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108> 특별법 제정 상경투쟁 ②

1999년 11월26일 전국NGO대회가 열리던 올림픽 파크텔 로비에서 전격적으로 가진 김성재 청와대 민정수석과 4·3상경투쟁단 대표들과의 면담. 한가운데 김 수석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김영훈·박창욱·양조훈 등이 앉아있다.

상경대표단-민정수석 만남 이후 대반전
국민회의 4일 만에 특별법안 국회 상정

특별법 제정 상경투쟁 ②
청와대 김성재 민정수석과 4·3상경투쟁단 대표들과의 면담은 1999년 11월26일 저녁 전국NGO대회가 열리고 있는 올림픽 파크텔 로비 한 모퉁이에서 이뤄졌다. 대표단은 4·3특별법 제정이 김대중 대통령의 대선 공약사항임을 재삼 강조하고, 국회 4·3특위 구성을 추진하고 있는 국민회의의 행보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대표단은 제주도민들의 분노가 폭발 직전이라면서 이런 사실을 대통령에게 정확히 전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김성재 수석은 "대통령께서 제주4·3사건으로 인한 제주도민들의 억울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 문제를 풀려는 의지도 분명하다"고 밝히고 "오늘 제기된 문제와 특별법 제정의 당위성을 대통령께 보고하겠다"고 약속했다. 특별법 제정운동에 최대의 위기를 맞은 4·3진영으로서는 한가닥 빛을 보는 것 같은 만남이었다.

다음날인 27일 국회 쪽 분위기를 알아보니 국민회의는 여전히 4·3특위 구성 결의안 통과를 위한 수순을 밟고 있었다. 이 국회 4·3특위 결의안은 국회의원 11명으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하되 그 활동시한은 2000년 5월29일까지로 되어 있었다. 총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그 조사위원회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음은 삼척동자도 알 일이었다. 그럼에도 박상천 원내총무가 주도한 이 결의안은 12월1일 실제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4·3상경투쟁단 대표 일부가 27일 서울 광진구에 있는 추미애 의원 사무실을 찾아갔다. 그동안 4·3문제 해결에 열정적인 활동을 보인 추 의원을 만나 이 난국을 타개할 대책을 진솔하게 협의했다. 추 의원도 당내 사정이 미묘함을 설명하고 그런 가운데도 특별법 제정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해 보자고 제안했다.

추 의원은 "일단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일부 조항에 집착하다가는 정기국회를 넘길 수 있기 때문에 서로 양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자면서 이야기를 풀어갔다. 피해배상 조항은 공동체적 보상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정부 기금을 출연하는 4·3재단 조항도 일단 밀고 가되 상황에 따라서는 포기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식이었다. 이에 대해 우리 쪽에서 "이런 수준이라면 법 제정을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볼멘소리도 나왔지만, 추 의원은 "법이 만들어지면 개정은 훨씬 쉽다"면서 우리를 설득했다.

필자는 4·3의 정의 조항에서 기점을 '1947년 3월 1일'로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고, 추 의원은 이를 수용했다. 어느 정도 이야기가 맞춰지자 추 의원은 "각서를 쓰자"고 제안했다. "웬 각서냐?"는 물음에 추 의원은 "오늘 나눈 이야기를 정리해서 나는 당 지도부를 설득할 테니 여러분은 4·3단체 대표들을 설득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순간 당황했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추 의원과 우리측 몇사람이 서명했다. 그러나 곧바로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국민회의가 특별법 제정으로 급선회했기 때문에 그 각서는 공개되지 않았다.

11월28일 청와대의 특명이 국민회의 임채정 정책위원회 의장에게 내려졌다. 그것은 "제주4·3특별법 제정을 무엇보다 우선해서 추진하라"는 내용이었다. 이때의 상황을 최근 김성재 당시 민정수석(문화관광부장관 역임)과 통화하여 자세히 들어봤다.

"4·3특별법 제정안은 원래 국민의 정부 청와대가 작성한 7대 개혁 입법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총선을 앞둔 국민회의 당내 사정으로 인해 뒷전으로 밀리는 분위기였죠. 전국NGO대회에서 만난 제주도 대표들의 이야기를 김대중 대통령께 그대로 보고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인권국가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서도 4·3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면서 적극 추진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정기국회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기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밀려서는 안된다는 점도 강조했고요. 이런 내용을 임채정 정책위 의장에게 전달하면서 대통령의 특별 관심사라고 재삼 강조했습니다" 

그동안 4·3특별법 제정안을 선호하면서도 당내 분위기에 밀려 엉거주춤한 상태에 있던 임채정 의장으로서는 백만대군을 얻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곧바로 국민회의 내 율사 출신 국회의원들이 동원되어 4·3특별법안 작성을 위한 밤샘작업이 진행됐다. 국민회의 제주도지부가 만든 법안을 기초로 해서 손질 작업을 벌인 것이다. 이 일을 추미애 의원이 주도했다.

드디어 나흘만인 12월1일 추미애·임채정·이상수·박상천 의원 등 103명을 발의자로 한 국민회의 4·3특별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것이다. 훗날 추미애·김성재·임채정 등이 제주명예도민으로 추대된 것은 바로 이런 공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회는 '4·3특별법 심의 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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