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 - 양조훈 육필기록] <118>봉기 가담했던 김시종 시인도 말문 열어

▲ 2000년 4월 15일 도쿄에서 열린 4·3사건 52주년 기념 강연회에서 4·3특별법 제정과정을 강연한 후 기념촬영. 왼쪽부터 양조훈, 김석범·양석일 소설가, 임철 교수, 김시종 시인, 윤학준 교수.
행사 후 재일본 4·3단체들 공동성명 발표
봉기 가담했던 김시종 시인도 말문 열어

특별법 일본 보고대회

제주4·3특별법 제정은 재일 제주인 사회에도 화제가 됐다. 제주출신 재일동포 가운데는 4·3과 얽혀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 대부분은 그동안 침묵을 지켜왔지만, 4·3의 진실에 대한 한국정부 차원의 조사가 진행되고, 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 작업이 진행된다는 것은 여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4·3특별법 제정과 앞으로의 진행 상황에 대한 보고 형식의 행사가 일본 오사카와 도쿄에서 각각 열렸다. 

오사카 행사는 2000년 4월 9일 '오사카의 제주도4·3사건을 생각하는 모임'(공동대표 강실·김은규·문경수·문여택) 주최로 재일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렸다. 주최 측은 김영훈 제주도의회 부의장과 양동윤 4·3도민연대 운영위원장을 초청해서 '4·3특별법의 제정과 의의'에 대한 설명을 듣고 궁금한 사항에 대해서 질의 응답하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4·3유족과 학자 등 1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 김영훈 부의장은 "4·3특별법은 4·3의 해결을 바라는 제주도민의 결집된 의지로 국회를 통과한 뒤 곧 시행되는 절차를 거치고 있지만 이 법이 제정됐다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이다"고 전제하고 "앞으로 4·3의 진상규명과 유가족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는 재일 제주인들이 고국사랑 향토사랑의 마음으로 유족회를 구성해서 적극 활동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편 도쿄 행사는 4월 15일 '도쿄의 제주도4·3사건을 생각하는 모임'(대표 문경수) 주최로 재일동포와 일본 측 학계·언론계 인사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YMCA 강당에서 열렸다. 이 장소는 1988년 제주4·3 40주년을 맞아 일본에서 처음으로 추도 기념강연회가 열렸던 유서 깊은 곳이다. 이날 행사에서 필자(양조훈)가 '4·3진상규명의 동향과 과제'란 주제 강연을 했다.

필자는 "4·3특별법 제정은 민간인들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지하에 가둬뒀던 4·3문제를 지상으로 꺼내서 공식적으로 논의하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밝히고 "최근에 한국에서 돌출된 문제를 보더라도 진상규명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며 재일동포사회의 적극적인 참여와 연대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미 한국에서는 시행령 제정을 둘러싸고 정부와 4·3 진영 사이에 첨예한 대립구도가 형성되고 있었다.

이같은 분위기를 의식한 도쿄와 오사카의 4·3사건을 생각하는 모임과 재일본 4·3사건 유족회 준비위원회 등 3개 단체는 이날 공동 명의로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4·3특별법은 비단 제주인과 한국인뿐만 아니라 인권과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세계인으로부터 공명을 얻게 될 것"이라고 평가하고,  "따라서 입법 취지에 맞는 후속작업이 반드시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성명은 소설가 김석범·양석일·김중명과 시인 김시종, 문경수 교수 등이 행사장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발표했다. 발표장에는 한국 기자만이 아니라 일본 언론인, 미국인 학자, 문학평론가 등 외국인도 10여 명이 참석, 눈길을 끌었다.

한편 이날 행사에서 김시종 시인은 4·3 당시 자신을 포함해 일본으로 피신한 재일동포들의 체험을 '4·3사건과 재일조선인'이란 제목으로 강연해 화제를 모았다. 직접 봉기세력에 가담했다가 일본으로 피신했던 그는 50여 년 만에 처음으로 4·3에 대한 말문을 연 것이다. 김 시인은 필자가 이날 강연할 때 "붉게 덧칠해진 것을 한 꺼풀 한 꺼풀 벗기다보니, 거기에는 '빨갱이'가 아니라 '사람'이 있었다"고 표현하자 박수를 쳤던 분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 남북한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그는 '경계(境界)의 시인'으로 유명하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방문 때 한국국적이 아닌 조선적(朝鮮籍·해방 후 남한이나 북한의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일본에 귀화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일본이 편의상 부여한 명칭)으로 행사에 초대됐던 유일한 인물로 그는 당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는 이 행사를 계기로 그해 50년 만에 고향 제주 땅을 밟았고, 2004년엔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일본에서 6권의 일본어 시집을 낸 김 시인은 일본 시단으로부터 인정받고 있는 몇 안 되는 한국인이다. 김 시인은 2007년에는 일본 공영방송 NHK에서 2시간짜리 다큐 '진혼의 여정'을 통해 집중 조명받기도 했다. 그는 장편소설 「화산도」 등 활발한 4·3 작품 활동을 해온 김석범 선생과는 대조를 이뤘다.

그래서 이날을 계기로 4·3에 대해 말문을 연 김시종 시인과 김석범 선생 이 대화를 나눈 내용이 일본에서 책으로 엮여 나왔다. 이 책은 2007년 제주대학교 출판부에 의해 「왜 계속 써왔는가 왜 침묵해 왔는가」라는 제목을 달고 한글판으로도 발간됐다.  ☞다음 회는 '월간조선 기고문 파문'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