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38> 한·소 제주 정상회담

   
 
  1991년 4월 20일 제주신라호텔에서 열린 한·소 정상회담에서 축배를 들고 있는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 이 회담은 탈냉전의 시동을 알리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동서냉전 최대 피해지에서 냉전종식 약속
'평화의 섬' 용어 처음 보도…14년 뒤 결실

한·소 제주 정상회담
1991년 4월 제주국제공항 주변 도로와 중문 신라호텔 주변에는 색다른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붉은 바탕에 낫과 망치가 그려진 깃발, '철의 장막'의 상징인 소련 국기였다. 저 '붉은 깃발' 때문에 4·3 때 제주인들은 얼마나 많은 수모와 뼈저린 아픔을 당했던가. 그런 사연을 안고 있는 그 '적국'인 소련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약칭 '고르비')가 4월 19일 제주에 왔다. 

해방 직후 국제적인 냉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혹독한 희생을 치렀던 제주도민들은 이 역사의 변화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필자는 제주4·3의 진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언제부터인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미국과 소련이란 강대국의 고래 싸움에 새우처럼 등터진 것이 제주인이었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4·3이 일어나기까지의 경찰의 3·1 발포와 탄압, 서청의 횡포 등 민심을 자극한 상황이 있었는데도 미군정은 제주 문제를 오로지 이데올로기적 시각으로만 접근했다. 군정 당국에 반대하는 모든 움직임을 소련과 북한 등의 사주와 선동에 의한 것으로 간주해 대량 검거와 탄압에 나선 것이다. 제주도 유혈 사태도 이런 바탕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동서 냉전의 최대 피해지역이 바로 제주도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제주에 온 고르비는 소련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그 무렵 세계 민주진영으로부터 호의적인 지지를 얻고 있었다. 그것은 소련을 변모시킨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철학과 정책 때문이었다. 그의 이런 정책은 소련의 개혁과 개방뿐만 아니라, 동유럽의 민주화 개혁 등 세계 질서에도 큰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이런 업적으로 그는 199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소련 대통령의 제주 방문은 한반도 전체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소련의 동맹국인 북한에도 소련 국가원수가 직접 방문한 일은 없었다. 아마도 회담장소가 제주도로 정해진 이면에는 소련이 북한을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도 있었다.

19일 오후 9시 38분 도착하여 이튿날인 20일 오후 2시 떠난 고르비의 제주 방문은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다. 그것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냉전지역인 한반도에도 탈냉전의 시동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소 두 정상은 "한반도의 냉전 종식을 위해 북한의 개방 등 필요한 노력을 양국이 공동으로 촉진한다"는 공동 입장을 밝히기도 하였다. 그 첫 열매가 1991년 9월 18일에 이루어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후로 중국 장쩌민, 미국 빌 클린턴, 일본 하시모토 류타로·고이즈미 준이치로 등 한반도 주변 열강 정상들의 제주 방문이 이어지면서 제주는 '평화의 섬'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한·소 정상회담에 즈음하여 몇가지 색다른 기억이 있다. 하나는 취재 당하는 입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정상회담 취재차 외신 기자들이 제주에 많이 들어왔다. 그 가운데 일부가 4·3의 진실을 알기 위하여 제주시 이도2동에 있었던 '창고신문사'인 제민일보사를 방문한 것이다. 프랑스의 권위지 「르몽드」지 극동특파원인 필립 퐁 기자와 스웨덴신문 기자 등이 기억에 남는다.

다른 하나는 '평화의 섬'이란 용어를 처음 활자화했다는 것이다. 「제민일보」는 이 역사적인 회담을 앞두고 몇가지 시도를 하였다. 모스크바에 나가 있던 한국 유학생을 '통신원'으로 위촉, 회담 다음날 신문에 "고르비가 제주에 방문하던 날 모스크바에는 비가 내렸다"는 제하의 모스크바 분위기를 보도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4월 18일자에는 국제정치 분야에 밝은 문정인 교수(미 캔터키대학교)의 특별기고를 실었다. 그 기고문에 '평화의 섬'이란 어휘가 처음 등장하는데, 그 한알의 씨앗이 14년 뒤에 제주가 '평화의 섬'으로 선포되는 결실을 맺은 것이다.

필자는 한·소 정상회담 이후 한 강연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냉전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얼음과 같이 딱딱하고 차디찬 느낌이 아닐까. 그 얼음이 녹으면 무엇이 되는가. 그것은 고체가 아닌 액체인 물일 뿐이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