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92> 서울 4·3촉구대회

 

김대중 정부 각성 촉구…명동성당서 농성
제주위령제에 온 여당 대표엔 항의성 야유

서울 4·3촉구대회
1999년 4월 3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제주4·3진상규명명예회복추진범국민위원회 주최로 '제주4·3 제51주기 추모식 및 명예회복 촉구대회'가 열렸다. 행사장에는 시민·학생 등 3000여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뤘다. 서울에서 열린 4·3 관련행사로는 가장 많은 인파가 모였다. 

서울에서 이런 대규모 행사는 두번 열렸다. 한번은 4·3범국민위 주최로 1998년 4월 4일 종로2가 탑골공원에서 열린 '제주4·3 제50주년 기념식 및 명예회복 촉구대회'였다. 그때만 해도 김대중 정부가 갓 출범한 때여서 설렘과 기대감 속에 행사가 진행됐다.

그런데 1999년 행사장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기대를 걸었던 김대중 정부가 출범 1년이 지나도록 4·3문제 해결에 별 진전을 보이지 않자 실망과 분노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행사 주최 측인 범국민위 쪽에서도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절박감 속에 시민사회단체와 대학가에 참여를 호소했고, 이에 많은 시민단체와 대학생들이 호응한 것이다. 이날 행사장 무대 전면에는 "김대중 대통령은 4·3해결 공약을 이행해야 합니다"란 대형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또한 한쪽에는 "진상규명·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라"란 플래카드도 붙여졌다.

이날 오후 3시30분부터 시작된 행사는 열띤 분위기 속에서 2시간 가량 진행됐다. 처음 연단에 오른 4·3범국민위 김중배 상임공동대표는 추모사를 통해 "51년에 이르기까지 4·3이 역사에 이름 하나 내붙이지 못한 채 해독되지 않는 암호처럼 나부끼고 있는데 대해 이 땅에 살아가는 자로서 마땅히 4·3영령에 참회해야 한다"면서 "4·3의 진상규명과 명예로운 이름을 찾아주는 일이 시급한 역사적 과제"라고 역설했다.

이어 범국민위 고문인 이돈명 변호사는 "정부와 집권당은 하루빨리 법을 만들고 취해야 할 조치를 취해 희생된 수많은 영혼들이 안심하고 눈을 감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민권공대위 상임의장인 홍근수 목사는 "김대중 대통령은 4·3특별법을 제정, 과거 정권과 차별성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대회는 ①국회 4·3특위 구성 ②4·3특별법 제정 ③희생된 양민들의 명예회복과 피해배상 ④김대중 대통령의 4·3공약 이행 등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한 뒤, 시가행진으로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플래카드와 피켓 등을 앞세우고 마로니에공원에서 종로2가 탑골공원까지 서울 한복판 3㎞의 거리를 행진하며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1년전 50주기 행사 때 탑골공원에서 마로니에공원까지 걷던 길을 거꾸로 행진한 것이다. 이날 행사장 주변에는 강요배 화백의 '그림으로 보는 제주4·3'과 박재동 화백의 '억새울음-제주4·3이야기' 작품들이 전시됐고, 4·3해결 촉구 범국민 서명대도 설치됐다.

행사가 끝난 직후 범국민위 관계자들과 재경 4·3유족들은 명동성당 쪽으로 자리를 옮겨 성당 입구에서 4·3해결을 위한 국회 특위 구성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농성에 돌입했다. 이 농성은 5일간 지속됐다.
한편 이날 제주시종합경기장 광장에서 열린 '제주4·3사건 희생자 제51주년 범도민 위령제'에서도 김대중 정부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4·3유족회 박창욱 회장은 추도사를 통해 "김대중 대통령이 대선 후보 당시 4·3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했기에 도민들이 높은 지지율을 보였으나, 국민의 정부에서도 하나 진전된 게 없다"고 지적하고 "광주나 거창사건과 달리 제주4·3이 해결의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는 것은 도세가 약한 때문이냐"고 항변하기도 했다.

이어 여당인 국민회의 조세형 총재대행의 추도사를 대독하기 위해 유재건 부총재가 연단에 서자 일부 유족들이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전에 볼 수 없었던 행동이었다. 제주의 위령제 현장에도 "대통령은 선거공약 이행하라", "국회는 4·3특별법 제정하라"는 플래카드가 나부꼈다.

다음날인 4월 4일 이런 열기를 등에 업고 제주도의회, 4개 시·군 의회, 유족회, 4·3단체가 합동으로 참여하는 '4·3 전국순례 홍보단'이 4박 5일의 일정으로 전국 순례 길에 올랐다.

☞다음회는 '전국순례 홍보단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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