연구원
이중섭미술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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