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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미래가 살아 숨 쉬는 행복마을, 이도1동[읍면동마당] 제주시 이도1동
박훈석 기자
입력 2012-11-01 (목) 09:40:02 | 승인 2012-11-01 (목) 09:45:56 | 최종수정 2012-11-01 (목) 09:45:31

   
 
  ▲ 상업과 교통의 요충지로서 오랫동안 제주시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온 이도1동은 옛 도심의 전통자원을 관광자원으로 발굴,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매력 마을 만들기’에 땀방울을 쏟아붓고 있다. 사진은 문화의 거리에 위치한 이도1동 표지석과 기념비.  
 
탐라국 신화 삼성혈·오현단 등
제주의 역사·문화·교통 중심지
전통과 조화된 병풍·국수거리
지역자원 발굴로 공동화 대처

#역사·문화와 상업·교통의 요람

제주시 이도1동은 '역사와 미래가 살아 숨 쉬는 행복마을'이다. 탐라국의 건국신화가 전해지는 삼성혈이 있고, 조선시대 다섯 현인을 모신 오현단과 귤림서원, 제주 성지가 위치한 제주 역사 문화의 요람이다.

또 광양로-남문로-중앙로를 잇는 상업과 교통의 요충지로서 오랫동안 제주시 도심지역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품격 높은 동(洞) 지역으로 자리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밀집한 표구사와 전시회로 줄을 이었던 미술관, 도소매업이 최고 상권을 형성하면서 북적대는 쇼핑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제주를 대표하는 역사 문화와 교통 중심지로 자리했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도시계획이 본격화되면서 이도1동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새로운 도심지 조성 및 외곽동 택지개발사업으로 지역내 상권이 이동, 구 도심권 공동화 현상과 함께 대형 매장의 진출로 지역경제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자 동민 모두가 합심해 해결책을 찾아 행복한 미래를 열어가고 있다.

이도1동 주민센터·주민자치위원회 및 노인회, 통장협의회, 새마을지도자협의회·부녀회, 바르게살기위원회, 연합청년회, 청소년지도협의회, 새마을문고, 민속보존회, 장애인지원협의회 등의 자생단체를 필두로 동민 전체가 옛 부흥을 재현하기 위해 지역발전 슬로건과 목표, 추진전략을 세우고 실천하면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동민과 힘 모아 지역문제 해결

먼저 '동민과 하나되어 최고의 행복마을, 이도1동'이란 대 주제 아래 지역문제 해결을 위해 △참여와 소통 강화를 위한 현장행정 강화 중심의 행정구현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매력마을 만들기 △지역경제 활성화 시책 추진 △깨끗하고 아름다운 도심환경 조성 △나누고 배려하는 따뜻한 복지공동체 실현 등 5개 전략을 수립하는 등 지역문제를 동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팔을 걷어 부쳤다.

현장 출근제로 주민 불편사항을 처리하고, 소통 강화를 위한 소식지 발간 및 주민자치위원회 워크숍·열린사랑방 교실을 운영하면서 자치능력을 함양하고 있다.

특히 옛 도심의 전통자원을 관광자원으로 발굴한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매력 마을 만들기'는 구도심권의 경제 활성화와 함께 지역주민·관광객들에게 문화 향유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삼성혈 문화의 거리 조성사업을 꼽을 수 있다. 표구사 등 오랜 역사를 간직한 병풍 거리와 제주성지를 비롯해 국수거리 등 지역내 자원을 발굴해 차별화된 거리를 조성하고 있다.

'서말의 구슬을 꿰어 보배로 만드는 것'처럼 이도1동 주민들은 자발적인 참여와 자치 실현으로 전통과 현대를 조화롭게 엮으면서 미래 제주의 중심 역할을 재현하기 위해 땀방울을 쏟아붓고 있다.

"제주 역사를 품은 이도1동"

이도1동은 서쪽으로 남문 한길 동쪽, 동쪽으로는 '가락쿳내' 서쪽이 된다. 남족으로는 광양로, 북쪽으로는 관덕로를 경계로 한다. 탐라국 시조 3명 중 신인중 양을나(梁乙那)의 양기와 양유침의 거소로서, 가락천변의 가령촌을 중심으로 이도(二徒)라 처음 칭했다. 현재 중앙로∼남문로∼광양로를 잇는 상업 및 교통문화의 중심지이자 삼성혈·제주성지·오현단이 위치, 유서 깊고 시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 삼성혈  
 
▲삼성혈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34호로서, 모흥혈(毛興穴)이라고도 한다. 제주도 원주민의 발상지로서, 전설에 의하면 탐라국(耽羅國)의 시조 고을나(高乙那)·양을나(梁乙那)·부을나(夫乙那)의 3신인(神人)이 솟아났다는 곳이다. 조선시대 1526년(중종 21) 목사 이수동이 돌울타리를 쌓고 혈(穴) 북쪽에 홍문·혈비를 세워 후손들에게 혈제(穴祭)를 지내게 함으로써 성역화되었다. 1996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4월과 10월 삼성전에서 춘추제(春秋祭)를 지내고 매년 12월 10일 혈단에서 건시제(乾始祭)를 지낸다.

 

 

   
 
  ▲ 오현단  
 
▲오현단

1971년 8월 26일 제주도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었다. 제주성지의 북쪽과 인접한 오현단곳은 조선시대 유배된 김정, 정온, 송시열과 목사로 부임한 송인수, 안무사 김상헌 등 제주발전에 공헌한 다섯 사람을 배향한 옛 터이다. 지금도 단내에는 5현의 유적으로 오현의 위패를 상징하는 높이 43∼45cm, 너비 21∼23cm, 두께 14∼16cm의 조두석이 있는데 각자 33∼35cm 간격으로 배열되어 있다.

 

 

 

   
 
  ▲ 제주성지  
 
▲제주성지

1971년 8월26일 제주도기념물 제3호로 지정된 제주성지는 탐라국 수부(首府)의 성곽으로 축성됐지만 원래의 규모와 축성연대는 밝혀지지 않았다. 고려 숙종 때 화산암을 이용해 둘레 4,700척(약 1,424m), 높이 11척(약 3.3m)으로 확장·축조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인 1925∼1928년 제주항 개발로 성벽이 바다를 매립하는 골재로 사용, 지금은 오현단 부근의 격대 3개와 길이 85.1m, 높이 3.6∼4.3m의 성벽만 남아 있다. 현재 보존되는 격대 중 2개는 옛 조상들의 축성법을 알게 해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박훈석 기자  hss97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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