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제주파(派)’] 노리갤러리 이명복 작가·김은중 관장

사회성 강한 민중화가에서 ‘말’의 눈으로 세상 훑기 시도

2009년 노리갤러리 개관…지역 아이들과 공동 작업이어가

 

정말 순식간이었다. “제주에 가려고 한다”는 남편의 말에 “그러자” 답을 하기가 무섭게 ‘이동’이 시작됐다. 수 십 년 몸담았던 일터에 작별을 고하고 바다 건너 제주 고즈넉한 중산간 마을에 뚝딱뚝딱 지어진 갤러리가 삶터가 됐다. 갑작스런 일에 ‘적응’같은 말은 생각도 못했다. “살아가면서 조금씩…”. ‘제주살이’는 그렇게 시작됐다.

 

# ‘어디 한 번’으로 터잡아

2009년 제주현대미술관 초대전 답사를 하기 전까지 만해도 이명복 화가에게 제주의 이미지는 도시적이었다. 비행기에 몸을 싣고 그냥 휙 돌아보고 가던 까닭에 그 안에 있는 것들과 눈을 맞출 여유가 없었다. ‘자연의 신화 제주’라는 자신과는 거리가 있는 테마를 알아가기 위해 조금 느리게 제주와 눈을 맞추면서 ‘이곳이라면 살아가면서 알아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꼬박 10년 전 자신의 예술 세계를 위해 미국 뉴욕 정착을 계획했던 , 사회 저항적 성격이 다분한 화가에게 섬 땅 제주는 말 그대로 굴러온 돌이었다.

사실 그 때만 해도 강화도에 작업실을 두고 작품 활동을 했었다. 서울에 번듯한 직장(방송사)도 가지고 있었다.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에 국제사회 속 한국의 위치 같은 어려운 주제를 턱하니 캔버스에 옮겨온 화가에게 제주가 성에 찰리 없었다. 하지만 제주는 그런 화가의 마음도 끌어당겼다. ‘덤벼 볼 테면 덤벼봐라’하고 따귀를 때리듯 달려드는 제주의 것들에 ‘어디 한 번’하는 승부욕이 생겼던 것 같다. 2009년 5월 제주에 살기로 결심을 하고 같은 해 7월 터를 파기 시작해 12월 미술관 ‘노리 갤러리’를 개관했다.

화가인 자신이 아닌 함께 동행을 결심해준 아내 김은중씨를 위한 공간이다. 그렇게 김씨가 노리 갤러리의 관장으로 미술관 운영 전반을 맡고, 이 작가는 공간을 채우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 생각 등 많은 것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작가들을 제주로 부르고 지역과의 새로운 연결고리를 만들고 있다.

 

# 예술·창의성 등대 역할

 

제주에서 이 작가의 작품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민중미술’에 세상을 향한 저항의식 등을 옮겼던 붓 끝은 사람보다 더 선하고 큰 눈망울로 세상을 보는 말에 가 닿았다. 말은 이 작가에게 제주와 자연을 상징하는 오브제다. 여전히 사회에 일갈을 날리는 큰 머리에 짙은 페이소스를 뒤집어쓴 조금은 희화화한 것들도 있지만 갈수록 제주 말과 닮은 것들이 화폭에 옮겨진다.

지역에서 ‘말’을 통해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들과의 교감도 시도하고 있다. 지역에서 말을 작업하는 작가들과 조만간 ‘말’을 주제로 한 ‘큰 일’도 계획 중이다.

이 작가가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지역과의 교류다. 제주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의 존재였다. 지난해 한림초 2학년 아이들과 공동 작업을 하고 그 결과물을 미술관으로 옮기는 기분 좋은 시도를 했다. 생각보다 부모들의 참여가 저조했지만 올해는 그 판을 조금 키울 예정이다. 금악초 전교생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다. 중에 몇 명이라도 예술적 소질을 찾아내고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으로 대가는 충분하다.

이 작가는 “말이며 자연이라 부르는 것들은 사실 예전에는 멀리했던 것들”이라며 “이전 작품들과의 연속성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제주의 것들을 기록하고 또 이야기하는 방식을 찾아가는 일이 재미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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