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14> 오라리 방화 추적기 ②

   
 
  불타는 오라리. 미군 촬영반이 제작한 4·3 무성기록영화 '제주도 메이데이'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이 영화에서 방화는 '폭도들이 한 것'처럼 편집됐다.  
 

"방화는 우익이 좌익들의 집 불태운 것"
"당시 불지른 대청단원 생존" 접촉 시도

오라리 방화 추적기 ②
4·3취재반이 오라리 방화사건에 일찍부터 관심을 가졌던 것은 무성기록영화 '제주도 메이데이(May Day in Korea : Cheju-do)' 때문이었다.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보관된 이 영화는 미군이 촬영한 유일한 4·3 기록영화인데, 이 영화의 주 무대가 바로 불타는 오라리였다.

이 영화의 존재가 처음 알려진 것은 존 메릴의 논문에서다. 불타는 마을에서 피어오르는 포연의 모습과 함께 비행기 한 대가 섬의 상공을 선회하는 장면에서 영화가 시작된다고 기술한 존 메릴 논문은 당혹스런 표정의 여인이 경찰에게 자기 마을이 어떻게 게릴라들로부터 습격받았는지를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고 덧붙였다. 이어 남녀 시신들이 비춰지고 다시 불타는 마을이 나오는데, 그게 오라리 마을이란 것이다.

그 영화 필름을 나중에 입수해서 자세히 살펴봤더니, 미군 촬영반은 사전에 상당히 '준비된 장면'을 촬영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불타는 오라리를 공중에서 촬영했을 뿐만 아니라, 지상에서 토벌대의 진격 광경을 입체적으로 동시 촬영했기 때문이다. 곳곳에 의도적인 연출을 했다는 장면도 엿보였다. 미군 촬영반이 '우발적인 사건'을 그냥 촬영했다고 볼 수는 없었다.

여기에 더하여 「동아일보」 특파원이 쓴 <제주도폭동 현지답사>라는 르포 기사에서도 오라리 사건을 자세히 다루고 있었다. 1948년 5월 9일자 「동아일보」에 보도된 르포기사는 '5월 1일 메이데이에도 농민 참살의 비극' '불바다로 화한 오라리부락'이란 소제목 아래 오라리에서 3시간의 교전이 있었고, 방화나 학살은 '폭도들이 한 행위'로 묘사되고 있었다.

1982년 발간된 「제주도지」에도 '오라리 전투'란 표제 아래 "5월 1일 제주읍 오라리에서 경찰 토벌대와 폭도 주력부대가 싸움이 붙어 사건 후 처음으로 경찰이 이들의 주력부대를 격퇴했다…마을은 순식간에 격전장으로 변해서 3시간에의 격전이 계속되었다. 이날의 격전에서 마을 민가 상당 채가 불타고 10여 명의 주민이 희생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윤락 중위의 증언은 이런 기존의 기록들을 뒤집는 것이었다. 이윤락 증언 내용과 기존 기록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4·3취재반은 오라리 방화사건의 진실을 찾기 위해 오라리 마을을 누비며 그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들을 찾아 나섰다.

주민 30여명을 만나 증언을 채록하다보니 기존의 기록들과는 다른 사건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났다. 그 중에도 고시성·고난향·고매향·고덕진·이규술·허두구·박내수·진창순·임갑생·김창주·박기찬 등이 의미있는 증언을 해주었다. 취재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오라리에서는 4·3 발발 이후 무장대와 토벌대에 의해 여러 차례 인명 피해가 있었다. 4월 30일 대동청년단 단원 부인 2명이 무장대에 의해 '민오름'으로 납치됐는데, 그 중 한 명은 탈출하고 다른 한 명(강공부 여인)이 피살됐다.

둘째, 그 다음날인 5월 1일 강공부 여인 장례식이 있었는데, 그 직후에 경찰의 지원을 받은 서청·대청 등 우익청년단체원들이 일부 주민을 좌익활동을 했다고 지목해 그들의 가옥에 불 질렀다는 것이다.

셋째, 마을이 불에 타자 20명 가량의 무장대가 우익청년들을 추격했고, 그 과정에서 경찰관 가족 1명(김규찬 순경 어머니)이 희생됐다.

넷째, 그 이후 경찰기동대가 출동해서 마을 입구에서 총기를 난사하는 바람에 주민 1명(고무생 여인)이 피살됐으나, 쌍방 간의 전투는 없었다.

마을 주민들의 증언은 대체적으로 이윤락 중위의 주장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마을 주민들은 당시 방화를 한 대청 단원이 제주시내에 살고 있다고 증언했다.

4·3취재반은 사건의 실체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마을 주민들이 방화범으로 지목한 대청 단원의 진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바로 그와의 접촉을 시도했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