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순환은 참으로 경이롭다.며칠 전만 해도 노염이 기승을 부리더니 언제인 듯 아침저녁으로 소슬한 바람이 인다.한편으로 생각하면 인생의 덧없음이 이에서 더 할까하는 생각이 새삼 머리 속을 맴돈다.그래서 가을은 자꾸 되돌아보게 하는 계절인가 보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다 몇 번인가 멈칫거리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사뭇 스산스럽고 허허로운 상념 때문이었다.뿐만 아니라 ‘인생’이란 무엇일까라는 화두에 가위눌린 듯 자유스럽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다.그러다 문득 아침 신문에 보도된 대로 미국 대통령 선거전과 관련되어 클린턴에게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대화론의 연금술사라 불리우는 클린턴이 8년의 임기를 채울 올 연말이면 54세에 불과하다던가.평균수명이 긴 편에 속한 내국사회로 보면 아직 팔팔한 나이일텐데 그는 퇴직후 무얼하고 사나.힐러리 여사가 뉴욕주 상원의원에 당선된다면 그 뒷바라지라도 할 것인가.그러나 카터 전대통령의 퇴임후 그 위대한 궤적은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을텐데.

며칠후 이에 대한 명료한 대답은 의외로 밥 버포드가 지은 「하프 타임(Half Time)」에서 얻을 수 있었다.이 책은 남은 인생에 대한 전략적인 대책을 세움에 있어 매우 유익하고 성실한 안내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따라서 버포드의 지적을 진지하게 수용할 자세가 되어 있다면 인생 후반전에서 있을 수 있는 나태와 타성을 거둬내고 새로운 출발선상으로 자신을 안내하게 될 것이다.밥의 하프타임은 발달한 사회가 맞닥드리고 있는 주요한 정치적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한다.즉 중년들이 성공하면 나라가 제 기능을 발휘하고,효율적으로 운영되며 민주주의와 공동체의 기본 가치관이 다시 굳건해질 수 있다.

“내 자신의 비문을 씀으로써 나는 성인으로서 첫 출발을 한 것이다.결국 비문이란 스스로 선택한 몇 마디 안되는 좌우명 이상의 어떤 것임에 틀림없다.비문을 정직하게 적는다면 여러분이 진정 어떤 사람인지 거기에 잘 나타날 것이다.” 그의 이 말은 성인이 되는, 즉 인생의 전반전이 시작됨과 동시에 자신의 무덤에 놓일 비문을 쓰듯 인생계획표의 작성을 권유하고 있다.지극히 옳은 말이다.

우리는 지금 또 한번의 경제위기를 맞고 있다.그 위기가 현실화된다면 IMF사태 때보다 더욱 심각한 절망적 상황일 수 있을 것이다.이 지경에 이르게 된 근본적 원인은 정부·기업·가계 모두 제 분수를 모르고 샴페인을 또 한번 먼저 터트렸지 않나하는 생각을 지을 수 없다.전반전이랄 수 있는 IMF사태 전후의 엄청난 고통과 인내,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국민적 열의와 결집이 겨우 수습되는 국면에 모두 망각하고 만 것이다.후반전에 대한 전략적 프로그램을 만들기는커녕 제 분수 모르고 흥청망청 모두가 정신 놓아버렸다.

이제 우리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내다보는 슬기를 가다듬어야 한다.역사적인 사건,그것이 기쁜 일이든 부끄러운 일이든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교훈과 메시지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그것을 놓치면 우리는 지구상에 살아남을 수 없는 저급한 민족으로 영원히 전락하고 말 것이다.

깊어가는 가을,우리에게 작전타임이 필요하다.작전타임은 밥 버포그가 「하프타임」을 통해서 안내하여 줄 것으로 생각하며 이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김승제·제주도지방개발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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