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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 못찾은 행불희생자 넋 위로[4·3 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177> 행불희생자 표석 설치
양조훈
입력 2012-11-12 (월) 18:44:07 | 승인 2012-11-12 (월) 18:44:07 | 최종수정 2012-11-12 (월) 18:47:00

   
 
  2009년에 설치된 제주4·3평화공원 내의 행방불명 희생자 표석들. 한복판에 형무소로 끌려가는 모습이 재연된 조형물이 세워졌다.  
 

형무소 등서 행불된 3429명 표석 세워
우여곡절 끝 4·3재단 첫사업으로 완료


행불희생자 표석 설치
"제주4·3사건 당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제주의 산과 들에서, 육지형무소에서, 또 깊은 바다에서 졸지에 희생되었으나 시신조차 수습할 수 없었던 행방불명 희생자는 4000여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제 영령님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고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교훈으로 삼기 위해 화해와 상생으로 거듭나는 4·3평화공원에 행방불명 희생자 개인별 표석을 설치하고 위령단을 마련하노니 곱디고운 넋으로 돌아와 영면하소서"

2009년 10월27일 제막된 제주4·3 행방불명자 표석 위령단에 새겨진 글이다.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위패봉안실 뒤쪽에 자리 잡은 행불 희생자 표석 설치 구역에는 모두 3429명의 행방불명자 개별 표석이 설치됐다. 이 표석에는 4·3중앙위원회에서 희생자로 결정한 행방불명자들의 이름이 새겨졌다. 희생자들의 무덤이 아니어서 '비석'이 아닌 '표석'으로 표현됐다.

제주4·3 희생자는 무덤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로 나눠진다. 같은 죽음이라 할지라도 가족의 시신을 찾아 매장한 유족과 그렇지 못한 유족의 한은 다르다. 부모형제의 사망일조차 모르고, 도대체 그 시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후자의 행방불명 희생자 유족들의 한은 매우 깊다. 오랜 세월 가슴앓이를 해온 그 유족들 중에는 시신이 없지만 고인의 옷가지 등을 묻은 '허묘(虛墓)'를 만들어 고인을 기리는 사람도 있다.

이런 행불 희생자 수가 4000~5000명으로 추정됐다. 이들은 제주 도내 비행장이나 야산, 바다 등에 암매장되거나 버려졌다. 6·25전쟁 발발 직후에는 이른바 예비검속 피해자들이 많았다. 또한 전국 각지의 형무소에 수감됐던 수형자들이 전쟁이 터지면서 집단 처형되는 등 피해가 심했다. 4·3문제가 하나둘 풀리면서 이들 행불 희생자 유족들은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위령공간을 요구해 왔다.

2008년 발족한 제주4·3평화재단이 첫 사업으로 추진한 것이 바로 행방불명 희생자 표석 설치사업이다. 이 사업은 총 사업비 14억원이 투입되어 그 이듬해 10월 마무리됐다. 이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몇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정부는 2008년 예산에 제주4·3평화재단 사업비 20억원을 계상했다. 그런데 바로 출범할 것으로 예상되던 4·3평화재단은 이사장 선출을 둘러싼 심한 산통을 겪으며 그해 11월에야 겨우 발족했다. 그래서 남아있는 짧은 기간에 사업비를 써야 할 문제가 대두됐다. 그런 시급성 때문에 바로 행불 희생자 표석 사업이 급부상한 것이다.

두번째는 4·3지원단에 파견된 행정자치부 공무원이 제동을 걸고 나선 점이다. 그 공무원은 "어떻게 재단 사업비로 희생자 개별 표석을 세울 수 있느냐?"고 따졌다. 그래서 필자가 행불 희생자가 생긴 역사적 배경과 그 유족들의 한을 설명했다. 그래도 수긍하지 않아 서로 언성을 높이며 말다툼까지 벌여 이를 무마시켰다.

세번째는 표석에 쓴 내용이었다. 평화재단에 파견된 공무원들이 급하게 서둘다보니 개별 표석마다 희생자 이름과 유족, 희생자의 출생일과 어느 지역에서 행불됐다는 단순한 내용만 기재됐다. 이에 따라 절절한 사연이 빠져 버린 무미건조한 내용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들이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왔다.

필자가 2009년 3월 4·3평화재단 상임이사로 부임하고 보니, 이미 개별 표석 제작은 마친 상태였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위령제단 복판에 조형물과 6개 위원회별 대표 표석을 만들어 그곳에 사연을 담아내는 작업을 추진했다.

조형물은 조각가 고민석의 작품이다. 네사람이 형무소로 끌려가는 모습을 재연한 청동 조각품으로, 그 중 한사람은 애타게 뒤돌아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또 형무소와 죽음의 문을 통과한 이면에는 서천 꽃밭으로 표현되는, 다른 세상에서 편히 안식하시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 앞에 배열한 '형무소에서 온 엽서' 내용들도 눈길을 끈다.

표석 설치 구역은 행방불명 장소와 성격에 따라 제주, 경인, 영남, 호남, 대전과 예비검속 등 모두 6개 구역으로 구분됐다. 제주 구역에는 1776명의 표석이, 경인 구역에는 마포·인천·부천·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던 494명의 표석이 설치됐다.

영남 구역은 대구·부산·마산·진주·김천형무소에 수감됐던 395명, 호남 구역은 목포와 전주·광주형무소에 수감됐던 334명, 대전 구역은 대전형무소에 수감됐던 244명의 표석이 설치됐다. 예비검속 구역에는 제주에서 행방불명된 186명의 표석이 마련됐다.

이 6개 구역마다 별도의 대표 표석이 설치됐고, 그 뒷면에 희생 경위와 사연을 새겼다. 그 과정에서 어떤 위원회에서는 장문의 글을 가지고 와 담아내라 막무가내로 요구하는 바람에 이를 조정하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총칼에 스러진 원혼들, 그들의 이름이나마 새기는데 꼬박 60여년의 세월이 걸린 것이다.  

☞다음회는 '4·3위원회 폐지 논란'


양조훈  yjh43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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