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우 제주문화예술재단 연구사

   
 
   
 
제주의 고려시대 역사유적은 크게 봐 환해장성, 항몽유적지, 불탑사오층석탑, 법화사지, 범섬전투 전적지, 거로능동산방묘 등의 6곳에 한정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 유적은 제주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자못 크다.

제주는 섬 지역으로 한반도와 중국대륙 및 일본 지역 등을 잇는 중간적 지점이고, 멀리 동남아 지역으로도 열려 있는 해상에 자리잡고 있다. 제주는 주변 지역과 교류가 잦을 수밖에 없는 지정학적 위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바닷길의 요충지로 주목되어 왔었거니와, 외부세력의 진입도 잦았다. 그래서 제주사회의 격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환해장성, 항몽유적지, 불탑사오층석탑, 법화사지, 범섬전투 전적지 등의 역사유적도 삼별초와 몽골족 및 최영장군의 제주출정군 등과 같은 외부세력의 제주 진입에서 파생되었음과 아울러, 제주사회의 격변과 외부문화의 수용 등을 초래했던 역사상을 엿볼 수 있다. 즉, 제주의 지정학적 위치가 야기했던 제주의 정체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다. 특히 이들 유적은 700여년 전 제주 사람이 애초 침략자로 맞닥뜨렸으나 점차적으로 더불어 살아 나아갔던 몽골족과 관련해 생겨났다. 또한 제주와 몽골의 교류로 파생된 '오메기술' 등의 제주 고유 음식 및 몽골어 차용의 제주어 등과 같은 문화적 인자는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다. 오늘날 중산간지대 마을, 즉 산촌(山村) 형성의 시초와 함께, 말관련 시설물이 제주 지역 도처에 명소로 자리잡게 된 것도 제주와 몽골의 만남에 힘입어 비롯된 바가 크다.

한편, 최근에 와서는 민족주의적 역사관과 그에 따른 역사교육의 폐해에 대한 논의가 갈수록 거세어져 나아가고, 그 대안으로 국가와 민족단위가 아니라 공통의 문화적 동질성을 지닌 일정 지역을 하나의 단위로 묶어 역사적 흐름을 파악하는 지역사 연구가 강조되고 있다. 이때 주요 범주의 단위 가운데 하나가 동아시권이다. 해당지역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중국·대만·일본·베트남 등이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바닷길을 통해 연결되는 지역으로 수천 년 동안 문화적 교류가 활발했던 한편, 현재도 한자문화권이라 일컫듯이, 문화적 동질성을 지닌 곳이다. 게다가 이들 지역 대부분은 13세기후반부터 14세기 후반 무렵에 걸쳐 몽골에 의해 정치적 통합을 이룬 적도 있었다. 동아시권의 문화적 교류와 융합은 이 동안 가장 왕성했으며, 그 문화적 영향은 현재도 이어져 남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제주는 13세기 후반 이후 몽골과의 교류가 직접적이고, 일상적으로 이루어졌던 터이라, 동아시아권 문화의 동질적 인자가 가장 많이 스며든 지역이라 아니할 수 없다. 즉, 제주는 동아시아문화사의 중추지역으로, 동아시아권의 문화적 동질성과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탐색해볼만한 지역이고, 또한 그것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제주의 정체성을 보다 더 넓은 안목에서 들여다 볼 수 있음과 함께, 동아시아세계사에서 뚜렷한 위상을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하겠다.

요컨대, 13~14세기 제주와 몽골의 만남으로 파생된 역사유적을 몽골 영향의 제주 음식, 몽골어 차용의 제주어, 제주 산촌의 생성기원과 현존 말 관련 시설물 등의 문화자원과 하나로 묶어 제주 고유의 문화기행프로그램을 기획·활용할 만 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제주사회 형성의 정체성이 제주와 몽골문화의 교류·융합에서 비롯된 바가 컸음을 널리 알리는 한편, 국제교류 활성화의 아이콘으로서 제주 지역의 이미지 부각과 국제교류 역량 강화의 기회가 마련될 수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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