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현장] <170>탐라사진작가협회 '가매기 모른 식게'전

   
 
  ▲ 제주4·3당시 최대 희생자를 냈던 조천읍 북촌·동복리 사연을 담은 탐라사진작가협회의 '가매기 모른 식게'전이 지난 1일부터 제주도문예회관 2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500여명 희생자 낸 동복·북촌리 사연 담아
사각 프레임속 아픈 가족사 보며 눈시울

63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다 보여주지 못한 이야기들이 사진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처음은 억울함에 눈물을 삼켰고 누가 알까 서로 입을 다물었던 일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대를 넘어 기억되고 또 지켜야할 일로 자리를 잡은 속내가 사각 프레임 안에 오롯이 자리를 잡았다.

지난 1일부터 제주도문예회관 2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탐라사진작가협회의 '가매기 모른 식게'전은 그런 이야기들로 채워져 눈길을 끌었다.

제주 4·3 당시 1949년 1월 17일 하룻새에 500여명이라는 희생자를 냈던 두 마을, 조천읍 북촌리와 동복리에서 치러지던 '가매기 모른 식게'는 비극의 역사를 말없이 이어온 '현장'이다. '가메기 모른 식게'는 제사가 끝난 뒤 까마귀가 걸명(제사 끝에 잡귀에 주기 위해 음식을 조금씩 뗀 것을 먹으로 오기도 전에 몰래 치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참혹하게 죽어간 가족을 가슴에 묻은 채 귀신도 모르게 치러야 했던 가족사를 드러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터. 하지만 사진전에는 김용택 동복리유족회장과 이재후 북촌리 유족회장, 힘들게 '집안'을 내준 유족들이 참석해 눈시울을 붉혔다.

"운 좋안 풀려난 지금꼬지 살암시녜" "그 삶이라는게 홈치…게메, 진짜 사난 살아서" 넋두리처럼 쏟아내는 말은 가족을 잃은 슬픔에 살아남은 자의 아픔까지 보태져 가슴을 친다.

하루에만 대 여섯집씩 '식겟집'만 도는 날을 수십년째 이어가고 있다. 처음에는 누가 볼까 서둘러 자리를 뜨며 치르던 것이 지금은 세대를 건너 손자에 손자까지 함께 한다. 굳이 제사를 치르는 배경을 말하지 않아도, 영정사진 하나 제대로 모시지 못해도 가족이 모두 모여 기억하고 나누고 전할 수 있다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렇게 사진으로 옮겨내는 작업도 쉽지 않았다. 유족회장을 통해 사전에 협의를 하고 찾아갔지만 몇몇 집은 쉽게 경계를 풀지도, 속내를 털어놓는 것도 꺼렸다.

하지만 사진전을 찾은 유족들의 시선은 한 결 가벼워 보였다. 마음 속 응어리 하나를 내려놓은 듯한 기분에 몇 번이고 가족들의 얼굴을 찾고 더듬었다. 소감이 어떤지를 묻는 것이 어색할 만큼 홀가분해하는 표정이 전시장을 채웠다.

김호천 탐사협 회장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연결고리라고는 했지만 아직까지 아픔을 간직한 현장이었다"며 "지금까지 밝혀진 진실 이외에 살아남은 유족들의 삶을 담을 수 있어 뜻 깊었다"고 말했다. 고 미 기자 popmee@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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