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94> 전국순례 홍보단 활동 ②

여야 한 목소리로 "4·3특별법 제정" 약속
"특별법 제정 안되면 정치생명 끝" 경고도

1999년 4월 8일 여당인 국민회의 중앙당사 앞에서 제주에서 올라간 전국 순례 홍보단과 재경인사들이 함께 4·3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국순례 홍보단 활동 ②
제주도의회와 4개 시·군의회 의원, 4·3관련단체 임원, 유족 등 80여명으로 구성된 순례 홍보단이 전국을 누빈 후 서울에 입성하자 정치권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홍보단은 1999년 4월8일 여당인 국민회의와 야당인 한나라당 중앙당사 앞에서 '제주4·3 해결을 위한 국회 특위 구성 및 특별법 제정 촉구대회'를 동시에 가질 예정이었다. 정치권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촉구대회를 열기 전 각 정당 대표단과 홍보단 대표간의 간담회가 이뤄졌다.

국민회의 대표와의 만남은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회의 중앙당사 총재실에서 열렸다. 국민회의 측에서는 안동선 지도위원회 의장과 김진배 4·3특위 위원장, 추미애 의원 등이 참석했다. 국민회의 측이 간담회를 '총재실'에서 마련한 것은 그만큼 홍보단 대표들을 배려하는 인상을 주기 위한 조치였던 것 같다. 홍보단 측에선 김영훈 도의회 부의장, 강영철 제주시의회 의장, 한건현 서귀포시회 의장, 윤창호 북제주군의회 의장, 이종우 남제주군의회 의장, 박창욱 4·3유족회장, 양금석 4·3도민연대 공동대표와 서울에서 합류한 고희범 4·3범국민위 운영위원장 등이 자리를 같이 했다.

이 자리서 홍보단 대표들은 "4·3 해결에 대한 김대중 대통령의 공약이 10여 차례 있었으나 1년이 넘도록 가시적 조치가 없었다"면서 4·3문제 해결에 대한 구체적인 일정을 밝히라고 강도 높게 요구했다. 이에 대해 안동선 의장은 "4·3문제 해결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하다"고 전제하고 "국회가 정상화되는 즉시 국회 4·3특위를 구성하고 연내에 4·3특별법이 제정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같은 시각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한나라당 대표와 홍보단 대표와의 간담회도 열렸다. 한나라당 측에서는 이부영 원내총무와 제주출신 국회의원인 변정일·양정규·현경대 의원이 참석했다. 홍보단 측에서는 제주도의회 강신정 의장, 오만식 4·3특위 위원장을 비롯한 도의원들과 조승옥 4·3범도민위 위원장, 김두연 4·3유족회 부회장 등이 자리를 같이 했다.

홍보단 대표들은 "정치권은 지난해 위령제 때도 4·3 해결을 약속했으나 1년이 지나도록 국회에서 언급조차 없었다"면서 강한 톤으로 성토했다. 더 나아가 박희수 도의원은 국회의원들 면전에서 "연내에 특별법이 제정되지 않는다면 제주출신 의원들의 정치생명은 끝난 것"이라고 윽박질렀다. 이에 대해 이부영 총무는 "이회창 총재로부터 4·3 해결을 직접 지시받았다"면서 "4월 내 총무회담을 열어 특위 구성을 제안할 것이며, 연내에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홍보단의 강경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양 당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받아내긴 했지만, 홍보단 대표들은 그래도 여당인 국민회의 중앙당사 앞에서는 당초 계획대로 4·3특별법 제정 등의 촉구대회를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열린 촉구대회에는 제주에서 올라간 홍보단 이외에도 4·3범국민위 회원과 재경 유족 등 200여 명이 참석해 "김대중 대통령은 4·3 해결 공약을 이행하라", "국민회의는 국회 4·3특위 구성과 특별법 제정을 즉각 추진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고희범 운영위원장과 오만식 위원장이 각각 국민회의와 한나라당 측과의 면담 결과를 보고하면서 시작된 촉구대회는 4·3도민연대 공동대표인 임문철 신부의 연대사, 박창욱 유족회장의 호소문 낭독, 권형택 민주개혁국민연대 조직위원장의 성명서 낭독, 강종호 재경 유족대표의 4·3특별법 제정 촉구 결의문 낭독 순으로 이어졌다. 이쯤해서 홍보단은 4박 5일의 일정을 통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는 뿌듯한 마음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돌출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제주에서 발행하는 모 일간지가 "도민 혈세로 전국순례…81명으로 대규모 편성 취지 무색"이라는 제목 아래 마치 홍보단이 전국 관광여행에 나선 것인 양 홍보단을 폄훼하는 기사를 실은 것이다. 4·3취재반의 김종민 기자를 파견해 4박 5일간 홍보단과 일정을 함께하며 기사를 송고한 제민일보와 달리 그 일간지는 수행기자를 보내지도 않았다. 홍보단은 발끈했다. 홍보단은 즉각 참가단체 연명으로 규탄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해당 신문사에 찾아가 의자를 집어던지는 등 거칠게 항의했다.

이 소동은 신문사측이 바로 사과하면서 하나의 해프닝으로 막을 내렸다. 당시 홍보단 폄훼기사를 썼던 기자는 "홍보단이 방대한 규모로 구성돼 그 취지가 무색하다는 뜻으로 기사를 쓴 것인데, 제목이 과도하게 자극적으로 붙여지면서 문제가 확산됐다"면서 "종합적으로 볼 때 그 기사가 숲보다는 나무만 본 측면이 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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