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은자의 제주바다를 건넌 예술가들] 70. 사진가 고영일

원시적 자연과 벗 삼아 살아가는 제주인의 생활모습 기록
생활 속에 제주의 진정한 민속적 가치가 들어있다고 생각

   
 
   
 
# 미는 생활이다

한 장의 사진 속에는 한 시대의 다양한 정보가 담겨있다. 사진의 매력은 시간과 장소의 정보를 담아냄으로써 시대의 사실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시대의 사실성이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생활이란 개별 인간들의 삶의 모습이다. 개인의 삶의 모습은 늘 타자의 시선에 의해서만 객관화된다.

일찍이 러시아의 미학자 체르니셰프스키(N.G.Chernyshevsky, 1828~1889)는 '미는 생활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정의에서는 진정한 지고(至高)의 아름다움은 '인간이 현실 세계에서 접하는 미'라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인간에게 가장 일반적으로 사랑스러운 것은 생활이다. 그것에 가장 부합되는 생활은 인간이 누리고 싶은 생활, 인간이 사랑하고 싶은 생활이다. 그 다음에는 모든 종류의 생활이다. 왜냐하면 살지 않는 것보다 사는 것이 그래도 낫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본성적으로 죽음과 없음을 두려워하고 삶을 사랑한다."

이 말은 '생활이야말로 예술의 교과서'라는 인식에 다름 아니다. 생활 속에는 민중들의 건강한 삶이 들어 있다. 우리는 미가 현실과 어떻게 관련을 맺고 있는지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대상은 현실의 생활 속에 있으므로 예술의 질료가 되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얻는 아름다움은 다시 생활의 아름다움을 환기시켜준다. 미가 현실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는 것은 예술이야말로 사회라는 삶의 구성체에 기반을 두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가 고영일  
 
# 사진가 고영일

사진가 고영일(高瀛一, 1926~2009)은 제주시 일도동 1457번지에서 태어났다. 호는 리석(利石). 1944년 목포공립상업학교 졸업, 1948년 혜화전문학교 문학과 수료,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 1950년 4월 서울신문학원 전수과를 수료하였다. 1948년 제주신문사 편집국 기자로 입사하여 1953년 제주신문사 편집국장을 역임하였다. 한 때 신성여고 교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제주카메라클럽을 창설하였고, 제남신문사 주필, 한국사진가협회 정회원이 되어 학술평론분과 위원과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경기도미술대전 초대작가(사진부문), 서울특별시사진대전 심사위원을 비롯하여 전국공모전의 운영위원과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였다. 1990년 제주도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개인전 6회. 저서로는 《카메라 사진교실》초·중급반, 《포토클리닉》등 다수가 있다.

1955년 고영일은 부종휴(夫宗休)와 함께 제주도 최초로 칠성통 남궁다방에서 2인전을 열었다. 이 전시를 계기로 4·3과 한국전쟁으로 얼어붙었던 제주 사진계가 긴 동면(冬眠)에서 깨어났다. 당시 그들은 제주의 민속과 풍물을 찍은 사진들을 액자도 없이 그냥 벽면에다 붙였다. 다시 1년 뒤 고영일은 서귀포 대호다방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1957년 신성여고 교사로 근무하던 고영일은 신성여고 사진반을 결성하여 학생들이 찍은 사진으로 앨범을 만들기도 하였다.

1959년 그는 김용수(金瑢洙), 김광추(金光秋), 부종휴, 이경희(李景熹), 이동성(李東成)과 함께 제주사진회를 결성하였다. 제주도 '사진예술의 발전과 사진 인구의 저변 확대'라는 기치를 내걸고 그해 11월 남궁다방에서 창립전시회를 열었다. 이 단체는 1964년 제주카메라클럽이 탄생되는 모체가 되었다. 고영일은 사진이론에도 밝았다. 사진이론을 국내작가가 발표한 것이 매우 드물어 주로 일본 사진전문지에서 배웠다. 또 60년대에는 암실이 없었고, 인화 기술 보급이 되지 않아 책을 보며 독학으로 연구를 하였다.

1989년 '고영일사진전'은 1963년 호수다방 개인전 이후 26년 만에 열린 것이었다. 당시 목석원에서 열린 이 전시는 흑백사랑(黑白寫廊)의 첫 손님으로 사진가 고영일을 초대하였다. 사진가 신상범은 <고영일의 사진세계>라는 글에서 "그는 사진을 단순히 자기의 예술 작업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심한 외풍으로 인해 사라져가는 제주의 풍물들을 사진으로 기록해 두는 일이야말로 그에게 중요한 일거리였다"고 쓰고 있다. 또 고영일의 사진에 감흥을 느끼는 것은 "언제나 정직한 카메라의 시각에서 오는 수준 높은 그의 안목"때문이라고 하였다.  

고영일은 시대의 기록에 충실한 사진가이다. 고영일은 종종 자신의 작업을 '한풀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주관성을 배제하며 현실을 매우 솔직하게 바라봄으로써 시대의 객관성을 확보하고자 했던 것이다. 역사성이나 사건에 주목하기보다는 잔잔하고 평범한 일상에 주목하였다. 생활 속에 제주의 진정한 민속적 가치가 들어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생활 속에서의 제주 모습은 외풍(外風)에 의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는 생각이 그를 조바심 나게 하였다. 외풍은 시대의 변화를 예고했고, 그에 동반하는 삶의 양식의 서구화, 개발 바람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근대화 바람이 섬 전체를 휩쓸고 지나가면서 제주고유의 풍토적 삶의 모습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1997년 발간된《고영일사진집》에는 외풍에 밀려 사라져가는 제주모습 사진들이 실려 있다. 이때 고영일은 <작가의 말>에서 1974년 제주를 방문했던《25시》의 작가 슈테판 게오르규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무덤을 가지고 조상과 더불어 살고 있는 곳",  "이렇게 독특한 향토색이 곧 이 고장의 개성이다"라는 말의 가치를 '소홀히 들어 넘긴 것을 고희(古稀)를 넘기면서야 후회하게 되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또 하나의 안타까움은 1978년 화재로 인해 태반의 사진 작품이 소실된 것이었다. 일생에 걸쳐 제주의 문화를 찍는 과정에서 겪은 아픔이었지만 남은 사진으로 1960년대 제주의 모습을 담은 50점을 골라 사진집을 펴냈다. 당시 목석원 주인 백운철은 발간의 변에서 "1960년대 사진을 보면 1960년 이후 30여년 동안 제주도가 얼마나 급속도로 변해 왔는지를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사는 곳이면 어디든지  대성형 수술이 자행되고 있다…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왔던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운 삶을 아주 순수한 앵글로 포착해 놓은 고영일 선생의 이 기록 사진들은 먼 훗날 제주 사진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 섬세한 시선으로 본 제주의 모습

고영일의 작품들에서는 제주의 풍물과 전경(全景)들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기록 사진의 매력이란 한마디로 사실성의 전달에 있다. 그러나 사실성에 기반 하더라도 어떤 큰 사건이나 충격적인 역사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아주 평범한 일상의 포착에 주력한다. 일상은 당연하게 놓인 삶의 세계로서 별다른 관심 없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생활 세계이다. 일상에 주목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삶의 세계가 만나는 공간이라는 점, 그러기에 더없이 평범하게 보이고 진부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생활세계에는 다양한 계급이나 계층들의 직업군이 있다. 그리고 문화적인 영역이 나누어지며, 공동체의 에너지가 저장되거나 분출되는 세계이다. 그러므로 일상은 생활의 패턴을 담은 삶의 공간으로서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을 탄다. 일상은 한번 흘러가면 되돌아오지 않는 강물과도 같이 누가 관심을 쏟거나 주목하지 않더라도 그대로 진행되는 삶이다.       

고영일의 사진들은 현장성이 있지만 몰래 찍은 사진처럼 앵글이 자연스럽고 고요하다.  포착되는 대상이 전혀 관찰자를 의식하지 않은 것 같은 자연스러움이 고영일 사진의 탁월함이다. 적어도 농촌과 어촌의 생활 모습에서 느끼는 제주 공동체의 진한 향기는 사진가의 관점이라기보다는 놓인 현실을 자동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영상기록장치와도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관점이라는 것은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자신의 관점을 되도록 드러내지 않고 우연한 시선으로 평범한 제주 생활의 일면에 다가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생활세계에 있어 사진가의 현장 개입은 있는 듯 없는 듯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고영일 사진은 현재적 지점으로 볼 때 50여 전의 제주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오늘날 아름다운 제주, 원시적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제주인의 생활 모습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짧은 시간에 실로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동네 어귀나 바닷가에서 놀던 아이들의 옹알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즐거움도 근대화의 바람에 실려 갔다. 아름다운 포구, 인정 넘치는 돌담, 한 밤에 호롱불을 밝히던 도대도 무너졌다. 초가는 어느새 빌딩으로 바뀌었고, 마을의 고목이 잘려나가고 아파트가 들어섰다. 해변의 빨래터가 해안도로에 묻혀버렸다. 곶에는 골프장이 들어서고 본향당 신들이 떠났다. 남은 것은 무대 세트 같은 관광지뿐.

고영일 사진의 의의는 바로 작가 자신이 살던 시대의 제주 생활을 기록한 점에 있다. 특히 거시적으로 역사의식이나 비판의식을 앞세우기보다는 미시적으로 일상을 들여다보는 겸허한 시선이 그의 사진의 특징이다. 1930년대 한중옥 사진, 1950년대 홍정표 사진에 이어 제주 생활사의 한 부분을 이어가고 있는 고영일 사진은 잃어버린 제주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제주대학교박물관특별연구원
이중섭미술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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