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민 건축가

   
 
     
 
길과 경관문제로 제주가 들썩이고 있다. 주지하듯 올레길로 대한민국의 관광문화가 걷기 중심으로 바뀌고, 제주의 세계7대 자연경관 선정 문제에 전 국민의 관심이 쏠려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당연한 현상이다.

그런데 자연경관 못지않게 마을과 도시를 매개로 우리가 매일 살아가며 만들어가는 우리 주변의 물리적 환경의 경관 문제가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자연과 잘 어울리고 살기 좋으면서도 아름다운 마을의 모습을 만드는 것은 '신이 내린' 제주라는 자연의 특별한 선물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인데도 말이다. 나아가 섬의 잠재력을 높여 더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릴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본래 건축은 자연을 대상으로 인간의 욕구를 분출하는 수단이 돼왔다. 제주시 연동이나 노형지구에 조성된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보며 주위경관과 잘 어울리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전체가 아파트 단지화 돼가는 것도 자본증식과 현금교환의 수단으로써 그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삼성혈이나 성산일출봉 주변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는 펜션과, 해안가의 양식장들이 자연환경과 조화되지 못한 걸 알면서도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도 같은 이유다. 결국 사적 이익추구를 조금씩 양보하더라도 궁극적으로 추구할 제주 경관의 정의조차 너무 주관적이고 애매해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과연 제주에 적합한 물리적 환경의 경관은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할까.

경관은 우리 모두가 성숙한 배려 의식 위에 눈과 마음으로 대화하며 만들어가는 것이다. 아름다운 도시 경관으로 유명한 런던의 경우 놀랍게도 건축과 도시법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가이드라인만이 있을 뿐이다. 굳이 법으로 일일이 제한하지 않으면서도 경관이 보존되고 더욱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이웃의 보이지 않는 눈의 성숙함 때문이다.

영국에서 건축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동네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공청회가 열린다. 대다수 주민이 동의해야 건축허가가 나기 때문에 지극히 중요한 공청회가 될 수밖에 없는데 거기서 나오는 의견들을 들어보면 개개인의 이익 침해에 대한 논의보다는 마을 전체의 경관과 미관에 대한 의견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에 놀랄 때가 많다. 경관을 해친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반려되고 마을 주민들이 동의할 때까지 공청회는 계속된다. 그 결과로 만들어지는 물리적 환경의 도시경관은 세계에서도 유례가 드물 정도로 뛰어난데 이는 이웃이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면서도 논리적이지 못한 의견은 설득하고 들어주는 성숙한 시민 문화가 도시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축적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올레길이 한 사람의 노력과 관심으로 출발해 제주의 자연경관을 일깨우는 기폭제가 됐듯 아름다운 경관을 위해서는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개인의 이익추구를 조정하며 만들어가는 방법 밖에 없다. 관 주도의 경관조성은 주로 법과 규제를 이용해야 하기에 무리가 따르고 정치상황에 휘둘릴 가능성이 많다. 경관이란 것 자체가 우리 모두가 궁극적으로 희망하는 미적인 방향이라고 할 수 있기에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고 성숙한 의식과 대화에 의존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마을과 도시는 우리 모두의 삶의 터전이기에 서로의 이익과 의견이 더욱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으며 시간을 충분히 갖고 조금씩 만들어가야 한다.

두어해 전 제주특별자치도 경관 및 관리계획 용역보고에 대한 공청회에 방청객으로 참석한 적이 있다. 500페이지 가량의 방대한 조사 내용과 제시한 경관에 대한 가이드라인에 감탄했고 큰 기대를 걸어왔는데 그 뒤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다. 많은 예산과 시간, 대한민국 최고 전문가들의 노력을 종합해 만들어낸 자료를 활용해 최소한 제주의 경관은 무엇이어야 할지, 앞으로 경관에 대해 우리가 거듭 노력하고 고민해야할 부분은 무엇인지 생각하는 기회로 적극 활용해야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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