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63> 언론연구원의 「탐사보도」

1994년 4월 KBS-TV에 방영됐던 제민일보 4·3취재반

'박종철 사건 보도' '4·3은 말한다' 꼽아
 4·3자료 수집·검증과 컴퓨터 활용 소개

한국언론연구원에서 발간한 「탐사보도」 표지
언론연구원의 「탐사보도」
1996년 한국언론연구원이 제민일보의 연재 기획물 '4·3은 말한다'를 탐사보도의 우수사례로 꼽아 원고를 청탁해왔다. 언론연구원은 「탐사보도」라는 책을 발간할 계획임을 아울러 밝혔다. 언론연구원은 언론 연구조사와 언론인에 대한 재교육을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이다.

그때까지도 '탐사보도'라는 어휘가 생소했다. 사전적인 의미는 "개인이나 조직, 국가가 숨기고자 하는 중요한 사안을 독자적으로 파헤치는 보도행위" 또는 "언론이 독립적인 시각과 관점을 갖고 객관화된 방법론을 통해 사건의 이면에 숨겨진 배경을 밝히는 과학적인 저널리즘 양식"으로 설명돼 있다.

탐사보도는 미국 등 외국 언론에서 널리 통용되었다. 그 성격을 잘 말해주는 사례로 1969년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저질러진 '밀라이 학살사건' 심층 보도, 1973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상대 진영에 도청장치를 설치했던 '워터게이트 사건' 폭로기사, 1976년 미국 군수업체가 일본 정계에 뇌물을 뿌린 '록히드 사건' 특종보도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언론은 이승만 정권과 곧 이어진 장기간의 군사정권에 짓눌려 유감스럽게도 이런 탐사보도의 영역을 확보하지 못하였다. 김영삼 문민정부 이후 언론 통제가 완화되면서 뒤늦게나마 이런 분야에 눈길을 돌리게 된 것이다. 한국언론연구원 신우재 원장은 「탐사보도」 발간사에서 "국내에서는 그 의미마저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탐사보도의 정확한 정의를 내리는 한편 실제 취재보도활동에 도움이 되도록 우리 현실에 맞는 탐사보도의 한국적 모델을 설정하기 위해 이 책을 펴낸다"고 밝힐 정도였다.

그래서 탐사보도의 한국적 모델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폭로기사, '4·3은 말한다' 발굴 탐사보도 등을 꼽은 것이다. 이런 주문에 따라 '4·3은 말한다' 연재에 관한 원고는 4·3취재반 김종민 기자가 썼다. 제주4·3의 개요와 취재 동기, 준비작업, 증언채록, 자료 수집과 검증, 컴퓨터 활용, 취재보도 결과 등이 자세히 기술되었다. 3만6000자에 이르는 장문의 원고였다.

그 중에서 이런 글이 기억에 남는다. "'4·3은 말한다' 연재가 '심층보도 우수작'이란 과분한 평가를 받았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4·3이란 특별한 주제 때문에 심층취재를 하지 않으면 안될 '절실한 필요성' 덕분이다. 자료·증언의 '철저한 검증'이나 비교적 상세히 다룬 '컴퓨터 활용'도 취재반이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채택한 필요성의 산물이다"

취재과정에서 가장 힘쓴 부분은 뭐니뭐니해도 검증이었다. 4·3취재반이 처음 대했던 4·3 관련자료들은 대부분 오류투성이였다. 체험자의 증언도 그대로 믿기에는 허점이 많았다. 4·3취재반에게는 작은 허점도 용납될 수 없었기에 입버릇처럼 검증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점은 앞에서 충분히 밝혔으니 여기서는 검증 과정에 일조한 컴퓨터의 활용에 대해 잠시 살펴보겠다.

지금은 컴퓨터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1988년에 도입한 4·3취재반 전용 컴퓨터는 제주도내 언론사 기자의 1호 컴퓨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4·3취재반도 처음엔 수집한 각종 자료와 채록한 증언을 노트에 적는 작업으로 진행했다. 그러나 날로 쌓여가는 자료 정리를 수기 작업으로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어렵게 컴퓨터를 들인 것이다. 

김종민 기자는 매뉴얼을 익히느라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만든 '한국인'이란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의 원리를 활용하여 '4·3정리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이 프로그램은 4·3 관련자료들을 날짜, 지명, 인명, 단체, 주제어, 출처와 메모 별로 입력하는 형식이었다.

4·3취재가 어느 정도 축적되다보니 희생자 명단만 해도 1만5000명에 달했다. 여기에다 4·3 자료, 채록된 증언 등을 입력하다보니 데이터의 양은 수만 개로 늘어났다. 이렇게 많은 데이터를 기억력에 의존해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컴퓨터는 데이터베이스 검색으로 필요한 자료를 시기별, 장소별, 사건별 등 주문에 따라 배출해냈다. 연재 서술방법을 시기별 편년체로 택했기 때문에 컴퓨터가 자료 제공에 큰 도움을 준 것은 두말 할 것도 없다.

더 나아가 컴퓨터는 자료를 통계화하여 새로운 데이터를 창출해내는가 하면 컴퓨터 통신으로 자료 검색의 영역도 넓혔다. 이 「탐사보도」 발간은 한국 언론계에 탐사보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컴퓨터 활용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회는 '4·3에 대한 외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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