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사례 통해 현실 진단·생각하는 대로 실천하기 ‘긍정의 파문’ 던져
사회적 잣대 인한 고통 덜고 함께 살아가는 힘 키운 나눔 기획 “진행형”

난센스 퀴즈 같은 질문 하나.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무엇일까. 대중없어 보이는 질문의 답은 다름 아닌 머리에서 팔까지의 거리다.

눈으로 보기에 사람마다 제각각인데다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 ‘길이’가 아니라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실천하는 일이 보기보다 쉽지 않다는 얘기다.

 # 희망나무 2010 보고서

나눔을 통한 착한 제주와 희망 쌓기를 위한 ‘씨앗’을 심다보니 2010년 한해가 정신없이 지났다.

특별한 이슈 없이도 제주사회를 들뜨게 했던 지방선거며, 이제는 ‘힘들다’는 말을 꺼내기가 힘들어질 만큼 익숙해진 경제난까지 사사로이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던 한해였지만 사람으로 사는 일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제주특별자치도사회복지공동모금회 공동기획으로 출발한 ‘희망나무’는 자신을 드러내기 힘들어하는 사연과 사람들로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말이 아닌 손, 손이 아닌 가슴, 진정어린 관심과 사랑보다 더 따뜻한 것은 없다는 평범한 진리는 늘 긍정의 부메랑으로 제자리를 찾아 돌아왔다.

정해진 답이라곤 찾을 수 없는 사람 사는 일 속에서 가슴 아픈 사연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20대 초반 현아가 가장인 7남매(3월 6일자 1면)는 아직도 마음을 다 열지 못했다.

뚝 하고 자신의 손에 남겨진 어린 손자를 위해 어렵게 입을 뗐던 윤혁이(4월 3일자 1면)와 성호(11월 6일자 1면)네 할머니는 “이걸 다 어떻게 다 갚냐”며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지만 언제일지 모를 자신들의 빈자리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하다.

 # 사회 변화가 낳은 안타까움

사연 마다 가슴 아프지 않은 것이 없다. 유독 눈에 띄는 것이 혼자 남겨진 노인들과 가정 해체에 떠밀린 아이들이다. IMF 한파는 1998년 우리나라를 흔들고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옛 일이 됐지만 후유증은 아직 한창임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당시 경제적 이유 등으로 위기를 넘기지 못한 사연들로 가정은 물론 사회적 돌봄을 받지 못한 노인과 아이들은 지금 도움이 절실한 상황에 놓여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도움을 청할 방법을 제대로 찾지 못해 희망을 버리는 현실이다.

너무 일찍 세상을 알아버린 아이들은 ‘알아서’ 꿈을 포기하고 경제적 자립에 매달린다. 고령의 할아버지·할머니는 “효도할게 나만 두고 가지 말라”는 어린 손자의 말에 가슴을 친다. 엄마·아빠에 이어 할머니·할아버지나 마음을 연 대상으로부터 버려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무거운 짐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과연 ‘조손가정’이나 ‘소년소녀가정’이란 사회적 구분일까. 기초생활수급대상인지, 어쩌면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를 다른 가족이 있는지, 나이가 적합한지의 사회적 잣대로 재단되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따뜻한 관심과 나눔의 실천이 절실하다.

 # 나무지기, 희망의 물을 주다

이런 상황들에서 희망나무 지기들의 작지만 의미 있는 움직임은 삶의 희망이 됐다.

‘갚을 능력도 없고, 그냥 받을 수는 없다’며 손사래를 치던 사연 당사자들의 굳게 닫힌 마음을 연 것은 ‘얼마’하는 성금이 아니라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다는 관심의 힘이다.

입원비와 치료비를 걱정하는 성호 할머니를 위해 지정기탁 신청을 자청한 사회복지사며, 당장 비를 피할 지붕이 절실했던 양군희 할머니(8월 21일자 1면)를 위해 손을 빌려준 지역업체도 있었다.

혼자 남을지도 모를 손자를 걱정하는 70대 할아버지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장학금을 지원한 ‘숨은 손’ 이며 당장 경제적 지원은 어렵지만 정신적 지원을 위해 시간을 내준 멘토들의 힘도 컸다.

생각이든 결심이든 실천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은 실천을 통해 긍정의 결과를 찾아낸 희망나무지기들에 의해 뒤집어졌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무작정 도움이 아니라 ‘살아 갈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사연 당사자들의 의지 역시 희망나무를 키우는 힘으로 작용했다.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과 배분 사업 현장, 가장 가까이서 복지 현장을 지키는 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고 또 필요한 이 일 역시 희망나무를 키우는 밑거름이다.

 # 희망나무,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일단 씨가 뿌려지고 하나 둘 희망나무를 지키는 사람들이 생겨난 만큼 이를 키우고 돌보는 일은 내년에도 계속될 예정이다.

사례를 찾고 인연의 끈을 연결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희망나무지기를 중심으로 한 긍정 바이러스 확산 프로젝트도 진행할 계획이다.

이 가운데는 도움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사연 당사자들의 마음도 담게 된다.

사례가 소개되고 지원이 이뤄지면 그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연 당사자들이 ‘어떻게든 갚을 방법을 찾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힘든 사정을 알려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발굴하는 것도 그 중 한 방법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거리낌 없이 나눔 바통을 이어받기를 희망했다.

가정해체란 악조건을 견디고 이른 자립을 위해 진로를 수정했던 혜정이(11월 26일자 1면)는 “일단 앞만 보고 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만을 위한 결심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임을 강조했다.

혜정이는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 먼저 위축되고 의욕을 못 찾는 것이 제일 안타깝다”며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의지만 단단히 한다면 못 할 것도 없다는 것을 나를 통해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교사를 희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스스로를 모두가 인정하는 멘토로 만들고 싶은 바람이다.

그 바람을 지켜보고 또 지키는 일까지, 희망나무와 나무지기들의 행보는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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