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close

제민일보

사이드바 열기
HOME 레져/스포츠 백록기 20년 되돌아본 '영광의 순간들'
금호고, 승부차기에 울고 웃었다제2회 우승 후 10년만에 백록기 정상
준우승 2회·4강 1회 ‘축구명문’ 굳혀
강승남 기자
입력 2012-04-24 (화) 13:24:13 | 승인 2012-04-24 (화) 13:24:13 | 최종수정 2012-04-24 (화) 13:30:28

   
 
  ▲ 1994년 제2회 백록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금호고. 7년 만에 전국대회 우승이자 팀 통산 10번째 전국대회 제패.  
 
[두번째 이야기]지난해 제19회 대회까지 백록기 전국고등학교 축구대회에서 우승 2회와 준우승 2회, 공동 3위 1회라는 성적을 올린 금호고등학교. 금호고가 백록기 첫 우승을 차지한 대회는 바로 1994년 제2회 대회다.

당시 금호고는 결승전에서 영등포공고를 승부차기 끝에 4-3으로 누르고 백록기를 품었다. 경기 내용도 극적이었다.

1994년 7월 24일 제주종합경기장 주경기장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금호고는 전반 9분 영등포공고 김영호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며 끌려갔다.

당시 금호고는 주공격수 안재석이 경고누적으로 결장하며 좀처럼 공격의 활로를 뚫지 못했다.

경기장에 있는 모든 축구관계자와 팬들이 영등포공고의 우승을 생각하고 있는 후반 38분 기적 같은 골이 만들어진다. 후반 29분에 교체 투입된 1학년생 이연학이 동점골을 터뜨린 것.

결국 양 팀은 연장전에 승부차기에 돌입하게 된다. 금호고의 마지막 키커가 남은 상황에서 스코어는 3-3. 금호고의 마지막 키커 편무훈의 발을 떠난 공은 그대로 골문으로 빨려들어가며 대역전 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이로써 금호고는 1987년 체육부장관기 우승 이후 7년 만에 전국패권을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으며, 팀 통산 10번째 전국대회 우승의 위업도 달성했다.

   
 
  ▲ 제2회 대회 최우수선수로 선정된 고종수(사진 맨 오른쪽). '앙팡테리블' 고종수는 이후 청소년과 올림픽, 국가대표 등을 거치며 국내 최고의 선수로 활약했다.  
 
대회 최우수선수로는 2학년임에도 불구, 발군의 활약을 펼친 ‘앙팡테리블’ 고종수(현 수원삼성 코치)가 선정됐다. 고종수는 이후 청소년대표와 올림픽대표, 국가대표 등을 거치며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로 도약했다.

금호고가 다시 백록기 정상에 서기까지는 꼬박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2004년 제12회 대회에서 금호고는 결승전에서 한양공고를 연장 접전 끝에 1-0으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날 경기에서도 10년 전처럼 1학년생이 영웅으로 탄생했다. 연장 후반 4분 최수용 감독은 1년생 공격수 이승기를 투입했다. 이승기는 불과 1분 뒤 헤딩골로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2004년 제12회 대회 결승전은 전국 고교축구대회 역사상 처음으로 야간경기로 치러져 당시 큰 관심을 끌었다.

특히 대회 MVP로 뽑힌 금호고의 문대성은 제주출신이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이목이 집중됐다. 문대성은 서귀초등학교에서 5학년까지 축구선수로 활약하다, 가족의 이사로 숭실중으로 진학했었다.

금호고는 제13회 대회에서도 우승에 도전했지만, 결승전에서 장훈고와 전·후반을 1-1로 비기고 승부차기에서 4-5로 아깝게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또 16회 대회에선 광양제철고의 벽에 막히며 정상 도전에 실패했다.

또 1995년 4회 대회에선 4강에 진출, 축구명문으로서의 자존심을 지켰다.

   
 
  ▲ 금호고가 제12회 백록기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 선수들이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금호고가 우승을 차지했던 제12회 백록기 결승전은 전국 고교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야간경기로 진행, 큰 관심을 끌었다.  
 

 

강승남 기자  stipool@hanmail.net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강승남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icon
"제민일보 네이버에서 본다"

도내 일간지 유일 뉴스스탠드 시행

My뉴스 설정방법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