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앤팡> 제주미학기행
[김유정의 미학기행 멋과 미] 21. 젊은 화가의 초상, 조기섭

▲ 조기섭 작 분재-시공간-엽서작업, 2013
고향은 어머니의 아픔도 상처가 되지 않고, 그것을 승화시키는 힘 있어
몽환적 은유, 초현실적 알레고리 현실 아픔 반전 위한 최종의식의 저항
 
왜 사람은 고향을 잊지 못하는가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고갱의 화제(畵題)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후대의 화가들에게 많은 물음을 던졌다. 그렇다. 정말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슬픔을 달래는 위안처럼 인간은 죽어서 별이 된다거나 하늘나라로 간다는 동화와도 같은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유가의 북망, 불가의 극락정토, 제주도 무속의 서천꽃밭은 민중들이 그릴 수 있는 상상계의 여러 가지 유형들이다. 그 중에서 어머니를 고향에 빗댄 대지 신앙은 결국 인간은 누구나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지모신(地母神) 사상으로 귀착되었다.
 
모든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는 관념은 자연계의 근본을 상생으로 보는 관점에 다름 아니다. 초록별 지구에 어느 것 하나 제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이 없는데 그 질서를 교란시키는 것이 바로 우리네 인간이다. 인간은 영장류이면서 만족을 모르는 욕망의 덩어리로 자연계를 지배하려고 한다. 제자리에 있어야 할 자연계의 만물을 파괴하면서 그들의 고향을 빼앗아버린다. 그야말로 세상은 모두가 제 자리에 있을 때 아름답다. 자연계에서는 제자리를 떠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생겨서 동물은 발과 날개로 고향을 찾아 돌아가고, 식물은 바람과 물을 타고 그들의 근원으로 돌아간다.
 
인간 또한 여느 자연의 만물처럼 근원에 대한 귀속(歸屬) 의식이 커 늘 태어난 고향을 잊지 못한다. 전한(前漢)시대 유안(劉安)이 저술한 「회남자(淮南子)」에, "새는 날아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토끼는 달려서 굴속으로 돌아가고, 여우는 죽을 때 머리를 언덕으로 향하고, 물새는 물위를 날아간다. 각각 태어난 고향을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유랑 시인 두보(杜甫) 또한 명절 때가 되면 더욱 그리워지는 것이 고향이라고 했다.
 
사실 인간에게 진정한 고향은 자연이다. 자연에서 얻는 것, 더구나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전체 에너지가 바로 지구라는 환경의 산물이다. 인간은 한정된 지구의 에너지를 먹고 사는 데 그것이 무기와 같은 위치에 오르면서 자원전쟁이 일어나고 그것에 의해 살상이 자행되는 것이다. 자연이 없다면 인간도 없게 된다는 단순한 사실을 망각하는 것이 무서운 일이다.
 
아이들에게 고향은 어머니다. 어머니가 있는 고향의 하늘은 자애롭고, 그 오름의 들판은 향기로운 바람으로 넘쳐난다. 늘 고향 앞바다의 노을은 따뜻하면서도 경이롭다. 비로소 아이들은 어머니로부터 인생의 기술을 대물림 받는 데, 삶이란 아마도 저절로 배워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어머니의 냄새와 촉감을 기억한다. 때로는 어머니의 아픔도 기억에 묻어난다. 그 기억은 평생 동안 어느 시점에 이르러 간헐천처럼 무의식적으로 용출된다. 사람들이 고향을 잊지 못하는 것은 마치 마르지 않는 지하수처럼 근원이 있기 때문인데 아이의 고향이 어머니라면, 사람의 고향은 어머니로서의 자연이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의 삶을 기억으로
 
오늘날의 많은 서양의 예술가들이 현대사회의 불안감, 좌절감, 불만족, 냉소, 거부감, 원망 등을 대중들에게 내보이려고 열중한다. 이는 과거 동양의 예술가들이 내면적 평화, 평정, 자연과의 합일을 이루려는 태도와는 배치가 되는 것이다. 즉 내면적 조화를 이루려는 과거 동양의 미학과는 달리 서양의 미학은 심리적 불편함을 전체 사회의 조화를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개인마다 감각적인 욕망들을 그대로 드러내고자 노력한다. 이미 우리 사회의 예술가들은 그런 서양의 미학을 받아들여 현실의 감각적인 표현에 치중하면서 개성을 우선시하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하게 화가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시대의식이다. 이 시대의식은 화가 자신이 살고 있는 당대 사회의 조건을 파악하는 비판적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은, 내일이면 어제까지의 세상이 된다. 우리에게 영원히 내일은 오지 않으며, 내일은 오늘과 다른 진짜와 같은 허상의 일부분인 미지의 세계에 불과하다. 우리는 오늘의 눈으로 어제를 보고, 다시 오늘의 눈으로 오늘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시대의식은 당대에서 사고하는 의식이며 현실 모순을 정화(淨化)시키고자 하는 정신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조기섭은 제주를 떠난 후 제주를 다시 보았다. 제주에 대한 기억은 떠나기 전 당시의 삶의 한 부분이었다. 그는 어머니의 삶을 생생히 듣고 기억하고 있었다. 고향이란 어머니의 아픔도 상처가 되지 않고, 그것을 승화시키는 힘이 있는 것일까. 육지인이던 어머니의 고뇌는 기억할수록 동정과 연민으로 확장되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삶을 재생할수록 제주에 대한 이미지는 애정(상처)과 쓰라림(치유)으로 남았고, 그것의 상승작용으로 은유적 표현을 선호했다. 현실은 뒤집으면 꿈과도 같을 수 있다. 꿈은 뒤집을 수 없는 무의식의 향연이다. 조기섭의 기억은 가느다랗지만 진한 의식의 가닥인데 그 의식에는 아련하게 나무에 머무는 바람, 일렁이는 들판, 노란 빛의 노을, 무의식의 바다와 같은 하늘이 펼쳐진다.
 
조기섭의 기억은 "바다를 마실 수만 있다면 삼켜서라도 걸어서 가겠다" 던 어머니의 바다 한가운데 떠있다. 갇힌 섬의 어머니의 바다는 하늘, 들판과 같음에도 불과하고 결국 부유하는 바다로 보이는 비현실적인 풍경이 되고 있다. 현실적 염원을 이루지 못한 어머니의 바다. 조기섭에게는 섬을 떠나기 전 그 바다가 기억의 시작이 되었고, 거꾸로 섬을 떠난 이후 섬에 대한 애정으로 탈바꿈했다.
 
조기섭의 작품세계
 
▲ 조기섭 작업장
조기섭의 작품은 다음의 다섯 가지 개념으로 말할 수 있다. 다섯 가지 중요한 개념은 첫째, 분재:화분에 식재된 식물. 둘째, 바람:대상이 있어야만 알 수 있는 기류 현상. 셋째, 시간:사물을 통해서만 감지되는 변화. 넷째, 공간:사물이 있는 다양한 장소 다섯째, 색채:무의식에 다가서는 몽환적 세계의 은유 등이다.
 
먼저 분재는 말 그대로 인위적으로 조작된 '만들어진 자연'에 다름 아니다. 조기섭의 의식에 자리 잡은 기억은 그가 실제 경험했던 자연(自然) 입장에 있다. 분재시리즈는 그 자연과 배치되는 유사(similarity) 자연으로 변형되는 자연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자 시대의식이다. 분재는 원래 대자연 대신 향유할 수 있는 '꾸며진 소자연'이다. 조기섭은 제주가 점차 원형의 자연에서 벗어나서 새롭게 꾸며지고, 왜곡되는 모습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둘째, 조기섭의 바람은 시간의 흐름을 포착하기 위해 수목을 이용한다. 혹은 점묘와 같은 반복의 방식으로 기류를 이미지화함으로써 바람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기억이라는 것이 과거 시간을 정지시키는 프레임이라고 할 때, 의식의 흐름으로써, 혹은 자동기술이라는 초현실적인 입장에서 시간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셋째, 시간의 소재는 돌, 수목, 바람, 노을이다. 돌은 돌담을 떠나 뜬돌이 돼 허공에 있다. 그대로의 상태를 이탈한 불편한 유영(遊泳)이다. 수목은 흔들림으로써 연속적이고 중복되는 선을 남긴다. 바람은 수목이 남긴 선을 통해 중층화 되고 있다. 노을은 노란빛이나 붉으레한 빛으로 시간을 정지시킴으로써 저녁임을 상기시킨다. 그의 시간은 빛바랜 사진마냥 유년에 경험한 시간을 몽롱한 환각으로 보여주고 있다.
 
넷째, 조기섭의 공간은 기억이 만들어낸 공간이다. 어머니의 바다를 모토로 한 현실적 공간들은 어느 곳, 어디에서라도 존재하게 된다. 하지만 그가 그린 하늘, 벌판, 숲, 오름, 바다 등은 실재인 공간이면서도 그 풍경들이 비실재적인 공간으로 보이는 것은, 현실을 다시 한 번 곱씹는 '의식의 되새김질'을 실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그의 색채는 영토(제도)를 거스르는 탈영토적(반제도) 저항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 색채학의 배색을 무시하고 있는 조기섭의 색채는 실경 산수에서 볼 수 없는 무의식의 색채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청년작가 조기섭의 작품은 가족과 자연에 대한 섬에서의 기억을 재생하고 비판하는 작업이다. 섬과 섬의 가족에 대한 기억은 그가 겪었던 젊은 날의 다른 세계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조기섭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앞서, '인간의 관계란 왜 이래야 되는가'라는 사회학적 질문을 먼저 던진다. 그래서 그는 '인간은 서로에게 무엇이고, 그 관계는 어디까지 진실한가'라는 물음으로 끝을 맺는다. 
 
결국 조기섭의 몽환적인 은유, 혹은 초현실적 알레고리는 현실의 아픔을 반전시키기 위한 기억해낼 수 있는 최종 의식의 저항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평론가(예술학)

화가 조기섭

조기섭은 제주 세화 출신으로, 2007년 성균관대학교 미술학과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고 다시 고향 제주로 돌아와 작품에 열중하고 있는 젊은 작가다. 2011년 개인전 '황금이 되고 싶은 말'을 시작으로, 올해 7월 두번째 개인전 '그 섬. 이 시간'을 열고 있다.

작가는 말한다. "마음과 기억 속에 자리한 시각적·촉각적 이미지를 선정하고 그 이미지를 표현할 색을 선택합니다. 사실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작업을 하지만 결과적으로 몽환적이 느낌이 드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라는 의미로 볼 때 초현실적인 요소가 많다. 그는 당차게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는데, "제가 사는 곳 제주는 바람, 돌과 사람들로 인해 변화가 많은 장소입니다. 그대로의 자연과 변화된 자연 사이에 제가 서 있습니다. 그 변화를 나무와 동물 돌을 소재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나무를 통해 제주의 바람과 노을·시간을 표현하고, 동물은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제 자신을 빗대어 표현하며, 돌을 통해 변화 되어 지고 있는 상황을 묘사합니다". 그의 첫인상에서 벌써부터 '진득한 예술가'라는 느낌을 받는다.
 
조기섭은 다수의 단체전에 참가했는데 '꿈꾸는 신화의 섬' '말 展' '달나라에서 누가 왔을까' '토끼세상의 자원 봉사자들' '길 위의 희망' '아시아프' 'Made in Pop Lend'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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