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대 김민수 교수의 재임용 탈락이 부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재임용 심사 기준이 불합리하다는 것이 판결의 주된 이유다. 이로서 한국 최고의 국립 서울대학은 불합리한 기준으로 멀쩡한 교수를 강단에서 쫓아내려고 한 불명예를 떠 안았고, 김 교수는 무능한 교수라는 낙인을 씻고 명예를 되찾았다. 너무도 당연한 결과이고 당사자에겐 축하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이 소식을 저녁 아홉 시 뉴스에서 텔레비전으로 시청하다 나는 착잡함과 서글픔 그리고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에서도 몇 해 전 납득할 수 없는 석연 찮은 이유로 한 동료 교수가 재임용에 탈락되어 결국 강단에서 쫓겨난 불행한 사태를 겪었기 때문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김민수 교수는 같은 대학 선배 교수들의 친일 미술 행적을 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했다가 괘씸죄를 덮어썼다고 한다. 한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내노라는 지성인 집단에서도 학자적 양심에서 나온 논리보다는 '좋은 게 좋다'는 시정 잡배의 의리가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친일 미술인들의 행적은 이미 우리 미술판에서 객관적 검증이 끝난 진부한 사실이다. 그런데 나의 법상식으로 볼 때, 기존의 판례를 깬 이번의 원고 승소 판결은 법리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그 동안 1년 4개월에 걸쳐 김 교수가 동료 교수와 학생들의 성원 속에서 강단을 포기하지 않고 대학 권력과 끈질긴 싸움을 벌여온 과정에서 재판부가 '서울대 교수의 재임용 탈락'이란 여론의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지금까지 대다수 타 대학 교수들의 재임용 탈락은 학교와 재단의 합리적인 심사 기준에 따라 취해진 조치란 말인가.

'불합리한 기준'은 어디서나 다 마찬가지였다.


지난 96년 재임용에서 탈락돼 강단을 떠난 제주대학교 강상덕 교수의 사례도 이와 꼭 같다. 강 교수 역시 교육과 연구에서 학자로서의 아무런 하자가 없었고, 재임용 탈락의 이면에는 교양과목에서 낙제를 많이 시킨 점, 입시 채점에서 정답 판정을 둘러싼 의견 대립 등으로 선배 동료 교수들과의 잦은 마찰과 갈등이 내재돼 있었다. 당시 겨울방학 중에도 재직 교원 반수 이상이 서명으로 시행 과정상의 문제점과 탈락의 부당성을 들어 재심의를 요청하였으나 학교 당국은 이를 철저히 외면하고 무시했다. 이번 서울대 김 교수처럼 끝까지 학교에 남아 싸웠더라면 혹시 어떻게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김 교수와는 달리 지방에서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강 교수가 불리함을 알고도 마지막으로 호소할 길은 법밖에 없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법은 명백한 제도의 피해자인 강 교수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재판부는 "재임용을 하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학교의 재량이므로 행정소송의 대상이 안 된다"는 기존의 판례를 그대로 따랐다. 지극히 경직되고 고답적인 법 해석이었다.

1975년 군사정권에 의해 도입된 교수재임용 제도는 요즘 개폐가 논의중인 국가보안법과 함께 대표적인 악법으로 손꼽힌다. 교수재임용제는 재임용의 거부 사유와 거부에 대한 구제 절차를 규정하지 않아 교원의 신분 보장을 천명한 헌법정신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현행법에서 교수의 지위는 '시한부 임시직'이며 재임용에 탈락되면 사법부에 재심 청구조차 할 수 없는 상태이다. 악법의 요건은 상위법의 정신에 모순될 뿐만 아니라 자의적인 해석의 여지를 남겨 제도의 악용을 규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적어도 한 사회가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다면, 악법은 법이 아니므로 지켜야 할 의무는 없고 저항해야 할 권리만 있다.

이번 서울대 김 교수의 재판 결과를 본 어느 동료 교수는 같이 재임용에 탈락돼도 서울대 교수는 법의 구제를 받고, 지방대 교수는 그렇지 못한다며 자조적인 불만을 토로했다. 이유 있는 불만이다. 가진 자나 못 가진 자,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 지방대 교수나 서울대 교수나 간에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국민의 정부가 보다 떳떳하게 '새 천년'을 이야기 할 수 있으려면, 악법은 고치거나 폐지하고 과거 악법의 피해자들도 구제하고 보상하는 일에 적극성을 보여야 할 것이다. <김현돈·제주대 교수·미학>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