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89> 닻올린 특별법 제정운동 ②

서울에서 결성된 4·3범국민위원회 참여 일꾼들. 왼쪽부터 고은수·김명식·허상수·양한권·정윤형·한동완·고병수(앉은 이)·한재훈·고현정(앉은 이)·강동조·양인성·박찬식.

종교인대회·전국시민단체 잇단 성명발표
범국민위, 특위 만들어 특별법 초안 준비

닻올린 특별법 제정운동 ②
30년 가까이 군사정부 하에서 암울한 시대를 겪은 한국은 4·3 발발 50주년을 앞두고 민주화의 길을 걸으면서 변화하고 있었다. 앞에서 밝혔지만, 1997년 9월에는 제주4·3범국민위원회가 국회에서 여야 4당 정당 초청 4·3 정책토론회를 개최할 정도로 변전한 것이다. 1년 전 4·3 진상규명 촉구를 위해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국회를 방문했다가 정문에서 쫓겨날 때와 비교하면 확실히 달라진 분위기였다.

정당 초청 정책토론회에서 사회를 맡은 서중석 교수는 "만일 각 당의 다짐이 대선 겨냥용으로 그친다면 역사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 교수는 이어 "대선 후에도 반드시 성사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만큼 대선을 앞둔 각 당의 선심 약속을 믿기 어렵다는 염려가 있었다. 그런데 그해 12월 대선에서 4·3문제 해결을 가장 강력하게 공약했던 김대중 후보가 당선된 것이다.

국민의 정부가 출범 직후 취한 가시적인 조치는 새정치국민회의 내에 4·3사건진상규명특별위원회를 설치한 일과, 그 특위 주최로 제주와 서울에서 두번의 공청회를 개최한 일이다. 1998년 5월 제주에서 열린 1차 공청회에서  '제주4·3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를 주제로 발표한 김순태 교수는 특별법 제정을 통한 구체적 진실규명과 4·3피해자에 대한 명예회복과 적절한 배상을 강조했다.

이러한 특별법 제정에 대한 목소리는 그해 9월 국회에서 열린 제2차 공청회에서도 반복됐다. '제주4·3사건의 해결 방향'이란 주제발표를 한 서중석 교수는 발표 내용의 상당 부분을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에 할애했고, 법안 속에 담겨야 할 내용을 구체적으로 발표했다. 어느덧 4·3특별법 제정의 물살은 역류할 수 없는 대세로 굳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국민회의 4·3특위 활동은 공청회 이후 별 진전이 없었다. 게다가 1996년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의 주동으로 국회 4·3특위 구성 결의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었으나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에도 심의 한번 없이 서랍에서 잠자는 형국이었다.

1998년 11월 27일 제주4·3사월제공동준비위원회(공동대표 강남규·고상호·양동윤)는 "제주4·3특별법 제정 및 국회 4·3특위 구성을 촉구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같은날 4·3범국민위원회는 "김대중 대통령의 공약사항인 4·3특별법 제정 촉구와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을 조속히 이행하라"는 청원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11월30일 7개 종단과 4·3범국민위가 공동주최한 '제주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전국 종교인대회'에서는 대통령이 4·3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나서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성명서가 채택됐다.

12월2일 서울 올림픽파크호텔에서 열린 제1회 전국시민단체대회에서도 제주4·3특별법 제정 문제가 화두로 부각됐다. 이 대회는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60여개 NGO단체가 모인 행사였다. 이 대회에서 제주시민단체협의회(상임공동대표 김태성·임문철)가 발의한 "정부와 국회는 4·3 진상규명과 제주도민의 명예회복을 위해 4·3특별법을 즉각 제정하라"는 성명서를 공식 채택했다. 이 대회에서 이지훈(제주범도민회 집행위원장)이 4·3특별법의 제정 당위성을 설명했다.

이때 발표된 성명 내용 가운데 "현 정부가 제주도민들의 상처를 계속 방치하고 넘어간다면, 역대 정부와 마찬가지로 냉혹한 평가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임을 엄중 경고한다"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당시 제주시민단체협의회에는 제주범도민회, 제주환경운동연합, 제주경실련, 제주YMCA, 제주YWCA, 제주여민회, 제주흥사단 등 7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었다.  

한편 4·3특별법 제정운동에 불을 지핀 4·3범국민위원회는 이 무렵 조직 개편에 들어갔다. 그동안 운영위원장을 맡아 열정적인 활동을 해오던 김명식 시인이 홀연히 강원도 화천으로 떠나는 바람에 그 후임에 고희범(한겨레신문 광고국장)이, 사무처장에는 양한권(중등 교사)이 각각 맡았다. 또 4·3특별법 제정의 산파 역할을 하기위해 산하에 법률특별위원회를 신설했다. 그래서 그동안 정책기획특위 위원장을 맡았던 김순태 교수가 법률특위 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정책기획특위 위원장은 강창일 교수(현 국회의원)가 맡았다.

신설된 법률특위에서는 자체적으로 4·3특별법 초안을 만들고, 정치·사회적인 여건에 대한 고려와 관련 법률과의 충돌문제 등을 검토하며 다듬는 작업을 계속 추진했다. 이 작업을 위해 서울대 법대 출신들이 팀워크를 이뤘는데, 김 교수 이외에 사법시험 1차 시험을 통과한 부상일(현 한나라당제주도당 4·3특위 위원장)과 사법시험 준비생 강 건(현 대전지법 판사) 등이 참여했다.  

☞다음회는 '4·3도민연대 출범'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