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114> 법 제정 위해 뛴 사람들

4·3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1999년 12월16일 제주시 신산공원내 4·3해원방사탑을 찾아가 특별법 제정을 알리는 묵념을 하고 있는 4·3연대회의 임원들.

도민은 물론 전국의 양심인사들 적극 참여
정치·종교계·시민단체 등 모두가 일등공신

법 제정 위해 뛴 사람들
4·3특별법의 국회 통과는 역대 정권에서 은폐되고 금기시되던 제주4·3의 진실 규명과 억울한 누명을 쓴 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 작업을 국가 차원에서 실시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21세기를 앞둔 제주도민들에게 의미있는 선물이 되었다. 어쩌면 불가능하게만 여겼던 4·3특별법이 제정되기까지에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 다음은 4·3특별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다음날 「제민일보」(1999년 12월17일자)에 실린 김종민 기자의 '법 제정 위해 뛴 사람들' 기사다.

"지난 12월초 법안심사소위가 열리는 국회는 각각 법 제정을 위해 로비를 펼치려는 공무원과 관계자들로 인해 시장터를 방불케 했다. 그 한구석에는 4·3특별법 제정을 위해 제주도에서 올라간 4·3연대회의와 4·3범국민위 관계자들도 있었다. 이 무렵 국회의원들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여러 경로로 줄을 대보지만 겨우 보좌관을 만나 호소문 하나 전달하는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권력도, 돈도 없는 4·3연대회의는 4·3특별법안이 제출된지 불과 한달만에 통과되는 기적을 당당히 이뤄냈다.

박창욱(4·3유족회장)·강실(일본관서도민회 부회장)·김영훈(제주도의회 부의장)·양조훈(전 제민일보 편집국장 겸 4·3취재반장)·임문철(서문성당 주임신부)·송복남(민주노총 제주지역본부장)·김태성(제주YMCA 총무)씨가 4·3연대회의 공동대표로 노력했다. 특히 양동윤(4·3연대회의 기획단장)·이지훈(제주범도민회 집행위원장)·오영훈(4·3도민연대 사무국장)씨가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4·3범국민위원회(상임대표 김중배 전 한겨레신문 사장, 김찬국 전 상지대 총장,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고재식 한신대 총장)는 서울 쪽에서 4·3특별법 제정을 위해 큰 힘을 기울였다. 특히 4·3범국민위에서는 제주출신인 고희범씨(한겨레신문 광고국장)의 역할이 컸다. 제주출신 정윤형 교수는 작고하기 전까지 4·3범국민위 상임대표로 활동했다.

시민단체 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많은 노력을 했다. 국민회의 추미애 의원은 지난 9월15일 처음으로 4·3정부기록을 발굴, 공개함으로써 전국적으로 여론을 환기시켰고 이어 국정감사와 국회 대정부 질문을 통해 4·3진상규명을 촉구함으로써 꺼져가는 불씨를 살려냈다. 한나라당 변정일·양정규·현경대 의원은 특별법 제정에 제주출신 의원으로서 제 몫을 다했다는게 주변의 평가이다.

4·3특별법 제정운동에는 종교인들도 팔을 걷고 나섰다. 제주종교인협의회(공동대표 관효 스님·김덕연 교무·임문철 신부·정한진 목사)는 4·3치유와 화해를 위한 종교인대회를 열고 4·3특별법 제정을 정부에 촉구했다.

제주도의회 역시 도민대표기관의 몫을 톡톡히 했다. 4대 도의회(의장 장정언) 시절부터 4·3특별위원회(위원장 김영훈)를 구성해 4·3희생자 조사 활동을 벌이는 등 많은 역할을 했다. 이같은 활동은 현재 6대 도의회(의장 강신정) 4·3특위(위원장 오만식)까지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4·3연구소(소장 강창일)는 1989년 창립한 이래 꾸준히 조사·연구 활동을 벌였고 교육 강좌를 통해 4·3논의를 대중화하는데 큰 역할을 함으로써 4·3특별법이 제정되는데 밑거름이 됐다.

한편 몇해 전부터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해 살고 있는 강성구씨는 과거 민주화운동을 통해 쌓은 인맥을 바탕으로 국민회의 의원들을 설득, 4·3특별법 제정 과정에 숨은 공을 세웠다. 무엇보다도 제주도내 여론주도층으로부터 받은 2000인 서명을 통해 알 수 있듯이 4·3특별법 제정은 100만 내외 도민의 염원이 모여 이뤄낸 온 도민의 승리였다" 

물론 이 글에서 실명이 거명되지는 않았지만, 4·3특별법이 제정되기까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밑거름이 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이 기사를 전재하는 이유는 그 나름대로 4·3특별법 운동사의 큰 골격을 잘 잡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강성구'는 다소 낯설 것이다. 충북 제천 태생인 그는 1993년부터 애월읍에서 목장을 경영하고 있었다. 연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군부정권 시절 학생·노동운동으로 세차례 옥고를 치른 특수한 경력의 소유자다. 그는 이런 활동으로 다져진 민주화운동 진영의 인맥이 넓다.

"제주에 살다보니 4·3은 반드시 풀어야할 과제임을 절감했고요. 국민회의 김근태·추미애 의원과 전문위원들, 청와대 임삼진 비서관, 민주진영의 김상근 목사 등을 두루 만나 때로는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지요. 특별법 제정을 위해서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었지요"

강성구의 회고다. 그는 지금 서울 서대문구청 개방형 감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다음회는 '특별법 제정 축하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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