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78> 국정감사와 대정부 질의

4·3 학술대회에서 만난 인사들과 촬영한 스냅사진. 왼쪽부터 현기영·김정기·김석범·추미애·장정언·양조훈·강실.

추 의원, 대정부 질의 20분간 4·3만 거론
진상조사, 대통령 공개사과 건의 등 질의

국정감사와 대정부 질의
4·3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국회 국정감사(국감)의 시초는 1989년 9월 국회 내무위원회의 제주도 국감 때였다. 당시 민주당 소속 최기선 의원은 4·3 유족을 증인으로 내세워 4·3의 참혹상을 드러냈고, 정부와 제주도를 상대로 진상조사를 촉구한 바 있다. 그 후로 국감 때가 되면 간헐적으로 4·3 문제가 다루어졌다. 그때까지 수감 대상은 주로 제주도였다.

그런데 1999년 국감 때는 그 대상이 경찰로 바뀌었다. 그해 9월 29일 제주도와 제주지방경찰청을 대상으로 한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의 국감에서 여당인 국민회의 소속 추미애 의원이 경찰을 집중 공략한 것이다. 그것도 '형살자 명부'라는 물증을 들이대면서 연좌제 적용의 근거인지를 추궁했다.

그 문건은 이도영 박사가 제보한 것이다. 중문면 도순리 주민 52명에 대한 총살 집행 기록을 담고 있는 이 경찰 문서에는 사망자의 본적, 나이, 성별, 남로당과의 관계, 총살 일시, 총살 장소뿐만 아니라 유가족의 사상과 동태까지 상세히 실려 있었다. 문서 하단에는 작성한 경찰관의 이름도 적혀 있어서 한눈에 경찰이 취급해온 연좌제 관리 자료임을 알 수 있었다.

'연좌제'란 자기 행위가 아닌 가족이나 친족의 행위 때문에 처벌을 받는 것을 가리킨다. 이 제도는 조선시대에 성행했다. 그러나 1894년 갑오개혁 때 조선왕조는 "범인 이외에 연좌시키는 법은 일절 시행 말라"고 선포함으로써 구시대 악법을 털어냈다. 그러나 제주4·3의 광풍 속에서 이 악습이 되살아났다. 집안의 청년이 사라지면 연좌제를 적용해 그 부모형제를 학살한 것이다.

비극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토벌대에게 가족이 희생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후로도 유족들은 공직 진출이나 승진, 사관학교 입학, 해외 출입 제한 등 온갖 불이익을 당했다. 멍에가 대물림된 것이다. 

추미애 의원이 공개한 경찰 문건은 5·16 직후인 1960년대에 작성된 것이다. 연좌제를 위한 문건이었다. 그런데 연좌제가 공식적으로 폐지 선포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 전두환이 이끄는 '국보위'에서였다. 정권을 찬탈한 국보위 세력은 민심을 얻기 위해 연좌제 폐지를 발표했다. 그렇다고 연좌제 폐해가 금방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추 의원은 국감에서 "과거 사관학교 진학이나 공무원 임용, 외국여행까지 제한했던 연좌제를 적용할 당시 어떤 자료에 근거했는지를 밝히라"고 따져 물었다. 추 의원은 또한 "도의회에서 4·3 피해 보고서를 발간할 때 경찰이 '4·3 전담반'을 구성해 피해신고를 한 사람을 대상으로 일일이 확인 작업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가?"고 추궁했다.

이에 경찰 측은 "1981년 3월 24일 내무부의 연좌제 폐지 지침으로 연좌제의 적용은 사라지게 되었고, 제주경찰청은 이 지침에 의거해 4·3사건 관련 자료를 폐기 처분했다"고 밝혔다. 또한 "4·3 전담반은 운영한 사실이 없고, 다만 제주도의회에서 피해자 신고를 받은 건에 대해서 신고 내용이 사실인지 여부를 일부 확인하다 그만둔 적이 있다"고 꼬리를 내렸다.

1999년 들어 수형인 명부 발굴, 형살자 명부 공개 등 4·3 진실찾기의 굵직한 걸음을 해온 추 의원의 행보는 그해 12월의 4·3특별법 국회통과 때 절정에 이른다. 그런데 그 이전에 기억해야할 행적이 있다. 4·3에 대한 추 의원의 집념과 진정성을 가늠케 하는 실화라 할 수 있다.

추 의원은 그해 10월 29일 제208회 정기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발표 제한시간 20분 모두를 제주4·3에 관한 질의로 채웠다. 대정부 질문의 제목은 '인권유린의 20세기를 정리해야 합니다'였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처럼 오랫동안 제주4·3을 거론한 일은 그 전에도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추 의원의 국회 본회의장 발언은 북촌사건, 토산리사건, 동광리사건 등 4·3의 피해 현장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무자비한 초토화 작전, 불법 계엄령, 역사교과서 왜곡, 제주도민의 가슴앓이 '레드 콤플렉스' 문제 등을 조목조목 지적한 후 국무총리에게 정부 차원의 진상 조사와 대통령의 공개 사과 등을 건의할 용의가 있느냐고 질의한 것이다.

그에 앞서 국민회의 원내총무실에서는 추 의원의 질의요지를 보고 기겁을 했다고 한다. 2000년 5월 총선을 코앞에 두고 열리는 제15대 마지막 정기국회여서 본회의 질의를 위한 국회의원들의 신청이 쇄도하고 있었다. 그만큼 경쟁률이 높았다. 그것도 대부분 총선을 의식, 지역구 관련 질의를 하기 위함이었다. 박상천 원내총무가 4·3문제만 질의하겠다는 추 의원에게 재고를 요청했다. 그러나 그녀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다음해 총선 때 추 의원의 선거구에선 여지없이 '빨갱이 국회의원'이란 삐라가 나돌았다. 

☞다음회는 '수난 이겨낸 4·3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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