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13> 오라리 방화 추적기 ①

   
 
  오라리 방화 현장인 '어울눌'에 다시 선 9연대 정보참모 출신 이윤락. "방화는 경찰 지원을 받은 우익청년들이 한 것이 분명하다"고 증언했다. 뒤에 보이는 산이 '민오름'.  
 

 미군측, 김연대장 "우익 소행" 보고 묵살
"5㎞이상…" 초토화 작전개념 이때 제시돼

오라리 방화 추적기 ①
1948년 5월 1일 불타는 오라리 마을에 김익렬 연대장과 이윤락 중위 일행이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 30분께였다. 연대장 등이 탄 지프와 완전 무장한 경비병들을 태운 쓰리쿼터가 동시에 마을에 들어선 것이다. 그때 마을 안에 있던 경찰 트럭이 황급히 마을을 떠났다.

"그 당시 주변의 여러 상황을 볼 때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만큼 위험 부담을 안으면서도 연대장과 저는 어쨌든 더 이상의 유혈을 막아야 한다는 일념에서 평화협상을 추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휴전기간에 저들이 습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도 대낮에, 제주 읍내와 가까운 마을을 습격한 것은 우리를 궁지에 몰아넣기 위한 중대한 배신행위라고 생각했습니다"

9연대 정보참모 이윤락의 말이다. 9연대 정보요원들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피습경위를 조사했다. 그런데 마을 주민 10여 명으로부터 진술을 받고서야 '폭도들이 한 행위가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방화는 경찰의 지원을 받은 우익단체원들이 저질렀다는 것이다.

김익렬 연대장과 이윤락 중위는 조사 자료를 챙겨 바로 제주도 군정관 맨스필드 중령을 찾아갔다. 맨스필드 중령은 미군정 시절 제주도의 최고 지휘관이었다. 평화협상 결과에 만족해했던 맨스필드는 지난번 태도와는 달리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서울에서 CIC 요원들이 내려와 있으니 그들을 만나 협의하라"고 발을 뺐다.

김 연대장 등은 이상한 공기를 느꼈다. 그 길로 미군 장교들이 묵고 있다는 제주읍내 서문통 소재 동화여관으로 향했다. 그 여관에는 G-2(정보참모부) 중령과 CIC(방첩대) 소령이 묵고 있었다.

김 연대장이 주민들의 진술서를 꺼내 들고 오라리 방화사건의 경위를 설명했다. 그런데 CIC 소령은 "경찰 보고와 다르다. 그것은 폭도들이 한 것이다"면서 연대장의 주장을 일축했다. 그래서 연대장은 정 못 믿겠으면 합동조사를 하자고 건의했으나 이마저도 묵살당했다.

미군 장교는 한술 더 떠서 해안선에서 5㎞ 이상 떨어진 중산간 지대를 '적성지역'으로 간주하여 토벌을 강화하라는 명령까지 내렸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그 해 늦가을 제주도에서 감행되는 바람에 엄청난 유혈사태를 몰고 온 초토화 작전 개념이 바로 '해안선 5㎞ 이상…'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 해결을 시도하던 사람들에게 토벌을 강조하니 기가 막혔습니다. 그래서 비오는 어느 날 우리가 중산간 지대에 갔을 때 보니까 어린아이가 닭을 안고 숨어 있더라, 그런 아이들도 빨갱이냐고 물었더니 미군 장교는 '아이들까지도 빨갱이사상으로 물들어 있다'고 하더군요" 

나는 이윤락 중위의 증언을 들으면서 숨이 막히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이 중위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평화협상의 구도를 미군과 경찰이 깨뜨렸을 뿐만 아니라 제주도의 유혈을 불러일으킨 초토화의 근간도 미군의 발상에서 시작됐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4·3의 진로에 매우 중대한 시사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4·3취재반이 입수한 미군 및 경찰 자료, 영상기록, 기자의 현지 르포기사들은 한결같이 오라리 방화를 '폭도들의 소행'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주한미육군사령부 정보참모부 보고서(1948년 5월 3일자)는 '제주도 폭동 / 오라리 방화'란 제목아래 "오라리가 5월 1일 낮 12시 30분부터 3시간동안 폭도 50명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경찰이 도착하여 폭도들을 마을에서 축출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출처는 '경찰 보고'라고 밝히고 있다.

이 중대한 사건의 진위는 무엇인가? 이 상반된 주장의 진위를 가려내기 위해서는 '물증'이 필요했다. 나는 그 물증을 오라리 현장에서 찾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4·3취재반 기자들을 대거 투입하여 오라리 마을을 샅샅이 누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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