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104> 한나라당 특별법 발의

1999년 10월 11일 한나라당 제주도지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4·3특별법 시안을 발표하고 있는 변정일 의원.

변정일 등 제주출신 의원 적극 행보 성과
국민회의는 특위구성안만 만지작해 '빈축'

한나라당 특별법 발의
1999년 10월11일 변정일 한나라당 제주도지부장이 도지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을 전격 발표했다. 변 도지부장이 밝힌 스케줄은 11개조와 부칙 1항으로 이뤄진 4·3특별법 시안을 4·3단체 등과의 간담회를 거쳐 확정한 후 변정일·양정규·현경대 등 제주출신 세 국회의원의 공동 발의로 11월초 정기국회에 상정, 연내 통과를 목표로 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무렵 4·3 진영은 특별법 제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법안 발표 이틀 전인 9일 4·3도민연대가 제주시청 옆 어울림마당에서 주최한 '4·3특별법 쟁취를 위한 1차 도민대회'에서도 제주출신 세 국회의원에게 공개 질의를 통해 4·3특별법 제정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히라고 촉구한 바 있다.

변 의원은 이에 대해 "국회 4·3특위 등을 통한 진상규명 결과를 토대로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이 순서지만 정부·여당 측의 가시적인 조치가 없기 때문에 두 의원과 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모아 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날 특별법 시안을 발표한 변정일 의원은 1992년 제14대 국회 진출 이후 4·3문제 해결을 위해 꾸준한 활동을 해왔다. 1993년 제주지역총학생회협의회(의장 오영훈)가 4·3특위 구성 요구 청원서를 국회에 낼 때 대표 소개의원으로 나섰고, 1994년과 1996년에는 각각 75명, 152명의 국회의원 서명을 받아 국회 4·3특위 구성 결의안을 발의했다. 국회의원으로 재선된 후 1998년부터 한나라당 제주도지부장을 맡게 되자 도지부 차원에서 특별법안 만들기 작업을 해온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발표된 특별법 시안은 국회 차원의 진상규명 조사와는 별도로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특별위원회를 두어 4·3자료 수집 및 분석, 백서 발간, 사과 등의 정부 입장표명 방법, 역사관 건립 등을 심의하도록 했다. 또 특별위원회에서 의결한 사항을 집행하기 위해 제주도지사 소속으로 집행위원회를 두도록 했다. 희생자와 유족 등 4·3관련자에 대한 불이익처우 금지 조항과 함께 특별위와 집행위의 요구가 있을 경우 정부기관 및 단체에서 자료를 제출하는 의무조항도 명시했다.

희생자 및 유족 가운데 생계 곤란자에게는 생활보호법에 의한 지급금 외에 별도로 생활지원금을 지급하도록 의무화하는 규정도 두었다. 특히 4월 3일을 국가추념일로 제정하고 제주도지역에 한해서 공휴일로 지정하는 '4·3추념일 제정'안도 눈길을 끌었다.

다만, 4·3사건의 정의를 "1948년 4월 3일 기점으로 제주도 전역에서 발생한 소요사태 및 그 진압과정을 말한다"고 단순하게 규정해서 논란의 불씨를 남겼다. 이에 대해 변 의원은 특별법의 국회통과를 최우선 목표로 두어 불필요한 이념논쟁을 피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밝혔다.

4·3단체들은 정치권에서 특별법 시안이 처음 발표된데 대해 환영의 뜻을 표명했다. 그러면서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 국회의원들의 생색내기나 여론 호도용이 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이 법안을 한나라당이 조속히 당론으로 채택할 것과 여당인 국민회의와의 협력도 필수조건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제주출신 국회의원들은 이 특별법 시안을 놓고 4·3 관련 단체 임원들과 두차례 간담회를 갖고 의견을 수렴했다. 1차 간담회는 10월22일 중소기업지원센터에서, 2차 간담회는 11월2일 제주학생문화원에서 열렸다. 이런 여론수렴과정을 통해 당초 11개조이던 특별법 시안이 15개조로 늘어났다.

수정안의 가장 큰 특징은 '재심의 특례' 조항을 신설한 것이다. 4·3 때 형식적이나마 유죄 판결을 선고받은 사람에 대해 형사소송법이나 군사법원법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밖에 호적 정정, 의료지원금 지급 규정 등을 신설하고, 유족의 개념을 희생자의 형제자매로 확대한 것 등을 들 수 있다.

한나라당은 제주출신 국회의원들이 제안한 4·3특별법안의 국회 상정을 당론으로 정했다. 진보 성향이 있는 이부영 의원이 당시 한나라당 원내총무를 맡고 있을 때인데, 별 이의 없이 이 방안이 채택됐다고 한다.

변정일 의원은 11월18일 국회의원 113명의 서명을 받아 4·3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 이전에 국회 4·3특위 구성 결의안이 국회에 발의된 적이 있었지만, 특별법안이 제출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변 의원은 이날 법안을 제출하면서 "특위 구성, 진상 규명, 특별법 제정이 원순서가 돼야 하지만, 15대 국회 역시 임기가 얼마 남아있지 않고 내년 4월 총선 등 환경적 제약이 따르는 상황이어서 특위보다는 특별법 제정안을 제출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여당인 국민회의 쪽에서는 그때까지도 특별법 대신에 실효성이 거의 없는 국회 4·3특위 구성안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를 바라보는 4·3연대회의로서는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다.

☞다음회는 '범국민위 특별법 공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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