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 - 양조훈 육필기록] <149> 보고서 수정의견 심의 ②

   
 
  2003년 10월7일 열린 보고서 검토소위 회의모습. 고건 총리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신용하·김삼웅·서중석 위원이, 그 옆에 박원순 지원단장과 필자가 앉았다. 맞은편은 정부 위원들.  
 

4차례 검토소위 열어 33건 수정안 확정
전체회의날 중앙지에 "반쪽보고서" 기고

보고서 수정의견 심의 ②
2003년 9월말, 총리실의 발걸음이 훨씬 빨라졌다. 10월말 제주평화포럼에 참석하는 대통령이 제주4·3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발표할 수 있도록 4·3진상조사보고서를 최종 확정했으면 좋겠다는 지침이 청와대에서 시달된 것이다.

제주4·3사건처리지원단이 총리실에 보고한 '4·3보고서 확정을 위한 검토소위원회 운영계획'에는 수정의견에 대한 검토소위를 몇차례 가진 뒤, 4·3위원회 전체회의를 '10월20~23일' 사이에 개최하는 것으로 상정했다. 그런데 고건 국무총리가 이 안건을 보고 "너무 늦다"면서 전체회의를 '10월15일'에 개최하는 것으로 수정 지시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고건 총리는 서둘러 검토소위 제1차 회의를 9월26일 소집했다. 수정의견 마감 이틀전이었다. 2003년 3월 진상보고서를 조건부 의결할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검토소위에는 종전의 멤버 즉, 국방·법무장관, 법제처장 등 정무직 위원과 신용하(서울대 명예교수)·김삼웅(전 대한매일 주필)·유재갑(경기대 교수) 등 민간인 위원에다 역사학 전공인 서중석(성균관대 교수) 위원이 추가됐다. 원래 국방부 추천 민간인 위원은 김점곤 경희대 교수(예비역 소장)였으나 진상보고서가 조건부 의결될 때 반발, 사퇴하는 바람에 기획단에서 활동했던 유재갑 교수(예비역 대령)가 그 후임으로 위촉된 것이다.

종전처럼 박원순 기획단장, 강택상 지원단장과 필자도 검토소위 회의에 참석했다. 초대 김한욱 지원단장이 정부기록보존소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강택상 단장이 제2대 지원단장으로 부임한 것이다. 조영택 총리실 기획수석조정관(나중에 국무조정실장, 국회의원이 됨)도 참석해 많은 도움을 줬다.

고건 총리는 이날 회의에서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보고서를 마무리하는 작업은 역사적인 일이며, 중차대한 일"이라고 강조하고 "민간인 위원들이 수정의견을 잘 검토해서 유종의 미를 거두어 달라"고 당부했다. 또한 고 총리는 회의 주관위원으로 신용하 위원을 위촉했다. 이날 회의에서 검토소위 운영방향도 협의됐다.

신용하 주관위원 주재로 검토소위 제2차 회의는 10월1일, 제3차 회의는 10월4일 잇달아 열렸다. 그리고 제4차 회의는 10월7일 고건 총리의 주재아래 총리 집무실에서 열렸다. 이때는 정부 측 위원들도 모두 참석했다.

제4차 검토소위에서 수정의견 중 33건을 수정하는 '검토소위 수정안'을 확정하고, 이를 4·3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하기로 결정했다. 수정 내용은 표현 수정이나 삭제가 25건, 사실관계 내용 수정 6건, 새로운 자료에 의한 내용 추가 2건 등이었다. 앞에서 밝혔지만 새로운 자료나 증언에 의한 수정사항은 별로 없었다.

수정내용을 보면, 조병옥 경무부장의 '3·1사건 담화문'은 담화 요점만 기술하고, 담화문 내용과 평가부분을 삭제한다든가, 당시 법령에는 계엄령 선포의 국회 통고 조항이 없기 때문에 이를 의무조항으로 표현한 내용을 수정하고, 1949년 군법회의 때 국방경비법을 민간인에 대해서 적용할 수 없다는 표현을 고치는 수준이었다. 또한 249명에 대한 사형집행이 1949년 10월2일에 이뤄졌기 때문에 보고서의 '1949년 7월경' 기술 내용을 고치고, 2연대 선발대의 제주도착 날짜와 부대의 철수 날짜가 잘못 기술됐다는 지적에 따라 이를 수정하는 정도였다.

이날 회의에서는 이런 수정의견보다 오히려 보고서 서문(序文)에 담길 내용을 둘러싸고 열띤 공방이 있었다. 신용하 위원이 이 보고서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보·혁 간의 끊임없는 소모적 논쟁의 소재가 될 수 있다고 전제하고 "동 보고서는 4·3사건의 성격 규정과 역사적 평가를 위한 것보다는 4·3특별법의 목적인 사건 진상규명과 희생자 및 유족의 명예회복을 이행하기 위한 것"이란 내용을 서문에 밝히자고 제안하면서 논란이 일어난 것이다.

어쨌든 수정의견 심의는 이런 선에서 마무리됐다. 필자는 회의가 끝난 후 수정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고건 총리가 찾는다는 전갈이 왔다. 고 총리가 검토소위 위원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나에게 "그동안 수고했다"면서 와인을 따라줬다. 고 총리는 그 자리에서 지난번 4·3위령제 때 있었던 파동을 상기시키면서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일부 시민단체 회원들이 자신의 행사장 입장을 막았던 일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4·3진상조사보고서를 최종 확정할 날이 다가왔다. 제8차 4·3위원회 전체회의는 10월15일 오후 5시 정부중앙청사 국무총리실 대회의실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날 아침 일이 터지고 말았다. 나와 같은 사무실에서 진상조사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던 나종삼 전문위원(중령 예편)의 기고가 「조선일보」에 크게 실렸다. 진상보고서를 신랄하게 비판한 이 기고의 제목은 "4·3보고서 반쪽짜리 되나"였던 것이다. 

☞다음회는 '보고서 수정의견 심의' 제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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