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이 제주대학교 병원 심장내과 교수·논설위원

   
 
     
 
필자는 두 아이의 엄마다. 하지만 '엄마'라는 말을 들을 때 가끔 부끄러워지기도 하는데 '엄마'의 역할 중 많은 부분을 필자의 '엄마'에게 맡겨 놓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 의사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때는 많은 제약이 있다. 의사 면허를 따고 대부분이 전문의 자격증까지 따는 우리나라의 의료제도에서는 결혼 적령기의 여의사는 전공의 과정을 밟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공의는 전문과의 수련을 받고 있는 의사로 과에 따라서 다르지만 대부분 4년 과정으로 이뤄져 있고 1~2년차에는 입원 환자의 주치의 역할을 하고 3~4년차에는 과의 수석전공의 역할을 주로 하게 된다. 필자는 전공의 1년차에 결혼을 했고 2년차에 첫 딸을 낳게 됐는데, 서울 지역 병원에서 수련을 받고 있었던 관계로 출산을 하고 첫 2개월의 휴가, 그리고 이후 1개월의 제주도 파견 근무 이후에는 아이와 완전히 떨어져 있었다. 제주도에 계신 친정어머니께서 정성을 다해 제주어로는 '할라간다 할라온다(핥아간다 핥아온다)' 하며 딸아이를 키워 주셨고 필자는 잘해야 한 달에 하루 정도 아이를 볼 수 있었다. 아이를 떼어놓은 엄마는 그저 가슴 아파하고 그리워하면 그만이었지만, 한 달에 한번 부쩍 자란 아이를 볼 때 눈에 같이 들어온 것은 점점 '할머니'가 돼 가는 필자의 어머니였다. 죄송하고 마음이 아팠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사실은 가장 필자가 편리한) 육아 방법이었기 때문에 둘째 아이까지 어머니께 맡기게 됐다.

2008년에 모교에 발령을 받고 난 이후에도 상황을 별로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필자가 친정집에 기생하면서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을 먹고 속 편하게 직장을 다니는 '흡혈귀' 생활을 하게 됐다.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 늦게 퇴근하며 응급 상황에는 시간 장소 따지지 않고 불려나가는 힘든 일을 한다는 핑계 하에 현재까지 계속 부모님의 딸 노릇만 하며 정작 필자의 아이들의 엄마 노릇은 뒤로 팽개치고 사는 게 아닌가 하고 문득문득 자책을 하게 된다.

그래서 필자는 흔한 말로 '복 존 년'이다. 모르는 사람에게 아이를 맡기고 걱정에 가슴을 치지도 않았으며 아이를 양육하는 방법 차이로 인해 주양육자와 의견이 다르지도 않았고 아침 일찍 자는 아이들을 내버려두고 출근을 하면서도 아이의 아침밥과 등교 시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며 심지어 은혜를 모르고 친정어머니와 싸우기도 한다. 복이 너무 좋아서 매일매일 죄를 짓고 또 죄를 짓지만, 그 죄를 모른 척 하고 살 수 있다.

자식의 입장에만 있을 때는 부모가 어떤 위치인지 정말 몰랐다.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자라면서 그 사랑이 당연한 것인 냥 생각했는데, 이제 부모의 위치가 돼 보니 그 넘치는 사랑을 그냥 주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말 안 듣고 자기주장 강한 초등학교 저학년 두 아이를 보면서 가끔씩 '어떻게 저런 것들이 내 속에서 나왔을까' 생각하고, '내 속에서 나온 애들인데 왜 이렇게 마음대로 안 될까'를 한탄하면서도 볼 때마다 아이들이 예뻐서 어쩔 줄 모르는 것은 '내 새끼'이기 때문이리라. 내 아버지도, 내 어머니도 그랬을까. 사춘기를 겪고 대학을 다니고 서울에서 수련과정을 밟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제주도로 돌아와 일을 하고 있는 지금까지 필자가 했던 수많은 잘못된 말과 행동들을 '내 새끼' 니까 잠시 꾸짖고 받아주셨을까. 머리 좀 컸다고 고분고분하게 행동하지도 않고 하는 말마다 지지 않고 대꾸를 하며 억울한 마음은 쉽게 표현하지만 고마워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그리도 어려워하는 필자가 부모님께 진심으로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지면을 빌려 써놓아 봤자 그 마음이 반이라도 표현될지 모르겠다.

내 큰 딸은 나한테 고마운 게 너무 많아서 심지어는 "나와 동생을 낳아주시느라 뚱뚱해지기까지 해서 고맙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그 표현력을 배워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딸아, 뚱뚱해진 건 그만 고마워하렴. 엄마가 그 문제는 네가 고마워하지 않아도 되게 애써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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