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레타, 모델하우스 아닌 홍보관·갤러리 공간으로 설계
자연 조명·물이 떨어지는 붉은 벽 등 건축언어 함축 눈길

"의미 있는 랜드마크는 파격적인 모습을 통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역사적 맥락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의 산물"이라고 했다.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제주(이하 더 갤러리)'는 그런 의미에서 제주를, 제주 자연을 상징하는 문화 랜드마크로 손색이 없다. 멕시코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1931∼2011)의 유작(遺作)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날 새운 건축 장비며, 기준 없는 행정 잣대의 위협이 코 앞까지 다가온 상황에서도 고즈넉이 온 몸으로 제주를 품는다. '건축물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정감이 없으면 건축물이라 할 수 없다'는 레고레타의 지론처럼, 어떤 위압감 없이 섬과의 상생을 노래하는 그 곳은 원래 섬과 하나인 것처럼 뿌리를 내렸다.

 # 빛과 바람을 끌어들이다

'카사 델 아구아'는 스페인어로 '물의 집'이라는 뜻이다. 애초 제주국제컨벤션센터의 부속 호텔인 '카사 델 아구아'의 모델하우스로 짓기로 했으나, 갤러리 겸 홍보관으로 바뀌었다. 이 곳에 '더 갤러리'란 수식어가 따라붙는 이유다.

레고레타는 43억 원의 건축비가 들어간 이 건물의 영감을 '석양에 부서지는 금빛 바다와 바람, 원색의 제주 자연'에서 찾았다. 벽, 빛, 비례, 기하학적 형태, 색채 등으로 드러나는 '레고레타 스타일'이 갤러리 곳곳에 묻어난다. 안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낮으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리는 듯 느껴진다. 건축언어다. 사각의 투명한 유리 프레임은 사계절, 시시각각 자연이 연출하는 그대로의 제주가 투영된다. 어떤 조형물도, 세계 유명 작가의 작품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제주'를 보여주기 위한 배려다.

'자연을 건드리지 않고 조화를 이루면서 빛과 바람을 끌어들인' 이 건축물로 레고레타는 2010년 아메리칸 프로퍼티상을 받았다. 이후 다른 작품을 남기지 않고 타계했다.

더 갤러리는 유작(遺作)이라는 의미에 앞서 거장 레고레타의 건축을 한자리에 모아 설계한 건축 체험관이자 삶의 가장 편안한 자리에서 예술과 만나는 문화공간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극찬을 받고 있는 명작 중 하나라는 데 그 존재 가치를 가늠할 수 있다.

# 자연 최대한 살린 건축적 장치

레고레타는 모더니즘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고향인 멕시코적인 색채와 질감을 건축에 응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LA 퍼싱 스퀘어, 런던 패션&섬유박물관 등 이름난 작품을 남겼지만 그 수는 60여 곳에 불과하다. 그만큼 그 흔적이 뚜렷하다. 색과 빛, 물을 사랑했던 그의 건축에는 원색이 많이 들어가며 채광을 중시한다. 강렬하나 그것이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상생한다.

1~2층 포함 1279.4㎡ 공간 곳곳에서 그가 생각하는 건축미학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층으로 이동하는 공간은 넉넉한 햇살을 품은 분홍색 콘크리트 기둥이 자연조명이 된다. 분홍빛을 머금은 흰 벽면이 온화하면서도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지금은 단전·단수조치로 감상할 수 없지만 곳곳에 배치된 물은 공간을 부유하는 것처럼 연출한다. 그의 건축마다 등장하는 핵심요소인 물이 떨어지는 붉은 벽도 제자리를 잡고 있다.

제주의 강렬한 햇살이 맥시코의 그것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고 말한 그는 "돌과 바람, 하늘 등 자연을 최대한 느낄 수 있도록 건축적 장치를 했다"고 설명했다. 입구에 제주의 돌담을 연상 시키는 장치가 있는 것도 제주 특유의 화산송이 색을 메인 칼라로 선택한 것도 모두 의도적이다. 청회색에 비슷한,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톤 낮은 청색을 고민한 그는 직접 멕시코에서 도료를 공수했다. 냉·난방 시스템이 건축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아 공간을 단절하거나 겉돌지 않게 한 것이며 그 흔한 창틀 하나 쓰지 않았다. 바닥재 역시 자연색 그대로를 살리면서 다른 장치들을 돋보이게 배려했다. 전면이 유리로 돼 있어 중문해수욕장과 송악산, 가파도까지 앞 다퉈 안겨든다. 그 느낌은 이 세상을 떠도는 말이나 글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

# 임시 건물 아닌 문화 랜드마크로

지금 그 곳에는 '관계자외 출입금지'라는 낯선 팻말과 법원 결정을 알리는 불편한 안내가 이방인처럼 맴돌고 있다. 이달말까지 공평아트센터 공평갤러리 주관의 '레고레타-그의 공간을 품다'전시가 방패 역할을 하고 있다.

동행한 고성천 ㈔한국건축가협회 제주건축가회 부회장(건축사사무소 시유대 대표)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됐는지 안타깝다"며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멕시코의 하늘-향함'을 머리가 아득해지도록 올려다보다 찬찬히 더 갤러리를 살폈다.

그리고 미스 반 데 로에(Mise van der Rohe)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을 얘기했다. 1929년 스페인 몬주익에서 열렸던 바르셀로나 엑스포의 독일관이던 이 건물은 원래 합판으로 만든 가건물로 엑스포가 끝난 후 1930년 해체됐다. 하지만 건축에 대한 재조명 작업으로 1986년 복원, 세계의 건축가와 디자이너, 그리고 그들을 꿈꾸는 지망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고 부회장은 "레고레타가 생전 주변 자연과 일체를 감안해 설계한 공간인 만큼 이 곳을 떠나서는 그의 건축언어를 읽어내기 어렵다"며 "'임시 건물'이란 일방적 의미 부여로 철거를 한다면 다시 그만큼의 가치를 얻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나 비용이 들지 모를 일"이라고 경고했다.

<카사 델 아구아 절차>

  • 2007년 1월9일 제주도, ㈜JID 시행 앵커호텔 건축허가
  • 2008년 8월28일 ㈜JID, 가설건축물 '카사 델 아구아'축조
  • 2009년 11월2일 가설건축물 존치기간 1차 연장 신고
  • 2010년 7월2일         〃           2차 연장 신고
  • 2011년 6월30일 가설건축물 존치기간 만료
  • 2011년 10월19일 ㈜부영주택 사업 시행권·사업부지 양수
  • 2011년 12월1일 ㈜JID, '카사 델 아구아'인크레스코㈜에 임대
  • 2012년 5월12일 서귀포시, '카사 델 아구아'강제철거 행정대집행영장 통지
  • 2012년 5월16일 ㈜JID, 대집행영장통지처분 취소청구소송 제기
  • 2012년 7월23일 한국건축가협회, '카사 델 아구아'철거 반대 성명
  • 2012년 7월23일, 공평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서 전시회 시작
  • 2012년 7월23일 주한 멕시코 대사, 서귀포시에 철거 중단 요청
  • 2012년 7월25일 제주지법 1심 재판부 ㈜JID 패소 판결
  • 2012년 7월25일 ㈜JID, 패소 판결에 불복 항소장 제출
  • 2012년 8월2일 멕시코 외교장관, 정부에 '카사 델 아구아'철거 재검토 요청
  • 2012년 8월3일 서귀포시, 공평갤러리에 전시물 철수 공문 발송
  • 2012년 8월10일 제주예총·민예총 '카사 델 아구아'철거 반대 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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