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선이 만난 사람] 한복디자이너·보자기 아티스트 이효재

 50년 그러더니. 되긴 된다. 팔딱팔딱 남들 다하는 줄넘기도 못하던 아이, 접었다 폈다 한복자투리로 늘 옷이랑 뭔가 만들던 손끝 야물던 아이. 예쁜 것에 혹하던 아이. 의·식·주 철저하게 자기식대로 살다보니 남들이 보면 유별난 사회부적응증! 그 아이가 지구의 환경을 이야기한다. 보자기 하나로. 웬걸, 그의 살림철학이 이 시대엔 '자연주의 살림의 여왕'이란다. 환경홍보대사, 환경 모델도 됐다. 욘사마 배용준과 단독 전용기 타고 가 보자기 예술로 일본 도쿄돔 4만5000여 관중들 입을 딱 벌리게 만들어버린 여자. 보자기 환경 전시를 위해 중국에서도 전용기로 모셔간 여자. 다문화가족들에 김장을 전수하는 여자. 이 시대의 살림 멘토, '효재처럼' 이효재. 그녀를 만났다. 헝겊같은 눈발 휠 것 같은 제주에서. 그녀, 흡사 자박자박 눈속을 걸어오던 여인네처럼 말씨 또한 조근조근했다.

 1958년생. 한복 디자이너겸 보자기 아티스트(패치워크 보자기). 서울시 환경홍보대사. 독특한 아이디어, 손길만 닿으면 헌 것도 명품이 되는 감각으로 '살림의 여왕', '한국의 마사 스튜어트', '한국의 타샤 튜더', '자연주의 살림꾼' 등으로 불린다. 한국의 대표적 라이프 스타일리스트로 인정받는 사람. 환경재단 주최로 폭스바겐을 보자기로 싸는 문화 퍼포먼스로 주목 받았다. 드라마 '왕의 여자', '영웅시대', '헤어화', 연극 '안중근' 등의 의상 제작. 배우 배용준의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그와 함께 한국의 의·식·주를 소개하는 역할을 맡아 공동작업 진행. 2009년 12월 일본의 패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와 함께 한 패션 작업 전시. 저서로 「자연으로 상 차리고, 살림하고 효재처럼」, 「마음을 얻는 지혜, 효재처럼 보자기 선물」, 「효재처럼 살아요」, 동화책 「나는 치마저고리가 좋아」 등.
 오십 넘어 어느날 살림 스타가 됐다. 효재 따라하기 주부들이 는다. 쓸모없는 것 새 것처럼 만들기, 친환경 삶 살기, 효재처럼 버리기, 이런 것들. "사람 그늘이 커요. 아, 살면서 이런 일도 있구나 해요." 그녀는 흡사 수행자처럼 일을 한다. "잠자리도 아주 좁게 자요. 저 스스로 편한게 안되는 거예요. 지금부터 어떡하지? 이런 말을 안해요. 나는 내 일을 해요. 느긋하게."

 크리스마스 색깔 옷이 눈에 확 띈다. 친구 엄마 이십년 된 옷 직접 디자인해서 고쳐 입었단다. 칼라 떼어서 뒤에 붙이고 주머니 줄였더니 새 옷이다. 그녀 가방에서 줄줄이 나온다. 꼭 갖고 다닌다는 물병, 삶은 땅콩, 찐 쌀, 수저, 노란고무줄과 보자기. "핸드폰 줄이랑 얘기하는 동안 엮어요. 손놀리는 것 아까워요."

 # 전 세계는 보자기가 문화의 시작

 "예전에 어머니는 다 보따리잖아요. 보자기가 한자로 줄이면 '복'이라는 말이고, 세자로 하면 '보자기'가 되는 거예요. 철학적으로 살림이라고 하면 지겨운 숙제가 되는 거고. 나의 역할은 일단 관심을 갖게 하고, 반하게 하고, 꽂히게 하는 거죠. 손수건, 행주 모든 천은 보자기가 될 수 있어요. 결혼하고 안입는 한복치마, 오래된 커튼, 이불거죽 다 잘라서 할 수 있고. 세상은 마음만 가지면 다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절대 환경적인 인간이 될 수가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옷 좋은 음식 다 꿈꾸면서 사는 것. 버리기 위해 사는 게 아니지 않은가. "삶이 반환경적인데 포장지만 아껴도 아마존의 정글을 더디게 망가뜨릴 수 있겠더라구요. 그래서 보자기로 싸자 한 거예요. 전 세계는 보자기가 문화의 시작이예요. 보자기에 구멍을 하나 뚫으면 판초구요. 두 개 뚫으면 완벽한 조끼가 돼요. 걸면 커튼이고 덮으면 이불이 돼죠."

 그녀에게 보자기는 환경이다.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환경운동이라는 그녀. 보자기 싸는 법은 무궁무진하다. 그동안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세계적인 자동차 '폭스바겐'을 보자기로 싸고, 화장품 브랜드 크리니크를 싸고, 휘슬러를 쌌다. "외국에 갈 때 보자기 한 장 챙겨 넣어 뭐든 싸 선물하세요. 한국의 아름다움을 쉽고 소박하게 전할 수 있어요." 하찮고 소소한 것들도 그녀의 손을 거치면 한국적인 아름다움으로 피어난다. 보자기는 명품 가방이 된다. 한국 방문하는 세계인들이 비무장지대 들렀다가 '효재' 집에 와서 문화체험을 한다. "지구 환경 얘기를 하면 다 관심을 갖고 다 열심히 해요. 우리가 그걸 직시해야 해요." 

 # 어려움도 스스로 이쁜 걸로 치유해

 평양출신 아버지는 옥편을 베고 자고, 사과를 반쪽 밖에 안 먹고, 된장을 끓이면 1㎝ 막이 편 다음에 먹고, 선비는 갈비를 먹지 않는다던 별난 선비. 비가 새도 책 보는 것 좋아하는 집. "헤르만헤세, 펄벅…. 어린 때 떼고. 지금은 '비밀의 화원' 읽죠." 그녀는 보자기 만들듯 동화를 쓴다. 동화책 스무권 쓰는게 꿈. 한복, 요리, 손님 만나기, 글쓰기, 어떻게 다 소화해낼까? "운전 못하죠, TV·신문 안보는 시간에 일을 하죠.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난 변하지 못해 놀림감이었죠. 젤 관심있는 것은 나예요. 내 일에 빠져서 뜨개질하고 바느질하는 단순노동이 나를 성숙하게 하더라구요. 지금은 다행히 장애가 오히려 특징으로 잘 봐진 경우지요. 그 전까진 먹는 것도 맨 음식만 먹고 김치는 씻어먹고 도시락은 싸가서 먹고 공항에 앉아서 땅콩 먹고 찐 쌀 먹고. 전에는 그런 모습들이 이상했던 거예요."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 왜 없었겠는가. "그런 가슴은 다 있어요.  삶은 다들 소설이잖아요. 그래서 저 스스로 이쁜 걸로 치유하는 거예요. 이제야 대기권을 뚫고 나왔구나하는 거죠."

 어머니 손을 닮았을까. 한복집 하던 어머닌 된장 고추장 잘 담그던 살림의 대모. "누구나 하나는 특기를 가지고 있지요. 내 능력은 특별한 것이 아니예요."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라는 것을 아는 순간부터다.

 그런 그녀. 한가지만 20년 넘게 하다가 어느날 사고가 났다. 궁하면 통하더란다. 이튿날 미국 가는 지인이 포장 열 개를 부탁했는데 그 집으로 가니 밤 한시가 넘었다. "내용물(CD)은 작고 보자기는 110㎝이고. 대책이 없어요. 갑자기 노란 고무줄 있지? 고무줄로 매듭짓고, 젓가락을 연장 삼아 주름 잡아 주니 보자기 아트가 꽃밭처럼 생겨났죠." 한밤에 목단 꽃 열 송이나 피었다. "그 분은 미국가서 선물을 꺼냈는데 아무도 내용물을 풀지 않더래요. 어떻게 보자기를 풀으냐고." 그날이었다. 봉숭아씨를 건드리면 터지듯이 탁 터져버린 것이. 보자기 신이 들어온 것이.

 # 제주도, 환경을 먼저 인식하는 섬이어야

 "제주도는 정말 아름다운 도시에요. 너무 신선해요. 여기 사는 사람들이야 말로 제일 먼저 환경을 인식하게 되는 것 아닐까요. 늘상 사는 사람들은 초록을 보고 놀라지 않겠지만. 막연하게 20년 전에 내가 늙으면 제주도에 살아야지 했던 적 있어요."

 그는 서울에서 지구의 날 행사때 대형 보자기아트를 펼쳐 놀라게 했다. 환경에 대해서 느낄 수 있도록 새해는 환경재단과 함께 그동안 없었던 창조적인 보자기아트쇼를 보여주고 싶다. "지금 제주도에서 보니까 아, 제주도에서 할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무대에서 직접 손으로 만들어 모델들 입히는 거예요. 그 자체가 공연이예요. "

 그녀의 꿈은 에코도시. 지자체에서 200만평을 주면 에코도시를 만들어서 다문화가정들 일감도 주고, 원하는 사람들 된장도 담그고, 그렇게 사는 거란다. 각 도에서 콜했다. 제주도만 빼고.

 "앞으로 다문화가족 아이들이 100년 뒤에 우리의 조상이 된다 생각한다면 지금부터 염두에 둬야 되는 일이거든요. 올해부터 그들과 함께 일하려고 지난 10월 한달 동안 울산 옹기엑스포 옹기대사 하면서 하루 40명씩 그들과 김치를 담았어요. 그들한테 이런 것으로 소득 창출 일자리를 주게 될 거예요. 손 작업을 하면 좋은 점이 있지요. 그들이 고급한 한국어를 익힌다면 그게 곧 시가 되고 영혼을 움직여서 부자는 아니더라도 행복해질 수 있어요."

 # 공적으로 살다 전부 다 환원할 생각

 이효재. 요즘 그녀는 이런 생각을 한다. 유별났던 아버지, 서로의 자유를 인정하는 남편(국악 피아니스트 임동창), 욘사마라는 아름다운 청년이 일본 큰 무대에 데뷔시켜 주었다는 것, 아이가 없는 것도 하나의 축복으로 받아들이면 된다는 것. 이런 특별한 복을 나눌 수 있다면 재능밖에 없다. 공적으로 살다가 짐승처럼 병이 들면 가겠다. 다 이웃과 사회에 환원하고 가겠다.

 그녀는 「내친구 욘사마」라는 책을 구상중이다. 배용준을 처음 만난 것은 2008년 12월.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을 쓰던 그의 작업에 참여하면서. 배용준에 대한 인식을 새로한 날은 죽음을 구걸하지 말라던 우리의 역사 안중근 옷을 밤새 만들다 배용준과 일본가는 전세기를 탄 아침. 왜 우리 과거사는 저리도 슬픈가. 현대에 이렇게 아름다운 청년이 있었구나. 100년 뒤 도서관에서 뽑아쓸 수 있는 어느 청년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왔다. "하늘은 아무한테나 그 에너지를 찍지 않는다는 사실이예요."

 # 아름다운 것은 다 소통한다

 그녀는 효재식 강의를 한다. 강의 듣고 우울병 치료됐다고 편지오는 이, 빵가루 터는 일이 지겨운 일이 아니라 즐거워졌다는 이 도 생겼다. "어느날 꽂히면 다 깨어나는 것 같아요. 맛 있을까? 마늘도 안 넣는데 맛있네? 자기 손에 익은 국자를 계랑컵으로 쓰면 된다. 피부색이 다르듯 다 간이 다르다. 아이들 건강 상태 보면서 내 간을 찾아라. 내가 내 집에서 여왕인 거죠."

 "문화에는 경계가 없고 의식주는 다 함께 있다. 오랜 사연을 가지고 있는, 세상의 모든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아름다운 것은 서로 소통한다. 아름다운 것은 다 나를 유혹한다." (「효재처럼 살아요」 중)

 효재는 '집' '지붕'의 의미. 사람은 지붕 아래면 안심할 수 있다.  '효재처럼' 살아가는 것. 끝과 끝은 하나이며 빨랫줄 처럼 연결돼 있다는 것. 사람은 이 지구에 태어나서 조금만 살고, 그저 '바람처럼' 흘러 가는 것 뿐. 그렇니까, 지구를 깨끗하게 해야 한다. 오늘 죽을지도 모르고, 내일 죽어버릴 지도 모르기 때문에. 지금이 중요하다는 그녀의 호는 '지금', 남편은 '그냥' 이다. 그녀는 그러기를 꿈꾼다. 그의 보자기가 지구를 아름답게 만들기를.

 글·사진 허영선(시인/전 제민일보 편집부국장)/ ysun64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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