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준 한국금융연수원 교수·논설위원

   
 
     
 
서울시청 건너편 덕수궁쪽 보행로에는 커다란 전광판이 하나 서 있다. 현재 시내의 일산화탄소, 오존,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 측정치들을 실시간 숫자로 나타내주기 위한 것이다. 10여 년 전에는 이 전광판 상단에 '서울공기 제주처럼 됩니다'라는 큰 글씨가 반짝반짝 한 줄로 흘러가곤 했다. 서울에 와 있는 제주인들에게 그건 마치 든든한 보물을 가슴에 안고 있는 것 같은 자랑거리였다. 실제로 오래간만에 제주에 가는 경우 공항에 내리는 순간 폐가 확 트이는 느낌을 받곤 했다. 숨을 크게 쉬고 나면 돌담과 파릇한 색의 밭들 그리고 하얀 줄무늬 파도들이 시야에 속속 들어오면서 고향에 돌아온 실감을 하는 것이다. 제주가 고향이 아닌 관광객들도 제주공항에서 아마도 비슷한 감흥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서울 한복판 광화문에 있을 때나 제주시내 도로변에 있을 때나 숨 쉴 때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하기 시작했다. 시청 사거리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는 버스매연을 피하느라 숨을 한참 참으며 걷기도 했다. 물론 아직도 서울 청계산 등산을 가서 느끼는 공기보다 세화리 근처의 다랑쉬오름에서 맛보는 공기가 훨씬 더 청량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서울은 주변에 2000만 인구가 밀집해 사는 곳이고 제주는 58만 인구에 주산업이 청정자연을 경쟁력 원천으로 삼는 1차 산업과 관광업이지 않는가.

환경부가 발표한 대기환경월보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대기오염측정치중 대표적인 미세먼지 농도가 작년 5월 서울이 평균 52인 반면에 제주시는 51로서 큰 차이가 없다. 서귀포 평균은 44로서 아직까지 양호하기는 하다. 반면 일산화탄소는 서울 0.5에 제주 0.4, 서귀포 0.5로서 비슷하다. 아황산가스는 제주가 0.003으로서 서울의 절반수준에 불과하다는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서울은 민선자치정부가 들어선 지난 1996년에 1차 환경보존 10개년계획을 세우고 미세먼지를 제주도수준으로 낮춘다는 목표를 정했다. 자동차 배출가스 억제, 저유황유 공급 확대, 일반주택 도시가스 보급 확대 등 나중에는 제주도를 비롯한 전국 자치단체가 벤치마킹한 정책들을 맨 먼저 시도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효과적인 것인 천연가스 시내버스 보급이었다. 간선도로에서 시커먼 매연을 내뿜으며 달리던 경유 시내버스 8000여대를 2007년까지 전부 천연가스 버스로 교체한 것이다. 버스를 새로 교체할 때마다 엔진비용 차이를 전액 지원해준 것이다. 물론 서울시가 자치 단체 중 재정사정이 제일 여유가 있어서 이긴 하지만 다른 지자체가 하지 못한 일을 제일 역점을 두고 추진했고 그 결과 광화문 사거리 공기가 제주도 수준까지 개선된 것이다.

1차환경보전계획의 성공에 시민의 호응이 크자 서울시는 2006년부터 2차 10개년 계획에 착수했다. 목표는 2015년 대기 오염도를 동경수준을 따라잡겠다는 것이다. 사실 한반도 대기오염의 상당부분을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가 차지하기 때문에 중국에서 멀리 떨어진 동경을 서울이 따라 잡는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감을 반영하는 것이다. 서울시의 환경관련 예산 규모나 각종 시민참여 환경프로그램의 활동을 감안할 때 서울시의 목표가 공허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또한 세계 각 도시의 삶의 질이나 경쟁력에 대한 각종 국제기관의 평가에서 서울시의 순위가 최근 몇 년간 큰 폭으로 상승하는 것을 보면 이러한 서울시의 정책이 경제적으로도 충분한 타당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제주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제주공기가 서울공기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느끼는 관광객이 늘어날수록 제주관광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물론 8월과 9월 태풍시즌 제주의 대기오염도는 서울보다 확연하게 좋아진다. 그렇다고 "태풍시즌에만 제주에 오십사"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돈이 들더라도 우선 제주 시내버스와 관광버스를 천연가스 버스로 교체하는 일을 시급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행스럽게도 미국의 쉐일가스개발 붐으로 국제시장 천연가스 가격이 상당기간 안정적일 것으로 전망되므로 시기적으로도 정책추진의 최적 타이밍이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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