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논설위원

   
 
     
 
여름을 재촉하는 따스한 바람이 주위에 가득하지만, 마음은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고 답답하다. 계절의 여왕답게 5월의 햇살은 따뜻한데, 미디어를 가득채운 소식들은 가슴 한편을 시리게 한다.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과 과오가 전체를 어떻게 망가뜨릴 수 있는지 우리는 지금 그 현장을 날 것 그대로 보고 있다.

얼마 전 청와대 전 대변인이 미국에서 저지른 잘못된 행동 때문에 온 국민이 얼굴을 못 들 정도로 부끄러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욱이 불장난을 감추려는 어린아이처럼 그 위에 낙엽을 덮는 그릇된 판단은 온 나라를 다 태워버렸다.

따뜻하지만 마음 불편한 이 달에 맞는 한자성어가 있다. 나쁜 일을 덮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드러난다는 뜻을 가진 '욕개미창(欲蓋彌彰)'이다. 기원전, 공자가 기록한 '춘추좌씨전'에 나온다고 하니 참으로 오래된 말이다. 이 오래된 말이 2500년을 넘어 오늘의 대한민국과 제주특별자치도를 비추고 있다.

제주도는 유네스코가 인정한 천혜의 자원을 가지고 있다. 이 멋진 자원을 보전하기 위한 많은 제도적 장치들도 마련돼 있다. 행정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개인의 실수나 과오로 제주도 전체를 망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잘못된 판단이나 나쁜 일이 있을 때, 그냥 덮어두려는 시도는 이 좋은 시스템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다.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불씨를 마른 낙엽으로 덮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얼마 전 제주특별자치도 건축위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다 싶은 일이 벌어졌다. 건축위원회를 주관하는 관련 공무원이 앵커호텔(부영호텔)의 외장재료 변경 건에 대해, 이를 경미한 사항으로 보고 건축심의에 상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위원들이 판단할 문제를 관련공무원이 판단해서 통보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공무원은 '갑'이 되고 위원들은 '을'이 됐다. 몇몇 위원들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대다수 위원들의 침묵과 함께 묻히고 말았다.

서귀포시 중문에 있는 앵커호텔. 리카르도 레고레타가 디자인했고, ㈜부영주택이 마음대로 짓고 있다. 앵커호텔의 모델하우스인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마지막 유작인 이 집은 지난 3월 철거됐다. 이제 남은 일은 앵커호텔이라도 제대로 짓는 일인데, ㈜부영주택은 건축심의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설계를 변경해 짓고 있다. ㈜부영주택이 제주도의 행정절차를 무시하는 것은 곧 도민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일은 도민의 자존감이 걸린 일이다.

도민의 자존감이 걸린 일인데, 관련 공무원은 살짝 덮어 넘어가려하고 위원들은 침묵하고 있다. 과연 덮는다고 해결될까. 이것이 '욕개미창'이 되는 경우, 제주도정의 잘 짜인 시스템 전체가 위험질 수 있다. 그 이유는 도민들이 좌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민의 달당 방 2개짜리 집의 지붕재료나 색채변경도 건축심의를 통해 재심이나 불허하면서, 방 600개짜리 호텔은 봐준다면 그 어떤 도민이 납득할 수 있을까. 건축심의를 받는 도민은 멍청하거나 바보가 되는 건가. 힘없는 도민은 안 봐주고 돈 많은 재벌은 봐주는 제주도정을 도민이 믿을 수 있을까.

나쁜 일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그 나쁜 일은 덮지 말아야 한다. 덮으면 덮을수록 더 드러나기 때문이다. 나쁜 일은 투명하게 처리해야 한다. 좋은 시스템이 있다면 그 시스템을 통해 원칙대로 처리하면 된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유네스코 3관왕을 지킬 수 있는 시스템들을 가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건축위원회다. ㈜부영주택은 도민의 자존감을 무시하는 내 맘대로 시공을 하고 있다. 이것을 덮을 이유가 없다. 도민이 부끄럽지 않도록 제주도정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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