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직 외과전문의, 논설위원

   
 
     
 
수년 전 제주 사람들이 중심이 된 '3세계 지원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다. 지구에 마지막 남은 '샹그릴라인 히말라야 소국' 부탄왕국의 수도 팀푸에 한글학교를 세워 과정을 마친 사람들은 제주로 불러 기술 교육을 시켜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우리는 민간 차원의 참여였지만 부탄왕국에서는 부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국가사업이었다.

이쪽에서는 한글학교 교사를 부탄에 파견하고 한국에 온 부탄 학생들의 숙식과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조건이었고 부탄왕국은 팀푸 한글학교 건물과 교사의 숙소를 지원하고 학생들의 항공료를 부담했다.

졸업식에는 왕국 장관도 참여했고 왕비도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이들이 관심 있는 한국의 기술은 자동차정비·온돌난방·베이커리·헤어디자인 등이었다. 부탄왕국은 세계 최초로 금연국을 선포한 나라이며 초등 과정부터 환경 과목이 정규과정으로 편성됐다. 일부 과목을 영어로 수업 받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쯤이면 자유롭게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나라이다.

자본주의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돈이 없으면 모든 것이 불가능하고 행복할 수 없다 생각하겠지만 삶의 질과 행복지수는 반드시 경제가 결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들의 삶이 증명해 주고 있다. 부탄의 GNP는 최빈국에 속하지만 이들의 GNH(국민총행복지수)는 세계최고다. 부탄이라는 나라와 그 사람들의 삶을 지켜보면 제주의 미래 지향점이 둘 중 무엇이 돼야 할지 답이 보인다.

도정은 세계화와 규모의 경제를 만든다는 취지로 끊임없이 국내외 자본·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온갖 혜택를 주며 열을 올리고 있으나 이런 정책들이 제주민의 행복지수와 제주 미래에 얼마나 도움이 될 지는 의문이다. 어쩌면  제주 공동체의 삶의 질과는 괴리된 허울뿐인 세계화일 가능성이 높다.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라는 책을 쓴 여성학자 헬레나 노르베나 호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거대 기업들은 끊임없이 우리 삶의 많은 영역을 지배해 왔다. 그들은 광고와 미디어 관리를 통해 개인 취향과 욕구 그리고 생각을 조종한다. 그들은 지구자원의 대부분을 손아귀에 넣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세계 대부분 지역의 농업·보건·교육·금융 등을 지배하면서 경제적 착취를 감행하고 있다 . 이들을 규제하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고 있다. 로비스트·선거운동 기부금·두뇌집단 등을 이용해 그들을 규제해야 하는 정부 조직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제주는 지금부터라도 작은 경제에 튼실하게 기여하고 있는 제주의 자생기업들에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야 한다. 상권이 침체된 중앙통 주변 뒷골목에서 작지만 공정한 경제 실험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이 있다.

한 남자는 좁다란 골목쟁이 안 쪽문을 가진 버려진 민가를 자기 손으로 리노베이션을 하고 '비엔비 판'이라는 민박집을 냈다. 저렴한 가격에도 멋진 공간·주인장의 솜씨있는 음식·차별화된 여행안내 등이 곁들어져 외국인에게 인기 만점이다.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다양한 외국인 여행자들이 찾는 숙소로 소문이 났다.

한 여자는 제주 내려온 지 3개월 만에 '오렌지 트리'라는 호텔 간판을 동문시장 맞은편 골목쟁이 안에 내걸었다.

허름한 건물을 안팎으로 예쁘게 손 보았다. 손님들의 아침밥상은 제주에서 나온 싱싱한 재료로 손수 만든 건강 음식이 나온다.  

제주 땅에서 여자 혼자 해내고 있는 일들을 보면 열정과 용기가 대단하다. 

번듯한 호텔은 아니지만 숨겨진 골목쟁이 안  자유로움과 사람들의 온기가 흐르는 이런 작은 공간들이 이미 대세다. 역시 작은 것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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