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익 제주대학교 재일제주인센터장·일어일문학과 교수·논설위원

   
 
     
 
2011년 말, 일본 법무성 통계에 의하면 재일한인의 수는 54만5401명, 이 가운데 제주출신자는 8만6231명으로 전체의 약 15.81%에 이른다. 출신지별로 따진다면 경상남도와 경상북도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숫자이다.

우리나라의 1%지역에 불과한 제주도가 재일한인사회에서는 인구뿐만 아니라 경제 및 사회활동에서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고 어느 지역출신자들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기부 등을 통해 고향발전에 공헌해 왔다.

이런 미담들을 들으면서 제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 눈에는 일본에 살고 있는 제주출신자 거의 모두가 성공한 사람들처럼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물질적·정신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 이들 대부분은 일제강점기 때 강제로 징용당하고, 지독한 가난을 면하기 위해서 일본으로 건너와야 했다.

일본인이 하기 싫어하는 업종에 종사하면서 악착같이 일해서 어느 정도 부를 이뤘지만, 지금은 사양산업이 돼 생활고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또한 4·3의 소용돌이를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밀항해야 했던 사람들도 많다.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4·3과 관련해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이 5000명 이상에 이르고 있으며, 당시 청년이었던 사람들은 아직도 아픈 상처들을 간직한 채 일본 땅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일부는 아직도 4·3을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간혹 불특정 다수들에 대한 원망을 늘어놓기도 한다. 사건이 발발한지 이제 65년이 지나고 있다. 그렇게 4·3때 떠나온 사람들도 80대 황혼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원망하지 않고 슬기롭고 조용하게 극복하려 한다.

지난 4월21일, 일본 오사카 동성구민회관에서 열린 '재일본제주4·3사건 위령제'에 처음 참석했던 필자로서는 잔잔한 감동의 시간이었다. '재일본제주4·3사건유족회'와 '오사카 제주4·3을 생각하는 모임'이 주최해 해마다 열리고 있는 행사다. 이번 행사에는 약 500석의 객석이 꽉 찰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행사를 준비하는 스태프 속에는 재일제주인뿐만 아니라 제주출신 이외의 재일한인, 그리고 일본인들도 다수 있었다. 객석을 메운 참석자 면면을 보면 이 행사의 진정성이 돋보였다.

유족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함께 헤 4·3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추모만을 생각하는 자리였다. 상처를 어루만져 주려는 노력 속에 조심스럽고 차분하고 진지하게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80·90대의 노인들과 손자뻘인 20·30대 청년들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는 없었다. 편 가르기도 없었다. 그저 그때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영령들의 혼을 달래려 할 뿐. 서로를 배려하면서 4·3의 아픔을 극복하려는 공통의 장이었다. 이 자리에는 누구에 대한 원망도 하지 않았다.

이런 흐름 속에서 얼마 전 제주에서는 4·3과 관련해 제주도지사가 사석에서 '폭도'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고 해서 떠들썩한 일이 벌어졌다. 전후의 맥락이야 어떻든 사용해서는 안될 용어가 등장한 것은 4·3의 상흔(傷痕)치료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이다.

하나둘씩 지워나가야 할 아픈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폭도'가 주는 어휘의 내용과 느낌이 폭력적이고 위압적이어서 교육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정신적 피해자로 남아있는 관련자 모두의 치유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4·3만 없더라도 일본 땅에서 이렇게 살지는 않았을 텐데…"라고 탄식하는 재일제주인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치유법이란 자극적인 말을 자제하고 이데올로기를 벗어나 고통 받는 사람들을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감싸안아주는 일이다. 그리고 그 고통들을 후대에 물려주지 않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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