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직 외과 전문의·논설위원

   
 
     
 
뒷마당 잔디밭 관리가 여간 성가시지 않아 내버려 뒀더니 식물들의 천국이 됐다. 소리쟁이나 민들레처럼 세력 확장을 지나치게 하고 위로 키를 높이는 놈들이나 새들이 열매를 먹고 여기저기 똥을 싸면 발아돼 가시덤불을 만들어 내는 찔레나무 정도만 간간히 손을 봐주며 지켜보았는데  다양한 식물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자리를 적당히 차지하고 햇빛과 양분을 나누며 자연스럽게 삶을 나누고 있는 모습이 깔끔하게 정리된 잔디밭보다 내 눈에는 더 아름다워 보인다.

이런 식물에 비하면 인간은 참으로 이상한 존재다. 같은 신을 믿는다는 이슬람과 기독교가 수세기에 걸쳐 싸웠어도 그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고 있으며, 피부색이 다르다고 한동안 다른 피부색의 인간을 고귀한 생명을 가진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은 적이 있었으며 어느 날 멀쩡히 같이 잘 살던 동족끼리 철조망을 쳐 놓고 서로의 무기를 자랑하며 여차하면 상대를 불바다로 만들어 주겠다고 협박하는 그 모습들이 인간 군상이 만들어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다.

작은 섬나라 안에서도 '육지 것 제주 것' '내편 니편' 하면서 보이지 않는 벽과 마음의 담장을 쌓아 놓고 아옹다옹 하는 모습도 식물들의 나누며 자유롭게 어우러지는 모습 앞에 부끄럽기는 매한가지인 것 같다.

지난 5월 20일은 여섯 번 째 맞는 세계인의 날이었다. 2007년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에 의해, 국민과 재한외국인이 서로의 문화·전통을 존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조성하기 위해 매년 5월20일을 '세계인의 날'로, 세계인의 날부터 1주간을 '세계인 주간'으로 제정했다(제19조). 이에 따라 2007년에 제정 기념식을 갖고 2008년부터 매년 같은 날을 세계인의 날이 지켜오고 있다. 세계인의 날을 기념해 제주에서는 제주외국인평화공동체와 법무부출입국관리사무소가 공동 주최하는 제주다민족문화제를 '이주와 인권'이라는 제목으로 준비하고 있다. 일시는 오는 6월1일부터 6월2일 오후 까지 제주시 연동 바우젠 거리에서 열릴 예정이다. 행사내용을 보면 총 14개국 이주민들이 참여해 자국의 음식과 전통 문화를 소개하고 파는 부스를 운영하며 판매 수입금의 일부는 제주 피해이주노동자 쉼터 운영비로 기부될 예정이다.

이와 더불어 각국의 전통 놀이 공연과 문화 공연이 같이 준비돼 있다.

제주에는 결혼이주자, 이주노동자를 포함해 다양한 모습의 외국인 만명 이상이 우리와 제주 땅에서 삶을 나누고 있다. 이런 다민족문화제를 통해 우리와 인종·피부색·언어가 다르지만 그 다름의 다양성을 같이 나누며 공존하는 문화를 지향하는 삶을 알리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다민족문화제가 외국인만을 위한 축제가 돼서는 안 될 것이며 제주민이 참여해 이들과 같이 생각과 문화를 나누고 소통하는 자유과 기쁨이 공존하는 축제의  장이 돼야 할 것이다.

이 행사 준비과정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웠던 점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칠성통 거리에서 세계인의 주간 중 제주다민족문화제가 열릴 예정이었으나 급작스럽게 장소와 일정이 변경됐다.

그 이유는 일부 상가 주인들의 반대 때문 이라고 했다. 그 기간 중 매출저하가 표면적인 이유라 했지만 일부에서는 "왜 내국인도 먹고 살기 힘든 지금 외국인들을 위한 이런 잔치판을 벌이냐"는 항의도 있었고 "그 곳에서 다민족문화제를 연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까지 있었다"는 후문이다. 그래도 다행한 것은 연동 바우젠 거리 주민들이 흔쾌히 다민족문화제를 초청했다는 사실이다.

이를 지켜보면서 여전히 외국인 이주자들을 보는 제주인의 시각이 다름을 다양성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다른 모습의 이들이 우리 삶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막연한 피해의식이 저면에 남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게했다.

매년 200만 명에 육박하는 내·외국인 관광객에다 외국인 이주자와 더불어 밀물처럼 늘어나고 있는 내국인 이주자까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 요즈음 이들의 다양한 문화와 더불어 다양한 생각 다양한 삶의 모습까지도 열린 마음으로  수용해 새로운 제주 문화를 창출하고 진정한 국제자유도시로 제주가 도약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