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곤 제주특별자치도의회 행정자치위원장

   
 
     
 
이번 10·26 하반기 재·보궐 선거에서 단연 모든 국민의 관심을 끌었던 선거가 있다. 서울시장 선거. 시민후보로 나서서 기존 정치권의 염증에 대한 도전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가 관전 포인트였지만 네거티브 전략을 구사하지 않겠다는 승부수가 과연 성공할지도 이목을 끈 대목이었다.

그러나 내걸었던 공약이 기존의 관념을 깨기에 충분했다. 몇 가지만 살펴보자. 이미 예산의 80%가 집행된 양화대교 공사에 대해 미관과 바지선 충돌방지 차원에서 빨리 완성해야 한다는 상대 후보의 주장에 맞서 당선자는 현재의 미완성 상태로 두고 전시행정의 대표적 사례로 남겨야 한다는 공약을 폈다.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나 수중보 철거를 둘러싼 공방도 마찬가지다. 이미 진행 중인 사업일지라도 잘못된 점이 있으면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새 판을 짜야 한다는 후보를 서울시민들은 시장으로 선택했다. 거창한 공약이 아니라 절차와 원칙을 지키자는데 공감한 것이다. 과정 자체가 공약이었던 셈이다.

해군기지로 돌아와 보자. 15만t급 크루즈선 2척이 동시 접안할 수 있는 능력, 크루즈 선박이 선회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에 대한 신뢰성이 없다는 것이 도의회 행정사무조사 결과 확인됐다. 제주도의 민군복합항 민항시설 검증 TF팀도 의혹을 제기했다. 해군기지 부지 내 매장문화재 발굴조사도 탈법과 편법이 난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화재청의 두 차례에 걸친 발굴허가가 '발굴조사업무처리지침'을 위반하고 있고, 부분공사 승인 역시 '발굴조사의 방법 및 절차 등에 관한 규정'(제17조)을 위반한 사실이 줄곧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애초부터 원칙과 절차적 정당성이 무시된 채 사업이 추진돼 온 해군기지 건설은 지역주민들의 생존권마저 위협하며 갈등만 양산시켜왔을 뿐만 아니라, 공권력을 등에 업고 공사를 강행하면서 구럼비 바위를 깨부수고 있다. 다른 사정도 있겠지만 이미 1400억원이라는 공사비가 투입돼 14%의 공사가 진척됐기 때문에 공사중지는 어렵다는 게 정부나 도지사의 입장이다.

그러나 양화대교는 공사가 80%나 진행됐어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어서 전시행정의 폐단이 빚어낸 참극을 보여주는 현장으로 남겨두겠다고 하고 있지 않은가. 한강 수중보를 철거하고 생태천으로 바꿔 옛날처럼 목욕도 하고 백사장도 생겨야 한다고 하고 있지 않은가.

조선 중기 제주판관을 지낸 바 있는 남봉 김치(金緻)는 제주의 풍광을 '천간지비'라고 표현했다. 제주를 '하늘이 아끼고 땅이 감추어 놓은 곳'이라고 극찬한 것이다. 그 아름다운 풍광 중 하나인 강정 구럼비 바위가 무너지고 있다. 바윗돌 하나 훼손되는 것을 주민들의 '악다구니'로 지켜온 세월이 무상하게 포클레인의 삽날 아래 무참히 파괴되고 있다.

이미 깨부순 구럼비 바위를 원상복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러나 해군기지 건설은 제주도민에게 관광미항이라는 허울과 속임수로 진행돼 왔음이 백일하에 드러난 마당에 새 판을 짜야 한다. 잘못된 절차나 원칙을 적당히 입막음 하고 지역발전을 위한답시고 국비예산을 미끼로 요리조리 던지며 낚시질이나 하고 있는 국책사업은 마땅히 원점에서 재검토돼야 한다.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설계변경 등 제반 절차가 다시 진행돼야 한다. 서울시장 선거 결과를 보면서 얻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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