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월여 동안 제주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행정시장 직선제에 대해 도지사의 '유보' 발표가 있었다.

도지사는 도민의 85.9%가 행정시장 직선제를 지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업고 주민투표 강행 등의 언급하며 여론전을 주도했지만 도의회의 부결과 반대 여론에 밀려 결국 '유보'를 선언했다. 행정시장 직선제의 문제는 차기 도정으로 넘겨야 한다는 여론이 많았다는 점에서 이번 유보 발표는 대체적으로 바람직한 결정이라는 의견인 듯하다.

그런데 도지사는 '유보' 선언과 함께 "지금의 논의 유보는 '포기'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고, 내년 지방선거를 통해 이슈화될 것"이라고 언급했다고 보도되고 있다.

이는 행정시장 직선제를 내년 재출마의 명분으로 내세우겠다는 것으로 다시 논란이 되는 듯하다. 도지사의 내년 재출마는 모든 국민이 가지는 개인의 정치적 권리이므로 가타부타할 일은 아니지만 행정시장 직선제를 엮는 것에 대해 몇 가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특히 시장과 의회의원을 직접 선출하는 것은 지방자치의 기본이자 핵심이다. 따라서 시민에 의해 선출된 시장은 시민의 명령에 따라 예산의 편성과 집행, 인사, 행정 사무 등에 모든 권한과 책임을 행사한다. 즉, 직접 선출되는 시장과 의회의원에게 자치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제주특별자치도를 규정하고 있는 관련 법률에 의해 제주시와 서귀포시는 위의 자치권을 부여받지 못했다. 행정시장은 도지사의 지시에 의해 행정사무를 집행 및 관리할 뿐이며, 최종적인 모든 권한과 책임은 도지사가 가지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제왕적 도지사라는 표현이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자치권이 없는 행정(집행)시의 시장을 시민이 직접 선출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모순이며 허구로 실현 불가능한 허상일 뿐이다.

백번을 양보해 도지사의 주장처럼 '빼앗긴 도민 권리를 되돌리기' 위해 시장 직선제가 필요하다면 현재의 행정시를 기본적으로 예산편성 및 인사 등의 자치권을 가지는 기초자치단체로 부활해야 한다. 물론 시장 직선제에 맞춰 시의회가 구성돼야 하며, 현재 제주도가 가지는 권한의 상당 부분을 자치시로 이양해야 한다.

결국 이것은 제주특별자치도 이전으로 회귀하는 것으로 국가의 행정체제 및 자치 제도의 정책 방향에서도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을 도지사가 왜 이번에 제주사회를 뜨겁게 달구었을까 하는 의문이 있지만 대답은 간단하다. 앞서 도지사의 고백을 언급한 것처럼 결국 이번 소동은 선거판을 짜기 위한 전략의 하나라는 것 또한 자명하다. 제주도와 제주도민을 위한 대의와 고뇌가 아니라 정치 구단 개인의 사사로움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 안타깝고 말문이 막힐 뿐이다.

우리는 지난 2012년 대선 이후로 '프레임'이라는 단어를 심심하지 않게 들을 수 있다. 버클리대학교 조지 레이코프 교수가 주장한 프레임 이론에 따르면 상대가 제시한 프레임 속에 들어가서 싸움을 하면 백전백패라고 한다. 실현 가능성 여부와는 별개로 도지사는 행정시장 직선제 프레임을 구축했다.

이 글은 이미 그 프레임에 빠졌지만, 혹시 누군가가 이 프레임 전쟁에서 이기고자 한다면 그 프레임을 무시하고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해 주도해야 할 것이다. 지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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